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비대면 시대에 더 잘 지내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북리뷰] 비대면 시대에 더 잘 지내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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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김개미/김광혁/김기영/신견식/노명우/리우진/김주영/김택규/황치영/김영글/이지영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도서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제공=글항아리)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바야흐로 비대면 시대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제 시대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격변을 겪었다. 비대면도 그 변화 중 하나다.

비대면 시대에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법을 모은 책이 나왔다. 글항아리의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 12인은 원래부터 혼자 일해 왔던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프리랜서들로,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기도 하고 공통점도 있다. 작가, 유튜버, 피아니스트, 편집자, 번역가, 디자이너, 광고 크리에이터 등 서로 다른 창조적 분야에서 맞게 된 비대면 시대. 책을 통해 이들이 일하는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혼자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매우 루틴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정규직 출근자들을 쳇바퀴 도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일상도 매우 루틴하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웃풋은 이 루틴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다. 물론 시간이 많다면 많고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 상태에서 루틴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의 열매를 위해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의 유구한 게으름과 한량 같은 태도와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성질을 성실과 규율로 덮어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읽고 쓰는 것을 너무 사랑해서 저를 바꿨습니다. 필요하다면 저는 저를 몇 번이고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김겨울 <프리랜서의 시간여행을 위한 학기 가이드>

저의 첫 체질 변화는 꼼꼼한 스케줄 정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보통 이런 스케줄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과거에는 수첩을 사용해 기록했지만 현재는 구글 캘린더에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 김광혁 <내 안에 사는 다중이들이 물 만난 언택트 세상>

작가이자 유튜버 김겨울은 아주 철저한 시간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글에 대한 강렬한 사랑으로 성실한 루틴을 지켜나가고 있다. 디자이너 김광혁은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데 이것을 부캐 혹은 다중이들과의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내면의 다중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시간 관리하는 법, 연동성과 효율성에 대해 설명한다.

프리랜서의 삶, 창작자로서의 삶에는 무엇보다 루틴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이들. 루틴은 정말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일할 때의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일상에서 최대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본인의 일상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나를 ‘능동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능동형 외톨이는 글을 쓰며 살기 적합하다.

어떤 외톨이가 됐든 긍정적 의미를 가진 외톨이가 되려면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시도 재능과 함께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잠깐 머문다. 결국 나에게 친구는 나뿐인 건가. 분명한 건, 혼자서는 경쟁할 수 없지만, 혼자 있으면 경쟁력이 생긴다. 글을 쓰는 자는 모이면 소문을 만들 확률이 높고, 흩어지면 글을 쓸 확률이 높다. - 김개미 <파비앙, 내가 보이니?>

시인 김개미는 만남을 많이 차단하고 홀로 지내면서 시를 꺼내는 루틴을 지켜나간다. 이런 사람들은 비대면 시대가 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점이 없다.

스스로 잘 굴러가려면 자기 관리가 관건이므로 자제력도 요구된다. (중략) 이런 절약 및 맨몸운동은 맥락을 같이한다. 둘 다 ‘셀프 컨트롤’이다. – 신견식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언어를 좋아하기>

회사의 구성원일 때는 내가 아파도 대체할 사람이 있다. 반면 혼자 일하는 나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체력은 자신감의 근원이자 실력이다. – 이지영 <음악을 듣고 쓰고 말하는 사람들의 일상>

김개미 시인은 만남을 최대한 차단하며 격일로 시를 꺼내는 일상을 반복한다. 우리들도 흔히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기 빨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김 시인이 오롯이 시를 떠올려 글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조용히 혼자 있을 때 가능하다.

신견식 번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재미를 누리며 일상을 보낸다. 그는 셀프 컨트롤을 하는데, 매일 맨몸운동을 하며 아직도 2G폰을 쓴다. 언어를 향한 사랑이 그 일상을 가능하게 한다. 클래식 음악잡지 편집장과 공연기획 및 음악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중개자 이지영 역시 체력 관리를 위해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프리랜서에게 체력은 자산이다.

프리랜서는 일상과 일이 뒤섞일 때가 많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체크무늬처럼 구획을 나눠야 좋다. - 신견식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언어를 좋아하기>

글쓰기는 정신노동이지만, 이 정신노동은 매우 특이하게도 육체노동의 성격도 지닌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구상과 지루하고 반복적인 실행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구상과 실행을 모두 요구한다. – 노명우 <나는 춤을 출 때는 춤을 추고 잠을 잘 때는 잠을 잔다>

노명우 사회학자는 글쓰기를 구상할 때와 글쓰기를 실행할 때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교수이자 작가인 그는 각각의 일을 할 때 필요한 작업 환경을 잘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견식 번역가 역시 일상과 작업 환경을 분리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이 있는데, 에너지가 많은 스타일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본인의 스타일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들은 내면을 잘 다스리고 집에서 충분히 쉬어주며 에너지를 채워야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프리랜서는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리얼 프리랜서’들은 철저하게 시간과 체력과 일하는 환경을 고려하고 있다.

시간예술 종사자는 아무리 공연이 많아도 정해진 그 시각에 최고의 효과를 내도록 자신의 시계를 맞춘다. 그렇게 준비된 시계는 매우 예민한 과정으로 흘러가며, 따라서 공연 일정이 변경되면 자신의 시계를 마치 외국에 간 것처럼 다시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은 우천으로 단 하루가 연기돼도 선발투수를 바꾸는 프로야구 경기를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 김주영 <베토벤이 그랬던 것처럼 나 홀로 피아노를>

올해 음악가들(연극배우나 모든 무대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은 정말 힘들었다. 공연이 당일에 취소되기도 하고 기약 없이 미뤄지기도 했다. 유럽의 공연장들은 셧다운으로 완전히 문이 닫혔으나 우리 나라는 사정이 조금 나아서 여름에 소수의 공연들이 열렸다. 운이 좋았던 것은 여름의 국내 청중이었는데,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의 영 스타들이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한국의 무대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공연장의 분위기는 어둡다.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건만 기념하는 큰 행사가 어디서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음악이 가진 힘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빗길을 뚫고 서울로 향하다가 스스로 만든 새로운 질문들을 가지고 도전을 즐겼던 베토벤이 우리에게 던질 법한 물음이 떠올랐다.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도, 그대들은 내 음악을 듣겠는가? 세상이 변해도 당신들에게 내 음악이 필요한가?” 두말할 것 없이, 그 대답은 ‘예스’ ‘그래야만 한다’이다. 베토벤이 있는 한, 그리고 음악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계속 뜨거울 것이며 우리의 시간들은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김주영 <베토벤이 그랬던 것처럼 나 홀로 피아노를>

비대면 시대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이들에게는 오히려 큰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비용을 아낄 수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이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 회의가 시작된 지는 오래 되었으나 지난해에야 제대로 정착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광혁 디자이너는 본인이 명명한 비대면 고효율 시스템에서 기회를 찾아냈다. 그는 디자이너 뿐 아니라 작가, 문화해설가, 브랜드 기획자, 타로 마스터, 게임 기획자, 팟캐스트 프로듀서 등 물 만난 고기처럼 부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택트 세상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간 클라우드 기능이 강화되면서 어디서든 작업하고 온라인에 저장해두면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작업을 이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렇게 인원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자 기존에 필수였던 멋들어진 사무실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중략)

연동성이 강화된 다음부터는 첫 미팅을 제외한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일을 해야 하다보니 그에 걸맞은 프로그램과 플랫폼을 찾아 모험을 하며 돌아다녔고 그렇게 쌓인 경험은 제게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존의 낡은 것을 버리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에 다른 일을 할 시간 여유가 생긴 것이지요. 그 시간 여유가 결국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하는 방식을 비대면 고효율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 김광혁 <내 안에 사는 다중이들이 물 만난 언택트 세상>

한우물만 파라, 전문직이 되자, 이런 표어들은 이제 한물 간 소리가 되었다.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멀티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광고 크리에이터 김기영은 걸으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걸으면서 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처럼 말이다. 길을 걷다가 ‘빠담빠담빠담’을 들었고 거기서 ‘빠름빠름빠름’을 떠올렸다.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에 책을 동시에 4권 정도 읽고 넷플릭스 9개를 동시 시청 중인 김기영은,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섞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접점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만나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컬래버레이션의 시대다. ‘산만한 시대가 내게로 왔다’고 말하는 저자. 이제 한 분야에 헌신하는 사람 말고도 산만한 에너자이저들이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산만한 아이를 둔 엄마로서 반가운 글이었다.

산만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시대가 왕림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다시 한 번 전한다. – 김기영 <산만해서 잘 나가는 사람들>

12인의 창작자들은 혼자서 일하기 위해, 자신을 독려하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세심히 스스로를 관리한다. 물론 여럿이 협업을 해야 할 때도 최선을 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래서 스스로 성실의 아이콘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패닉을 맞은 가운데, 덜 우울하고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의 세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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