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in 무비] 지친 한 해, 엄마품 같은 영화 "작은 아씨들"
[클래식 in 무비] 지친 한 해, 엄마품 같은 영화 "작은 아씨들"
  • 강창호 기자
  • 승인 2020.12.01 0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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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처 Arts & Culture 12월호 (Vol. 179)
슈만, 빠삐용 중 10번 ‘Waltz Vivo’, 어린이 정경 중 1번 ‘미지의 나라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신나게 뉴욕 거리를 뛰어가는 소설가 조 마치(시얼샤 로넌), 영화 <작은 아씨들>의 여러 포스터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방금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그녀의 흥분과 기쁨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긴 명장면이기도 하다.

​2020년 올 초에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시대를 산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1888)의 소설을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에 의해 아름다운 색채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네 자매 중 둘째 조의 시선에서 자매들의 삶을 조명하며 7년의 시간을 오가는 플래시백 구조로 이들의 꿈같은 소녀 시절을 동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초반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케 하는 오프닝 자막이 특별하다. 바로 원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문장 "삶이 고통스러워, 밝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I've had lot's of troubles, so I write jolly tales)"라는 글귀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짐작케 한다. 여자가 자기 책상을 가진다는 게 부적절하던 시절, 남성 권위주의 시대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수용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며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유색인종의 삶이 인정된 것 또한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아직도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은 여러 모양으로 그 본색을 드러내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현재 진행형 이슈이기도 하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단적으로 여자, 돈, 예술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여자가 그걸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에 대해 그렸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초반부에 이미 결론이 나왔다. 조의 원고를 펜으로 찍찍 그어 버리는 출판사 사장, 그가 말하길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결혼 아니면 죽음”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처음에 그랬잖아요 결혼 아니면 죽음이라고 그게 규칙이에요 그러고 나서 조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죠”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여자의 신분 상승은 단지 좋은 곳에 시집을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첫째 메그(엠마 왓슨)의 결혼과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의 결혼을 통해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과 자유로운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조의 반전이 영화의 말미를 장식한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음악 같은 영화, 영화 같은 음악!

목소리를 담은 이 영화는 실제로 엄마가 딸들에게 말하듯이, 자매들이 뒤얽혀가며 웃음과 수다가 가득한 다양한 장면들로 채워졌다.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각각의 대사는 마치 뮤지컬과 교향곡을 듣는 것처럼 형형색색 다양하고 매우 리드미컬하다. 실제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점을 매우 중요시했다. 느릿느릿한 과거 19세기의 언어를 현대의 언어로 스피드 하게 전개하며 서로 간에 주고받는 대사의 관계를 연출했다.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을 지시하는 그녀의 디렉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이기도 하다.

마크 앙드레 아믈랭, 슈만 "Papillons, Op.2, No.10: Waltz Vivo"호로비츠, 슈만 "Kinderszenen, Op.15, No.1: Von fremden ​Landern und Menschen"에밀 길레스, 베토벤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Op. 13, 'Sonata Pathetique,' No. 2: Adagio cantabile (사진=예전 레코드 예술의전당)
마크 앙드레 아믈랭 (슈만 "Papillons, Op.2, No.10: Waltz Vivo"), 호로비츠 (슈만 "Kinderszenen, Op.15, No.1: Von fremden ​Landern und Menschen"), 에밀 길레스 (베토벤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Op. 13, 'Sonata Pathetique,' No. 2: Adagio cantabile) (사진=예전레코드 예술의전당)

영화에는 여느 음악영화 못지않게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로 풍성함을 이룬다. 부자들의 저택에서 울려 퍼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슈베르트의 왈츠는 시대적 고증과 함께 당시 화려했던 삶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바흐, 드보르작, 쇼팽, 슈만, 브람스, 베토벤 등의 음악은 화면 곳곳을 채색하며 예술로서의 영화를 구성해 간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감명 깊은 장면 중의 하나는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가 로렌스 저택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이웃인 로렌스는 병으로 딸을 잃었고 평소 딸이 즐겨쳤던 슈만의 곡들을 들으며 눈물로 딸을 추억한다. 그런데 딸 같던 베스마저 선홍열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의 말미에 프리드리히(루이 가렐)가 집에 있던 베스의 피아노로 <베토벤 소나타 8번 2악장>을 연주하며 천국에 간 베스를 다같이 추모하는 장면 또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음악상, 의상상 총 6개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여기에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 및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전 세계를 사로잡은 마스터피스임을 입증했다. 또한,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무려 55개 수상 및 178개 노미네이트가 되는 역대급 수치의 수상 기록 행진을 펼치며 여전히 그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_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그중 주목할만한 에피소드 하나는 조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피터팬처럼 그녀는 마냥 소녀로 남기를 원한다. 반면에 둘째로 태어났지만 행동은 장녀처럼 모든 일에 책임감이 강하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긴 머리 하나쯤은 싹둑 잘라낸다. 이렇게 털털하고 보이시한 그녀는 사랑이 다가오는 것조차 두렵다. 부잣집 도련님 로리 로렌스(티모시 샬라메)의 청혼을 거절한 채 오직 그녀의 목표는 정글 같은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떳떳하게 성공하는 것. 어찌 보면 그녀는 완전히 혁명적이며 저항적인 영혼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에 그레타 거윅 감독은 어릴 적부터 조의 팬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 제작사 소니에 달려가 자신에게 이 영화를 맡겨달라고 자원했다는 후문이다.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사진=네이버 영화)

젊음과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 <작은 아씨들>은 과거 1987년 일본의 48부작 애니메이션과 1994년 <작은 아씨들>과 더불어 고전 중의 고전으로 가슴에 남는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 또한 어릴 적에 만난 <작은 아씨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결국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뤄냈으며 젊은 여성들로부터 또 다른 ‘조 마치’로 상징적인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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