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유랑의 꽃, ‘남사당의 덧뵈기’ 이야기
[북리뷰] 유랑의 꽃, ‘남사당의 덧뵈기’ 이야기
  • 이종호 기자
  • 승인 2020.12.09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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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에 관한 최초의 이론/저작 종합저작물
“예술의 전승에는 영혼이 있어야”
덧뵈기
'남사당의 덧뵈기' 표지(제공=아마존북스)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기자 = 2005년 상영된 영화 <왕의 남자>는 일반인들에게 남사당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남사당패에게 <왕의 남자>는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다. 영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남사당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좋지만,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공길(이준기 분)이 양반에게 몸을 파는 부분 등 허구의 이야기가 마치 남사당의 실제 풍습인 것처럼 인식되는 등 남사당 연희자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이미지 왜곡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에 아마존북스에서 나온 <남사당 덧뵈기>는 단편적, 부분적으로만 인식돼 있는 남사당에 관한 모든 것을 알리고자 남사당의 명인 문진수와 예술경영 전문가 남정숙이 함께 쓴 책이다(432쪽, 2만8천원). 이 책은 남사당의 6가지 종목 중 탈놀이에 관한 내용이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 버나(대접돌리기), 풍물,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덜미(꼭두각시) 등 나머지 다섯 종목에 관한 책도 계속 집필할 계획이다.

남사당 명인 남진수(사진=아마존북스)
남사당 명인 문진수(사진=아마존북스)

문진수는 지난 30년 동안 박용태, 남기수, 남기문 명인에게서 전수 받고 사단법인 남사당을 이끌며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인 남사당의 맥을 잇고 있는 이수자로 지금까지 남사당 관련 논문을 여러 편 썼다. 남사당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보기 드문 전문가이다.

남정숙은 중앙대(예술경영학과)와 성균관대(경영학)에서 공부한 예술경영과 문화마케팅의 실력자이자 전통문화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를 수행해 온 전방위 문화정책 전문가이다.

공저자 남정숙(사진=아마존북스)
공저자 남정숙(사진=아마존북스)

<왕의 남자> 진실과 오해
남사당은 6개 종목 가운데 꼭두각시놀음이 1964년 4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고, 1988년 나머지 5개 종목 모두 중요무형문화재가 됐으며,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대표적인 전통연희 종목이다.

이 책은 남사당의 역사적 조망, 선대 예인들의 공연 모습, 덧뵈기의 구조와 내용, 전승자의 계보, 남사당의 탈, 재담 및 가사, 음악, 춤 등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 기록했으며, 최대한 원형을 살려 전공/전승자들, 연구자들의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을 실었다. 또한 1965년, 2003년, 2018년 영상기록 및 채록을 기본으로 배역, 의상, 탈의 모양과 출연진, 대사 변화 등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비교하면서 타 장르와 구분되는 덧뵈기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탈, 음악, 춤, 재담 및 가사에 대한 특징을 분석, 최초의 탈놀이 교본이 되도록 만들었다.

1968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펴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40호>, 1974년 심우성의 <남사당패 연구> 등 연구보고서 형태의 단편적인 자료들이 남아 있을 뿐 전공/전승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종합적, 체계적 도서자료가 거의 없었던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이번 <남사당의 덧뵈기> 출간은 획기적인 일이다. 특히 문진수가 취합한 1965년, 1974년, 1990년, 2018년 등 4편의 재담 및 가사본은 단순한 교본을 넘어 전통예술의 역사적 변화양상을 살펴보기에 매우 좋은 자료가 될 것같다.

남사당은 백정/남창이 아닌 ‘궁중예인’
남사당놀이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산대(山臺)라는 대형 무대를 중심으로 열리는 대표적 궁중축제의 하나였다. 이는 중국 등 외국 사신들이 방문할 때 환영행사로 올려지던 산대놀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남사당=백정’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왔으나 이는 한 마디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게 저자들의 비판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왕이 참석하고 의금부가 주관하는 국가행사에 소를 도살하고 신분도 불분명한 내∙외국인이자 공연예술 비전문가인 백정이 출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남사당놀이의 전신인 산대놀이 공연을 하기 위해 궁중에 소속된 전문 재인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조선 후기까지 의금부, 나례청 등이 전담해 관리할 만큼 교육 받고 훈련 받은 전문가들이었으며, 비단 옷과 한삼 등 고급스런 무대의상을 입었던 전문 재인의 신분으로 대우 받았다는 그림과 기록들을 제시하면서 남색과 남창, 백정이라는 등의 남사당의 신분에 관한 근거 없는 부정적 인식은 타파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대놀이와 별산대놀이, 안성 이전에 한양이 있었다
대부분 남사당놀이 하면 안성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탈놀이 전문가들은 남사당의 덧뵈기가 양주별산대놀이의 한 유파이거나 모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남사당의 덧뵈기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궁중 산대놀이를 전승한 탈놀이로, 마을굿에서 유래된 탈놀이와는 다른 계통임을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산대놀이가 금지되자 조선시대 궁중에서 산대놀이에 참가했던 전문 재인들은 생계를 위해 애오개, 녹번, 사직, 홍제동, 구파발, 노량진 등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이후 서울지역 산대놀이들이 양주, 송파, 퇴계원으로 퍼져 나갔는데 이들 산대놀이를 궁중의 산대놀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별산대놀이라고 지칭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주별산대놀이, 송파별산대놀이, 퇴계원별산대놀이로 불리게 된 것. 그리고 이들 별산대놀이와 구분해서 본래의 산대놀이를 본산대놀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이후 서울지역 별산대놀이들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고 장시(큰 시장)나 마을굿에 참여하면서 남사당놀이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안성남사당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 이전에 한양본산대놀이가 있었다고 저자들은 상기시킨다.

“전승예술에는 기술만 아니라 정신이 깃들어야“
양질의 전통예술이 계속 발전해 나가려면 공동체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교재와 교육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남사당에도 자료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전승예술단체들이 그렇듯 흩어져 있거나 부분적으로만 내려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전승자와 교육시스템은 있으나 교재가 부실한 형편이었다.

문진수는 <남사당의 덧뵈기> 출간에 대해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자 전통예술, 전통연희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현장예술인 남사당놀이가 변형, 왜곡되는 운명을 극복하고 전승을 위해 애쓰신 선대 전문 재인들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동시에 현재와 미래 남사당놀이 전승자들에게 남사당놀이의 올바른 전승을 위한 기준과 표준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가 선배들에게서 배운 탈 제작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탈과 의상과 소품들의 크기와 모양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사진으로 남기고, 음악과 춤 사진에 자신이 모델이 되어 시연하고, 수십, 수백 장의 사진으로 찍고 편집하는 작업은 사라져 가는 전통예술을 지키고자 사랑하고 노력하는 한 전통예술인의 사명감을 깊이 실감케 한다.

문진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 이수자로 남사당놀이보존회/사단법인 남사당 회장이다. 또한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이수자, 무형문화재 제15호 승무 이수자, 무형문화재 제17호 영광우도농악 이수자이기도 하다. 한양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한국무형유산연구소 부소장 등을 맡으면서 여러 대학에 출강중이다.

공저자 남정숙은 순천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 총감독, 익산서동축제 총감독 등 많은 지역축제의 감독으로 일했다. 또한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 수행,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센터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국제상 제정 필요성에 관한 연구 등 전통문화 분야에서도 많은 과제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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