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리즈 콩쿠르’와 동의어, 파니 워터맨 여사 별세
[단독] ‘리즈 콩쿠르’와 동의어, 파니 워터맨 여사 별세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12.22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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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육과 리즈 콩쿠르에 평생 헌신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우리를 연결시켜”
2003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자 Evgenia Rubinova와 함께(사진=Leeds Piano Competition)
2003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자 Evgenia Rubinova와 함께(사진=Leeds Piano Competition)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전설적인 피아노 교육자이자 리즈 콩쿠르 창설자인 파니 워터맨(Dame Fanny Waterman) 여사가 2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BBC, 가디언 등 다수 영국 매체들은 워터맨 여사가 지난 일요일 요크셔주 일클리 지역의 주거요양보호소에서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전했다.

워터맨 여사는 그 자신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나 이후 교육으로 관심을 돌렸으며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를 창설, 2015년까지 50년 넘게 운영했다. 현 예술감독인 지휘자 아담 게이트하우스는 그녀를 “우리 문화계에 다시 없을 최고의 인물이었다”며 “우리 모두를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한데 연결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1920년 리즈에서 태어난 파니 워터맨은 1941년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음해 프롬스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콘서트 피아니스트에서 교육으로 관심을 돌린 그녀는 6개 대륙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며 '파니 대장(Field Marshal Fanny)'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녀는 ‘나와 내 피아노’라는 시리즈로 피아노 교육서적을 펴냈다. 시리즈는 30여 권에 달하며 300만부 이상이 팔렸고 절판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고인이 된 남편 제프리 드 카이저(Dr. Geoffrey de Keyser)와 함께 1961년 창설한 리즈 콩쿠르일 것이다. 그녀는 콩쿠르를 만드는 꿈을 꾸고 나서, 잠자는 남편을 깨워 콩쿠르를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이 때 남편은 ‘그런 건 (수도인) 런던에서 해야 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런던이 아닌 리즈에서 콩쿠르를 창설했다.

리즈 콩쿠르는 1963년 첫 대회가 열렸으며 라두 루푸, 머레이 페라이어, 미셸 달베르토 등 수많은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했고, 한국의 김선욱도 2006년 우승을 차지했다. 

파니 워터맨은 2015년 리즈 콩쿠르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이제 물려줄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그녀는 물러나고 싶지 않았으며 퇴임하기로 한 것을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거기 영원토록 있고 싶었어요, 아직 할 게 너무너무 많았거든요.”라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헌신으로 1971년 대영제국 4급 훈장(OBE)을 받았으며 1999년에는 훈작사(CBE), 그리고 2005년 Dame 칭호(남자의 Sir에 해당)를 받았다. 올 3월 그녀의 100회 생일(22일)을 기념한 행사가 계획됐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그녀는 올 6월 60년간 살았던 우드가르트의 저택을 매각했으며 보석 등 소장품들은 이후 경매를 통해 처분했다.

리즈 콩쿠르는 3년마다 개최되며 제20회 대회는 2021년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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