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윤 개인전 ‘살아가고 있는 자의 기도’
정소윤 개인전 ‘살아가고 있는 자의 기도’
  • 김영일 기자
  • 승인 2021.01.05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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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로가 담긴 중첩풍경
정소윤 개인전 ‘살아가고 있는 자의 기도’ 포스터(사진제공=갤러리도스)

[더프리뷰=서울] 김영일 기자 = 우리의 삶은 자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의 섭리를 통하여 나와 타자를 이해하기도 한다. 예술에 있어서 자연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은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왔으며 예술가들에게 내적 감정을 형상화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달 6-12일 갤러리 도스에서 개인전을 여는 정소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의 흐름을 선과 선, 공간과 공간을 엮어 유기적인 형상으로 담아낸다. 그 작업 과정에는 삶의 본질이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생명의 근원과 숭고함과 같은 깊은 사색이 녹아든다. 작가에게 자연을 통한 사유, 그리고 수작업을 통한 노동의 과정은 인간의 내면의식을 일깨우는 삶의 중요한 과정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한 자연현상을 토대로 자연에 내재된 조형적 형태를 탐구함으로써 생명이 담고 있는 에너지를 현대적인 섬유작품으로 표현한다.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체의 형상을 언급할 때 인체를 빼놓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큰 우주 안에서 각각의 체계와 질서 속에서 관계하고 있다. 작품에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유기적 흐름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순환하며 주고받는 감각 너머의 생명 에너지를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정소윤 '누군가 널 위하여' 2020년 3월. 가변설치, 모노필라멘트사, 산성염색, 머신스티치. (사진제공=갤러리 도스)

작가는 재해석한 생명의 이미지를 선적인 재료로 엮어 중첩하고 반복하거나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공간에 표현하며 하나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형상들로 만들어낸다. 작품은 자연의 거대함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감정과 사유가 담긴 결과물이며 반복과 중첩의 원리를 통해 공간 속에서 총체적으로 표현된다.

부드럽고 유연한 섬유의 재질이 주는 촉각과 조형미가 만들어내는 시각의 호응은 작가의 도드라지는 특성 중 하나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선은 얽히고설킨 채 증식하고 확장하며 형상의 틀을 채워나간다. 치밀함과 성김, 막힘과 뚫림, 투명과 불투명, 빽빽함과 느슨함 등 대립적인 특성들이 때로는 즉흥적이지만 섬세한 변이의 과정을 거치며 서로 혼합된다. 이로써 구조와 형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퍼져나가는 형태를 이루며 무한한 표현의 범위를 보여준다.

선과 공간은 상호적인 관계로서 작용하며 공간은 드로잉의 영역이 된다. 선의 모임으로 또 다른 커다란 형태를 만들고 선들이 만들어낸 형태는 새로운 공간을 자아내기도 한다. 반복의 행위에는 의지와 우연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형상들도 균일함 속에 무한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섬유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통해 우리의 본질을 일깨우고 자연이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을 새로운 조형미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정소윤에게 예술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재현과 변형을 통한 자연의 유기적 형상 안에는 초현실적이며 은유적인 표현을 통한 내적 서사가 담겨 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선적인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형태로 드러나기까지의 긴 과정에는 자연의 재해석은 물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반영된다.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연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실하고 순수한 서정성을 되찾음으로써 치유의 장으로 관람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유기적인 형태와 그 형태 속에 압축된 작가의 경험과 감정들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일상과 한 걸음 떨어져 보이지 않는 삶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작가는 기대한다.

​작가노트

지난 4월, 납골당에서 엄마의 눈물 섞인 기도가 가슴에 남는다.

가장이 없이도 평온하길 바라왔사오나 그러지 못한 일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평온하길 진심으로 바란다던 기도.

불가항력적이었던 가족 구성원의 사별로 인한 부재는 수많은 삶의 문제들을 유발하였고, 나의 조형 작업 또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작품은 청소년 시절 가장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불안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자 했던 기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내면을 다져간다.

오래 전 한 사람의 죽음으로 파생되는 괴로움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그래서 부(父)의 죽음은 삶에 대해 고심하게 하고 누구보다 평온한 삶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작품은 누구나 내면에 추구할 평온함, 어릴 적 느끼는 부모의 품과 같이 온전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을 조형 작업을 통해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실을 풀어 미싱기로 형태를 단단하게 고정해나가는 작업의 과정처럼, 수많은 사건과 그로 인한 감정이 당장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았을 때 내면이 단단해져 있기를 바란다.

고요함을 기다리면서 바라본 세상과 순간을 나만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2019년 말부터 연구하고 있는 작업은 ‘산’이라는 광활하고도 고요한 자연을 닮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 안에 마음 둘 곳을 찾다 보니 능선에 수호자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보이기도, 내적 고요함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깊이 보아야 보이는 진심처럼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 또한 내면 깊숙한 이해와 평온을 느끼길 바란다.

정소윤 약력

2017.02 이화여대 일반대학원 섬유예술과 석사 졸업

2014.08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섬유예술과 학사 졸업

전시경력

2021.01 개인전 <살아가고 있는 자의 기도>, 갤러리도스, 서울

2020.09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신진작가부문 선정 <누군가 널 위하여>, KCDF 갤러리, 서울

2020.09 석파정 서울미술관 기획전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서울미술관, 서울

2020.03 3인 초대전 <바람>, 통인화랑, 서울

2019.12 <강남모던걸>, 르 메르디앙 M 컨템포러리, 서울

2019.12 공예트렌드페어 <Object, Objects..>, 창작공방관, 코엑스, 서울

2019.08 It’s now <NEWTRO>, 리오갤러리, 파주

2019.08 신당창작아케이드 10주년 기획전 <비약적 도약>, 송원아트센터, 서울

2019.08 <암흑물질>,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2019.07 <아시아프> 1부, 동대문 DDP, 서울

2018.11 공예트렌드페어, KCDF 스타상품 개발사업, 코엑스, 서울

2018.08 이정아갤러리 작가 공모, <Douze展>, 이정아갤러리, 서울

2017.12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기획전시 <미공창고>,

서울중앙시장 양곡시장(미곡부), 서울

2017.12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 공모 <The Great Artist>, 포스코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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