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댄스2020 프리뷰] 국내 프로그램-9 (11월 14-15일 방영분)
[시댄스2020 프리뷰] 국내 프로그램-9 (11월 14-15일 방영분)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11.13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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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솔로 미오, LDP 무용단(윤나라)
선아당스 '언커버(UN·COVER)'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선아당스 '언커버(UN·COVER)'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제23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시댄스 온라인’이 6일(금)부터 22일(일)까지 시댄스 홈페이지와 유튜브채널, 네이버TV를 통해 열리고 있다. 더프리뷰는 시댄스 공연일자에 맞추어 작품 내용과 안무가들의 인터뷰를 간략히 소개한다. 인터뷰 전문은 시댄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14일 공연작품들(14일 오후 8시부터 15일 오후 8시까지)

1. 5 솔로 미오(5 Solo Mio)
1) 오재원 - <깊은 어둠>

2013년 부다페스트 솔로듀오경연대회(SzólóDuó Festival)에서 1등상을 수상한 <The Hole>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현의 울림처럼 진동하는 현재 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공존한다. 안무자 오재원은 국내에서 활동하다 독일로 건너가 15년간 활동했다. 피나 바우쉬, 테로 사리넨, 라미 베어 등 저명 안무가들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자신의 무용단인 PROJECTJAEWON을 설립, 활동 중이다.

오재원 '깊은 어둠' (c)금시원
오재원 '깊은 어둠' (c)금시원

 

인터뷰 - 오재원 안무가

Q : 전작 <The Hole>에서 파생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 <The Hole>은 어떤 작품인지, 이후 어떻게 <Sunyata>를 거쳐 <깊은 어둠>으로 발전됐는지?

A : <The Hole>은 독일 브레멘 탄츠테아터(Bremer Tanztheater)에서 활동 중이던 2011년에 만든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인생의 어두운 한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이 어둠 속에만 있었던 건 아니고 오히려 기쁨과 성취, 환희가 많았었다. 다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당혹함과 절망감의 기억을 작품으로 해소했는지도 모르겠다. <Sunyata>는 2018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 <The Hole>을 각색해 참가했던 작품이다. 힌디어로 ‘비우다’의 의미인데 <The Hole>이 절망에서 뛰쳐나오려는 에너지에 초점을 두었다면, <Sunyata>는 절망에 대한 저항 이전에 천천히 무너져 가는 견고함을 보여준다. 이번 시댄스에 참가할 <깊은 어둠>은 이전의 이야기들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기억하고 떠나보내는 작업이다.

Q :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작업방식이 궁금하다.

A :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큰 주제와 틀을 유지하고, 매 작품마다 바라보는 시각과 주체, 의미를 달리하고 있다. 대부분 현재의 삶은 결코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The Hole>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는 제가 독일에서 활동하던 중 돌아가신 부친이 계신다. 공연 중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전해온 아버지의 타계 소식은 전혀 준비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 세대의 많은 부자관계처럼 살갑기는커녕, 오히려 불편하고 심지어 제 경우 매우 불안했던 관계의 아버지였기에 그 감정의 종류와 성격은 너무나 복잡했다. 그러한 감정으로 <The Hole>이 만들어지고,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과 그 감정의 실체들을 들여다보며 <Sunyata>가, 그리고 모든 기억의 잔상들을 흘려보내며 <깊은 어둠>으로 이 여행을 마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Q :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셨다. 처음 독일로 떠나게 된 계기?

A : 석사학위 논문으로 독일 신표현주의와 피나 바우쉬를 다루었다. 당시 피나 바우쉬가 활발히 활동을 하시던 상황이라,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는 분의 작품세계를 무엇이라 단정 지어 얘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차라리 한 번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독일로 떠나게 되었고, 불과 몇 년 후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까지 출연하게 될 줄은 처음엔 상상도 못했다.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다.

Q : 해외 여러 유명 무용단에서 활동하셨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나 작업은?

A : 만났던 모든 안무자와 지도자, 동료들이 인상 깊었다. 당시 독일은 마르크화를 쓰던 때였고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유럽보다 더 낯설었던 시기이다. 호기심과 열정이 많았다. 피나 바우쉬와 처음 공연 연습할 때의 설레임, 치열했던 오디션 후에 들어간 무용단에서의 첫 연습, 책에서나 봤을 정도의 유명 안무가들 작품에 참여하고, 공연 후 환호하며 반겨주던 관객들의 모습들은 평생 각인될 기억들이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한국 축구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이 되었던 기억이 너무도 뚜렷하다. 모든 안무자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영향이 녹아 있다. 피나 바우쉬의 섬세함, 라인힐트 호프만의 감정선, 에마누엘 갓의 무게감, 라미 베어의 스케일, 헨리에타 호른의 정교함, 우어스 디트리히의 집념, 그리고 테로 사리넨의 도발과 그 외 안무가들의 독창적인 방식들은 제게 무형의 자산이 됐다.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처음 보고 감동에 몸부림쳤던 피나 바우쉬 <봄의 제전>에 출연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 앞으로서 어떠한 활동/작업을 하고 싶으신지?

A :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한 안무가로서 관객과 감정을 교류하고, 그 감정들을 읽어내어 치유와 위안,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 지금 수 개월째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이 싸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고민한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면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어서리라 생각하며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작품으로 계속 담아두겠다. 12월에 신작 공연을 갖는다. 무관중이지만 관객들과 꾸준히 만날 것이다. 감사드린다.

2) 선아당스 - <언커버>
<UN·COVER>는 약육강식의 일상 속에서 권력을 좇아 가면 뒤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짜 정체성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아무런 치장 없는 나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윤색되고 과장된 나를 돌아보는 시간. 진실된 나, 껍데기를 벗고 진정한 자유를 만나고자 하는 몸짓이다. 이선아의 춤은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며 신체의 근육과 관절을 이용한 미세동작 춤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춤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무용단인 선아당스로 활동 중이며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의 <Light Bird> 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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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당스 '언커버(UN·COVER)'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인터뷰 - 이선아 안무가

Q : 파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지난 여름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장기간 지내시는 소감은?

A : 6월초 국내 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 코로나19로 프랑스에서 8주간 거의 집에서만 지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한국의 철저한 방역에 안도감과 안전감을 느꼈다. 이런 시기에 초대해 주신 장광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8월 국립현대무용단의 안무랩 참여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시댄스 공연과 부산국제춤마켓 참가로 10월까지 머물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에 한국에서 무용으로 바쁘게 지낼 수 있었던 약 5개월의 시간에 많이 감사하고 기쁘다.

Q : <UN·COVER>를 만들게 된 계기, 또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움직임을 만들었는지?

A : <UN·COVER>는 여러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만들어졌다. 작년 가을 스페인 패션 브랜드 마를로타(Marlota)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었는데 오버사이즈의 검은 재킷을 입고 춤을 춰야 했다. 이 작업이 끝난 뒤 제게 ‘벗는다’라는 말과 표현이 남더라. ‘벗는다?’ 무엇을 벗을 수 있을까? ‘가면을 벗는다?’ 그러면 “어떤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가면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가면 증후군/페르소나에 관한 자료와 영상도 찾아봤고 한국에서 이따금씩 터지는 갑질 사건도 떠올랐다. 프랑스 역시 있는 척하기 좋아하고 서열 나누기 좋아하는 문화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간 동물과 일한 경험이 이 작품 안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동물들 간의 가장 중요한 것이 서열 나누기인데 이런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 역시 다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UN·COVER>는 동물적인 본능의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Q : 여러 장르 예술가들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셨는데 이중 가장 색다른, 혹은 흥미로운 작업은?

A : 추경엽 영화감독의 <너의 춤> 작품에 배우로 참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우라는 경험을 했는데 영화는 대본을 통해 맡은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고 철저한 감정이입과 몰입이더라. 무용이 몸을 통해 감정이입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영화는 말과 얼굴, 그리고 몸을 다 사용하는 아주 섬세한 작업이었다. 영화 속 ‘선아’의 역할과 상황에 빠져들었을 때 “오케이, 컷!”하며 촬영이 끝났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며칠간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무용 다음으로 어떤 무언가에 빠져들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Q : 파리에서 활동하신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파리에서 무용가로 사는 것은 서울에서 무용가로 사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무용가로서 느끼는 파리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

A : 파리에서 무용가로 사는 것은, 예술과 늘 가까이 사는 느낌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에 대한 존경 같은 게 있어서 무용가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제도의 혜택도 좋았다. 비정규직 예술가를 위한 실업보험 혜택, 그리고 국립무용센터(CND)에서 무료로 작품 준비할 때 무용가로서 행복했다.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프랑스의 행정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매니저 없이 혼자 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무용가로 사는 것은, 혼자 행정처리가 가능하고 지원금 신청이나 축제 참가신청 등 여러 기회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모르면 바로 문의도 할 수 있고, 아무래도 내 나라이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더 편하고 수월한 부분이 많다. 대신,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있다. 무용 관련 일이 없을 때는 자칫 예술과 멀어지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내 나이와 현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파리만의 특별한 점은 유명 안무가들의 작품을 볼 수 도 있고 예술적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다. 자신이 얼마만큼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느냐에 따라 그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차이가 크다. 파리에 살아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다.

누군가 파리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에서 살 때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파리에서 살다 보면 지하철에서 시리아 난민도 보고, 공연장에 가면 화려한 사람들도 만나고, 또 집에 가는 길에는 구청 앞에서 아프리카 전통 혼례식을 보는 등 하루에도 몇 개국을 다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파리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반면, 차별 받고 가난함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인간의 비참함을 볼 수 있는 곳도 파리라는 생각이 든다.

Q : 일찍부터 솔로 댄스로 주목 받았다. 안무가님의 춤 철학은?

A : 저에게 춤은 곧 표현이다. 사람마다 춤추는 이유와 그 즐거움이 다르겠지만 저는 무엇을, 어떤 감정을 가지고, 왜 추어야 하는지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춤을 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입과 감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직접 안무를 하고 내 몸이 곧 도구가 되어야 하는 솔로 작업은 매번 쉽지 않다. 그래서 완전한 솔로 작업보다는 타 장르 예술가와 함께 협업하며 작업방식과 표현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동작업을 할 때 더 재밌고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3) 박상미 - <인 마이 룸 In My Room>
<인 마이 룸>은 공간이라는 실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적 몸의 언어로 표현하여 관객과 무대에 대한 감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안무가/무용수인 박상미는 몸과 공간 그 사이에 발생하는 신체의 순수한 움직임을 기본으로 인간의 무의식, 환상과 공상, 기억 등을 새롭게 시각화하며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아트프로젝트보라를 함께 만들어나가며, 안무와 리허설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

박상미 'In my room' (c)금시원
박상미 'In my room' (c)금시원

 

인터뷰 - 박상미 안무가

Q : 몸과 몸을 둘러싼 방이라는 공간과 감각에 대한 작품으로, 매우 추상적인 작품이다. 아이디어부터 발전과정이 궁금하다. 또 작품을 시작할 때 처음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

A : 공간과 몸. ‘공간에 이질적인 이미지(의 몸)가 부여된다면 어떨까?’ ‘신체로서 어떠한 표현들이 있을 수 있을까?’ ‘무대라는 공간에 제한을 둔다면’ 등 질문과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익숙하고 일상적인 공간에 낯선 기억, 꿈과 같은 공상을 신체로 그려내고 싶었다. 춤은 감각하게 하고 그 감각은 사적 몸의 언어를 통해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기억들을 불러오는 장치이다.

Q : 노란색 방에 검은색 몸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 색깔의 의미가 궁금하다.

A :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공연(전체무대 사용)이 아닌 내가 선택한 공간, 제한된 공간을 나의 무대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초연 때는 의상 색이 달랐던 것 같다. 이후 바닥 색은 노란 플로어를 고수했고, 의상도 변경했었다. 색의 의미는 크게 있진 않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몸이다.

Q : 코로나 사태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방에 머물면서 ‘방’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안무가님에게도 방과 방에 대한 이 작품의 의미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A : 무엇을 하든 허용될 것 같은 나의 공간. 하지만 방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경계가 무너졌다. 실재하는 공간과 몸의 공간이 만나는, 서로 공존한다는 것,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환경과 상황은 변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몸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감각하는 동물이다.

Q : 현재 아트프로젝트보라 소속이고 이전에도 다양한 무용단에서 활동하셨다. 개인 무용가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A : 무용가(창작자)로서 무대에 지속적으로 서고 싶다.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몸에 관심이 많은데 몸과 마음의 연결을 움직임 훈련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 또 한 가지, 제가 걸어오며 밟았던 다양한 과정들과 경험들이 몸에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몸으로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의 역사적(?) 아카이브와 함께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 더 구체적 계획이 생기면 말씀드리겠다.

Q : <In My Room>을 보는 관객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본연의 몸, 감각하는 몸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열어주고 싶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숨을 마시고 내쉬는 호흡과 같이 공간과 몸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것. 보이는 대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4) 임현진 <jaja> (솔로 버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안무자는 경계인이자 주변인의 삶을 보냈다.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위치는? 공연자와 관객은 서로 번갈아가며 구경하고 구경당한다. <ja, ja>는 바라보는 지점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체든 대상이든 그저 작은 소통, 'jaja'(그래, 그래)일 뿐이기 때문이다. 안무자 임현진은 세종대 졸업 후 독일 폴크방대학과 쾰른대학에서 공부했다. 재학 시절 공동 안무작 <Suschi>로 유럽 9개국의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공연했다. 독일 활동 기간에 제롬 벨을 비롯, 여러 안무가와 작업했으며 귀국 후 프리랜스 무용수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와 협력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임현진 'jaja' (c)금시원
임현진 'jaja' (c)금시원

 

인터뷰 - 임현진 안무가

Q : 관객을 바로 앞에 두고 공연하는 것과 이번에 카메라 앞에서 솔로로 하는 것은 공연자로서 전혀 다른 경험일 것 같다. 이번 작업에서 보여주고 싶은 포인트, 혹은 기대하는 바는?

A : 관객들과 가까이 대면하면서 제 얼굴의 혈관까지 보여드리고 싶었고,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관객과의 우연성 또는 오브제 간의 우연성, 그리고 공간 사용을 통한 움직임의 즉흥을 활용했다. 이번 솔로 버전의 가장 큰 변화는 저 개인의 이야기로만 구성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주제를 어떻게 무대공간을 구성하여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Q : <jaja>라는 제목이 작품 주제와 관련하여 의미하는 바는?

A : ‘jaja’는 독일어로 ‘어어’라는 뜻으로 ‘그래그래 알겠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귀찮을 때, 성의 없는 대답, 또는 비아냥거릴 때도 사용되어서 독일에서는 부정의 의미를 담은 단어이다. ‘ja’를 한번 사용하면 yes의 의미지만, 독일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런 걸 잘 모르고 초긍정의 뜻으로 ‘ja’를 대답할 때마다 두 번씩 붙였다. 이같은 제 언어적 경험이 포함되어 있어 <jaja>로 하게 되었다.

Q : 10여 년 간 독일에서 활동하셨는데 이 경험이 안무 방식이나 주제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A : 독일에서 폴크방학교를 졸업한 후 프로 무용단에 들어가기 위해 대략 100회 가까이 오디션을 봤었고, 그 사이 일이 없을 때는 티칭, 레스토랑 서빙, 여행 가이드, 통역 일 등을 하면서 지냈는데 이런 경험들이 현재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독일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여러 일들, 감정 등을 표현한 작품인 <jaja>를 작년에 만들었다. 그때 함께 공연했던 세 명은 같은 시기에 꽤 오랜 동안 독일 생활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친구도 있는데 같은 환경 속에 다른 생각과 생활을 한 것이 나중에 한국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주제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대에 있는 요소들을 서사적이기보다는 파편적으로 장치와 요소들을 찾아내고,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Q : 독일에서 연기를 공부하셨는데 이것이 작품에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A :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 연극학으로 입학한 적은 있지만 졸업을 못해 전공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표현해야 할 때는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꾸밈없이 표현하려고 한다. 감정은 최대한 억누르면서 예민할 만큼 섬세하게, 피부의 근육까지.

Q : 다양한 실험에 대해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싶은지?

A : 그 동안 제 생활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한 조급함과 부담감이 컸다. 한국에 돌아가면 재미있게 마음 맞는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미 습관이 들어서인지 무섭게도 잘 안되더라. 이제부터라도 슬로 라이프를 즐기면서 리서치에 공 들이고 싶다.

 

5) 고블린파티 - <낯가림>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이 안경 쓰면 못 알아보는데...인사만 하고 가서 다행이다. 잘 지냈냐, 밥 먹었냐 그랬으면 또 얼마나 쩔쩔매고 더듬었을까.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세상을 넓게 보라고? 됐어, 짜장, 탕수육, 군만두 왕창 시켜서 내 뱃속이나 넓힐래. 췟!” 짓궂고도 친근한 ‘도깨비들의 당’을 의미하는 고블린파티는 현대무용을 바탕으로 유머와 진지함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동으로 자유롭게 창작하고 공연한다. 대표작 <은장도>는 국내외 수많은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다. <낯가림>은 어쩔 줄 모르는 수줍음에 손발이 움츠러드는 모습을 안무언어로 사용, 제22회 마스단사에서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고블린파티 '낯가림' (c)금시원
고블린파티 '낯가림' (c)금시원

 

인터뷰 - 지경민 안무가

Q : 작품에서 낯가리는 사람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했다.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인지? 아니면 안무가님의 성격과 관계 없이 낯가림을 주제로 리서치해서 만든 건지?

A : 물론 관계 있다. 지금도 낯가리는 성격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심할 때는 그 성격이 춤으로도 나왔고 그에 따른 주변의 여러 질타가 있었다. 지금 제가 일상적으로 하는 무용(춤)은 철저히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질타를 많이 받았던 그 춤이 더 순수하고 흥미로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춤을 다시 제 몸으로 불러들여와 보자는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이다. 낯가림은 과거의 저를 모방한 작품이다.

Q : 솔로 작품이지만 고블린파티의 세 안무가가 공동으로 만들었다. 각각 어떠한 아이디어를 갖고 와서 어떻게 안무를 발전시켰는지 창작과정을 알고 싶다.

A : 임진호 씨는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이경구 씨는 동작의 디테일 위주로 했다. 두 분 모두 과거의 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너는 과거에 이런 모습이었다’에 관한 많은 팁과 영감을 주셨다. 가령 옛날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힘이 좋지 않았으니, 온몸에 힘을 다 빼고 최소한의 근육으로 움직여 보라, 혹은 작품 안에 손으로 하는 춤에서 낯가림이라는 주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얼굴 앞에서 손동작을 해보자는 등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두 분이 없었다면 작품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 해외에서도 이 작품을 여러 번 공연했다. 낯가림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다를텐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어땠는지?

A : 2017년 <낯가림>으로 스페인 마스단사 경연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게 됐다. 극장 로비에서 대회의 마지막 파티가 있었고, 각국에서 온 많은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즐기는 자리였는데 낯가림이 심한 저는 추는 둥 마는 둥 리듬만 타고 있었다. 작품 제목이 영어로 <Shyness>였는데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Don’t be shy!”(낯가리지 마!) 하더라. 용기를 주셔서 함께 신나게 춤을 춘 기억이 있다. 아마 낯가림에 대한 서양문화도 동양의 문화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Q : 고블린파티의 시놉시스는 항상 소설처럼 읽힌다. 작품을 만드실 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이것이 움직임을 만드는 작업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A : 제가 안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움직임 자체에만 관심과 흥미가 있던 터라 주제나 내용과는 다소 상관없는 움직임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안무한 작품을 어떤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는데 그때 부모님께서 보러 오셔서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내용과 움직임을 매칭시키면서 관람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공연이 끝난 뒤 작품 내용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 동작이 이런 의미 맞냐고 물으시는데 민망함이 밀려왔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프로그램에 적힌 작품 설명이 참 중요한 것일 수 있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고 지금도 재밌고 작품 관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놉시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Q : 유머러스한 것부터 진지한 것까지 고블린파티는 작품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고블린파티만의 예술적 정체성이 있다면?

A : 어떤 유명 작가님이 “좋은 글은 아이도 어른도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라고 하셨는데 저희도 늘 그러한 작품을 만들려 노력한다. 실제로 우리 작품에 아이들을 위한 작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작품, 나아가 가족을 위한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현장 자체가 때로는 한없이 진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머 코드 등이 들어가는 것 같다. 유일하게 <낯가림>의 경우에만 유머 코드가 없는 것이 제가 이 작품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LDP <0층> (윤나라 안무)

안무자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드러내며 중립의 위치인 ‘0’에 도달하려 한다. 바로 ‘지금’은 끊임없이 과거가 되어간다. ‘0’은 공간의 빈틈을 채우기 위함도, 아무것도 없음을 표시하기 위함도 아니며 지금의 순간,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을 포함한 층으로 형상화하여 불안정과 안정의 경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나아가다 보면 ‘0’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2001년 창단된 LDP는 한국의 무용을 글로벌 네트워크로 펼쳐 나아가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지닌 단체이다. 창단 이래 지속적인 실험적 도전과 LDP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심도 있는 예술철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 레퍼토리를 창작하며 ‘믿고 보는 무용단’으로 한국 현대무용의 팬덤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윤나라 '0층' (c)금시원
윤나라 '0층' (c)금시원

 

인터뷰 - 윤나라 안무가

Q : 멈추지 않는 연속적인 시간 속에 놓인 현재를 이야기하는 매우 추상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영감을 받아 탐구하게 되었나?

A : 굉장히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 현실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안에서 양쪽 면의 거울에 반사되어 무한적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을 보고 마치 지금의 나와 흡사하다고 느껴 이것을 무대로 올려보고 싶었다.

Q : 이러한 주제를 춤(움직임)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A : ‘시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이를 세분화시켜 시간의 흐름 즉, 과거>미래>현재 순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시간을 작품에서 단순하게부터 추상적으로까지 계속 몸으로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으며 과거는 그림자, 미래는 계단, 현재는 ‘걷다’로 모티브를 삼아 그것을 추상적으로 발전시켜 움직임화시키고 그런 것들에 꼬리를 물어 연출하고 전체적인 미장센에 신경을 썼다.

Q : 주제 탐구를 위한 무용수들과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고 각각 무용수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A : 이번 작품은 무용수의 역할보다는 사람에게 잔상이 끝없이 생기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 즉 ‘시간’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어 개개인의 캐릭터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 주관적 생각을 무용수에게 전달하고 이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결국은 제 뜻대로 되는 거지만, 시작할 때는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무용수의 뜻대로 가지만, 결과는 제가 만들어가며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무용수 전체가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저의 역할이고 안무가의 책임이다.

Q : 갑작스럽게 무대 공연에서 영상 상영으로 변경이 있었는데 작품 <0층>을 전달하는 데 있어 영상이라는 매체가 어떠한 가능성과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A : 순수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사실 영상작업으로 대체되는 것은 굉장히 아쉽고 무용의 가장 큰 매력인 관객과의 직접소통을 할 수 없어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이 현대무용의 장점이기도 하며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흥미 있게 작업했다. 카메라의 각도나 시점들에 따라서 무궁무진하게 표현이 가능하며 무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데 영상이라는 매체가 앞으로 좋은 기회가 되어주면서 활성화되어 계속 더 좋은 작업과 작품들이 나오길 희망한다.

Q : 떠오르는 안무가로 손꼽히며 해외에서도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들은?

A : 정말로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안무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고 사실 아직 그런 것에 대해 정의할 정도의 실력도 지식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계획한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저만의 고집은 계속될 것 같다.

저의 장점을 계속해서 살려야할 것이다. 트렌디함에 뒤처지지 않는 무대로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를 대신해줄 수 있고 대변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소통하는’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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