이자람과 김애란의 ‘소소살롱’
이자람과 김애란의 ‘소소살롱’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0.11.10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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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과 ‘소’설가의 이야기
서로 다른 장르에 대한 애정고백
소리꾼 이자람 (사진=예술의전당)
소리꾼 이자람 (사진=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여러 사람이 되기도 하고, 동물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수백, 수천 살일 것이다. 그럼 밀도가 생기고 자성이 생긴다. 나이를 많이 잡순 소리꾼이다.”

이렇게 김애란 작가가 이자람 소리꾼을 소개하자,

“처음에는 멀리서 바라보았다. 빨간 염색 머리로 무용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었다”고 이자람이 김애란의 첫인상을 전했다.

이자람: 글쓰기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나?

김애란: 감각 연습을 한다. 새롭진 않아도 상투적으로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 살롱의 관객 연령제한이 8세에서 101세까지였는데 왜 101세일까 고민하며 메모해놓기도 하고, 보도자료가 나간 곳 중에 국방일보가 있었다. 그게 인상적이라서 메모해놓았다. 또 오늘 아침에 예매를 취소하신 분이 세 분 정도 계셨다는데, 오시려다가 일어나지 못하셔서 못 오셨구나, 그런 마음도 사랑한다, 그런 생각도 했다.

지난 11월 7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젊은 명창 이자람과 베스트셀러 작가 김애란의 이색적인 대담이 열렸다. 예술의전당이 새로 기획한 <소소살롱>의 첫 무대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자람이 김애란의 단편소설을 판소리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애란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 “최근 한 소리꾼으로부터 내 단편 중 하나를 판소리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참 이상하다, 인생은’이라 생각한 건 그녀가 고른 작품이 내 데뷔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단편이 실린 잡지를 당시 외국에서 공부하던 내 판소리 동기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왠지 그때 부친 상자가 긴 시간 세상을 떠돌다 다시 내게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고 썼었다.

일종의 생태보호구역 안에서 오랫동안 보호를 받아온 우리 ‘소리’가 젊은 국악인의 노력으로 세련되고 지적인 방식으로 다시 생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소리가 이른바 자생의 길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고 있다는 걸, 실제로 그런 공연을 찾아 듣는 관객이 꽤 많다는 걸 알고 감동했다.”

작가 김애란 (사진=예술의전당)
작가 김애란 (사진=예술의전당)

둘은 2016년 첫 만남에서 술을 마시며 ‘낚시’와 ‘농사’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과거엔 낚시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낚았다면, 앞으로는 밭을 일구듯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이후에도 몇 차례 교류를 가진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과 공연을 챙겨보는 팬이 되었다. 김애란은 <PAPAER> 매거진 2019년 여름호에 실린 <절정부란 무엇인가>라는 단편 에세이를 통해 다시금 이자람의 공연에 대한 소회를 기록했다. “곧이어 스스로 한 명의 배우이자 연출, 기획자이자 작가인 여성이 세상 경험 많은 할머니처럼 혹은 천진한 아이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판소리의 세계로 안내했다. 높은 산에 올라 좋은 경치를 대접받는 기분. 이자람의 공연은 내게 늘 그런 느낌을 준다. 얼핏 보면 참 쉬워 보이는 투로 설렁설렁 관객과 산책하다 종래에는 절경을 보여주는 소리꾼. 거기가 어딘지 모르고 따라갔다 늘 정상에 오르고서야 나는 내가 선 곳을 안다.”

김애란은 판소리를 들으며 ‘내가 이걸 좋아하지, 이래서 좋아하지’ 확인한다고 한다. 또 1인칭의 시대에 살며 3인칭의 건강함을 경험한다고도 했다. 관객으로서 멀리서 해설을 듣고, 다정한 방식에서 위안과 쾌적함을 느낀다고.

이자람은 소리꾼에 대한 편견에 관해 이야기하며 중학생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교복을 입은 채 가야금을 들고 있으면 기생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친구들로부터 이자람은 피자를 먹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도 한복을 입느냐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이자람은 공연을 하러 갈 때 스스로 위축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자람이 관객들에게 “판소리는 평양냉면처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장르이니 우선 한 번은 들어보시라”면서 “판소리 들어본 적 있으신 분은 손 들어보세요”라고 하자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김애란은 어떤 시기에 접한 판소리인지에 따라 그 인식이 달랐다고 말했는데, 판소리 공연을 직접 접해본 후로는 ‘기회가 되면 예매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며 판소리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다.

김애란은 “소설은 한 번 찍으면 새로운 쇄가 나올 때까지 수정할 수 없다”며 “그런 점에서 판소리는 소설보다 시대 적응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했고, 이자람은 “팬데믹으로 관객과 만날 통로가 없다고 느꼈을 때 책이라는 매체가 부러웠다”고 했다.

고수 이준형 (사진=예술의전당)
고수 이준형 (사진=예술의전당)

이날 무대에서 이자람은 김애란의 <노크하지 않는 집>을 판소리로 만든 <여보세요> 한 대목을 이준형 고수와 함께 시연했다. 김애란은 <노크하지 않는 집>과 <여보세요>의 가장 큰 차이로 ‘웃음’을 꼽았다. <여보세요> 중 “10년도 넘은 린나이 보일라”, “세탁기 닫는 소리 띵 띠리 띠링” 같은 대목이 객석의 큰 웃음을 자아냈다.

김애란은 살롱이 끝날 무렵 자신은 “작품이 판소리로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며 “마르케스 선생님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바 있다.

'소소살롱' 포스터 (사진=예술의전당)
'소소살롱' 포스터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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