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박혜상의 시대를 알리다
[공연리뷰] 박혜상의 시대를 알리다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28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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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상독창회 (11월 20일 롯데콘서트홀)
지난 20일 열린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제공=크레디아)
지난 20일 열린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제공=크레디아)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I AM HERA.

음반 재킷을 보고 살짝 두근거렸다. 누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 최고의 여신 헤라를 칭하다니. 숏컷 헤어와 긴 손가락의 소프라노. 그녀의 눈빛이 재킷 표지를 뚫을 것처럼 강렬했다.

DG가 선택한 프리마 돈나 소프라노 박혜상의 리사이틀 <I AM HERA>가 지난 11월 2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프로그램을 보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퍼셀과 헨델, 페르골레지와 모차르트부터 비제와 로시니, 몽살바헤의 곡들을 불렀고, 최진, 김주원의 한국가곡들이 이어졌다. 앙코르곡은 이원주의 <이화우>와 나운영의 <시편 23편>. 김주원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나운영의 <시편 23편>은 DG의 음반에도 수록된 곡들이다.

흰 드레스를 살짝 걷어올리고 무대에 나타난 박혜상. 그녀의 무대를 보고 있으니 ‘러블리’라는 수식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유튜브로 그녀가 참가했던 르네 플레밍 마스터클라스를 봤을 때도 떠올랐던 단어다.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공연모습(사진=크레디아)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공연모습(c)문혁훈(사진=크레디아)

그녀의 매력은 러블리함에 그치지 않았다. 비제의 <무당벌레>를 부를 때는 장난스러운 날갯짓을 하는 한 마리 무당벌레가 되어 날아다녔으나, <네 마음을 열어라>에서는 가슴부터 정수리까지 관통하는 시원한 소리의 길을 열어 청중에게 충족감을 안겼다. 탄탄한 기량을 딛고 발산하는 풍부한 표현의 무대를 청중은 이날 마음껏 즐겼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어서 오세요, 내 사랑>을 부를 때 박혜상은 완전한 수잔나가 되었고 로시니의 <방금 그 노래 소리>에서는 완전한 로지나가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된 메트 오페라 <돈 조반니>가 얼마나 아쉬웠는지. 기막힌 체를리나를 보여주었을텐데......박혜상의 로지나는 누구보다 새롭고 사랑스러웠다. 어느 무대에선가 박혜상은 이 노래로 DG와 계약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2018년 메트 갈라 콘서트에서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DG 대표를 사로잡은 바로 그 곡이 이 <방금 그 노래 소리>인 것. 순수함과 기품과 설레임이 녹아있는 해석이 돋보였다.

청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페인 작곡가 몽살바헤의 <다섯 개의 흑인 노래>에서도 역시 리듬감과 발성이 빛났다. 자유자재로 스페인 현대가곡을 소화했는데, 쥐락펴락 무대를 갖고 놀았다.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공연모습(c)문혁훈(사진=크레디아)

그리고 마지막 무대였던 한국 가곡.

최진의 <시간에 기대어>는 고성현을 비롯한 남자 성악가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다. 박혜상은 힘을 완전히 빼고 처연히 읊조리듯 불러 기존 가수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작은 소리지만 울림이 있는 노래였다. 김주원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서정주 시인의 시에 붙인 곡이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로 시작하는 가사의 곡을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일랴 라쉬코프스키가 잘 표현해주어 놀라웠다. 슬픔을 삼키며 감정을 토해내는 박혜상의 표현도 나무랄 데 없었다.

무대를 마치고 그녀는 원래 <I am HERA> 대신에 <I am OO>라고 비워놓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의미로 ‘I am OO’ 하며 자기 이름을 넣어 외쳐 보자고도 제안했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그녀의 과제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공연모습(사진=크레디아)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공연모습(c)문혁훈(사진=크레디아)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취소된 한 해다. 박혜상은 2020년 <헨젤과 그레텔> <돈 조반니>의 메트 주역 데뷔도 미루어진 상황에서, 리사이틀을 찾아준 청중들에게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시편 23편>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는데, 청중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녀의 인사가 작은 감동으로 와 닿았다.

코로나 때문에 무대가 귀한 시기다. 이처럼 공들인 무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최강의 여신 헤라’의 시대를 선언한 박혜상,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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