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지에 실린 ‘매혹적인’ 한국 현대무용
가디언지에 실린 ‘매혹적인’ 한국 현대무용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12.14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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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스(The Place) 축제 한국무용 쇼케이스
한국 댄스필름과 K-pop 등 다뤄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지난 12월 2일(수)-5일(토), 영국 런던의 대표적 무용극장인 더 플레이스(The Place)의 한국무용 쇼케이스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영국의 대표적 신문인 <가디언>의 무용평론가 린지 윈십(Lyndsey Winship)은 기고를 통해 온라인 축제에 참가한 신창호, 차진엽 등 한국 현대무용가들의 작품과 댄스필름, 그리고 케이팝(K-pop) 안무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국제무대에서 K-pop 댄스 뿐 아니라 현대무용에서도 한류가 일어나길 바라며 기고 내용을 소개한다.

 

린지 윈십(사진=트위터 캡처)
린지 윈십(사진=트위터 캡처)

올해 디지털로 전환된 많은 축제들 중 하나인 더 플레이스 한국무용 쇼케이스는 번창하고 있는 한국 현대무용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제공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창호의 <비욘드 블랙>은 (비록 20분 정도지만) 참가작 중 유일한 전막작품이었는데 이는 춤작품인 동시에 하나의 철학적 주제였다. 질문, “인공지능(AI)은 인간만큼 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이미 수십 년 전, 머스 커닝햄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안무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2045년 쯤 되면 컴퓨터 지능이 인간의 모든 학습내용을 전수 받아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AI는 인간의 동작을 ‘배워서’만 안무할 뿐이다. 신창호 작품의 AI인 ‘마디’는 무용수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관절과 사지를 점과 선으로 번역해, 점과 선을 독특한 패턴으로 배치하는 무한한 방식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면, 이를 무용수들이 다시 컴퓨터로부터 학습, <비욘드 블랙>을 공연하는 것이다. 팔다리 여기저기로 신호가 교대로 보내지는 것처럼 춤동작이 뭔가 끊어진듯 로봇처럼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정작 그 동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친 느낌의 인간의 공연에 기계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스텝들을 사람이 만들었든 기계가 만들었든, 의미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춤이요 인간의 시선이다.

허성임 안무, '넛 크러셔'(c)SANG-HOON-OK
허성임 안무, '넛 크러셔'(c)SANG-HOON-OK

한국무용의 현재를 보다 폭넓게 보여주기 위해 6편의 단편영화도 마련됐다. 나는 성승정 감독의 <Zzz>가 맘에 들었는데, 무용수들이 방(아파트) 안에서 기술적으로 몸을 던져 상상 속의 모기를 잡으려는 내용이었고, 김시헌(Sohn Kim)의 <Bookanima>는 플립북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발레, 모던, 재즈, 탭, 브레이크 등 여러 스타일의 무용을 일러스트해주는 재치있는 작품이었다. 재즈 댄스의 거장 루이지의 목소리가 그의 철학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코 움직임을 멈추지 말라.”

청파동을 소재로 한 댄스필름 '푸른 언덕의 마을'
청파동(靑坡洞)을 소재로 한 댄스필름 '푸른 언덕의 마을'

송주원 감독의 <푸른 언덕의 마을(A Town with a Blue Hill>은 다소 초현실적인 스쿠비 두(만화영화 주인공)같은 분위기였는데, 밝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철없는 모험에 나선다. 이들은 시가지 주변의 황량한 거리를 다니며 놀면서 ‘개발’의 물결에 맞서 어린 시절의 무구함과 상상을 붙잡으려 한다.

'흰지팡이(White Cane)'의 한 장면
'흰지팡이(White Cane)'의 한 장면

Bö Lee의 <흰지팡이>(맹인용 지팡이) 역시 거리가 무대인데, 무용수 스티브 온게리와 함께 케냐의 한 시장에서 촬영했으며 그의 감각들-얼굴에 스치는 옷이나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곡식 낟알 같은-을 소재로 새로운 동작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모습을 담았다.

이번 축제에는 한국문화원과 함께 제작한 4편의 다큐멘터리도 선보였다. 매우 솜씨있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여성 안무가 네 명의 작품과 삶에 대한 흥미로운 스냅샷을 보여준다. 세 편은 현대무용 분야로 호페쉬 셱터의 무용수였던 차진엽, 런던에서 활동중인 허성임, 그리고 아트 프로젝트 보라의 김보라의 것인데 팬데믹 속의 작업과 페미니즘 댄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차진엽 다큐 필름 중에서(사진=youtube.com)
차진엽 다큐 필름 중에서(사진=youtube.com)

네 번째는 조금 다른데, K-pop 안무가 배윤정을 조명하고 있다. K-pop 댄스의 동작은 대부분 귀엽고, 섹시하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으로, 전세계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지만, 이 산업의 숨은 관점은 교육이다. 영상 속에서 배윤정은 동료 안무가들을 불러 모아 저작권 문제, 그리고 안무가들이 춤을 사용하기 위해 라이선스가 필요한지 등을 의논한다. 이제 미래의 ‘아이돌’을 양성하는 명성제조기 K-pop 연습실이 등장한다. “선생님이 우리를 엄격하게 훈련시키면 좋겠어요”라고 바라는 말이 자막으로 나온다. 멋지다.

더 플레이스의 한국무용축제는 그간 더 플레이스측이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를 직접 관람한 뒤 선정한 무용팀들을 포함, 5개 단체를 초청해 진행해왔으나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상행사로 대체됐다. 한국 안무가들의 다큐 필름은 더 플레이스 극장 사이트에서 내년 1월 9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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