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김윤정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1.02.01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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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베어문 인류의 욕망은? 행복은?
창작산실 선정작, 2월 19-21일 아르코대극장

김윤정 신작 무용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c)
김윤정 신작 무용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사진=2020 창작산실/ⓒ옥상훈)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아날로그적인 스케치 그림으로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튼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시작된다.

인간들이 만든 작은 에덴동산. 뱀은 아담과 이브에게 사과를 건네고 아담과 이브는 결국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는다. 그리고 그 후예들, 현대인이 사과를 받고 세상에 나온다. 그들은 쉽게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히고, 에덴동산을 짓고 허물고 짓고 허물고를 반복한다.

인터넷 세상의 인간들과 AI. 그들은 서로의 시선을 뺏고 빼앗기며 현대사회에서 쉽게 끌려가고 또 끌어당기는 정보사회의 현대인들을 표현한다. 세상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자기들을 봐 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그들은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어린아이가 사과를 가져와 베어 물고 여자가 되고 노인이 되어간다...

중량감 있는 주제의식으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는 김윤정 YJK댄스프로젝트가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를 올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선정작으로 오는 2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될 이 작품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에 등장하는 ‘사과’를 소재로 삼는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뉴튼 앞에 떨어진 만유인력의 사과, 현대인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사과(apple)가 이어진다.

사과는 인류의 시작부터 필요악처럼 있어온 알고리즘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베어문 형벌로 낙원에서 쫓겨났고, 그 후예인 우리 인간들은 과학을 찾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신에게서 멀어졌다. 신은 인간의 수명과 삶을 개선해주지 못했고, 인간들은 점차 눈에 보이고 증명되는 것들만 믿게 되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인터넷 세상 속에서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역사, 종교, 철학, 과학의 문제를 넘어 그러한 결과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시대 관객에게 던지는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알고리즘이 리드하는 탈진실 시대, 진정한 행복이란?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소통하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이미 사과의 달콤함에 빠져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글로벌하게, 세상과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지만 정작 소통에 더더욱 단절되면서 온전한 자기 자신과도 마주하기 어렵다.

지금 현대인은 탈진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광대하게 펼쳐진 정보의 바다에서 각자 접하고 이해하고 수집한, 선입관이 정해준 허구의 세계를 믿고 있다. 너무나 쉽게 소통하고 있는 탈진실의 세상, 과연 우리는 진짜 자신과 소통하고 있는지, 이런 상황에서 각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무엇인지?

안무가 김윤정은 춤언어 안에서 명확히 표현되어야 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는 안무가’라는 평가와 함께 현대무용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제스처와 표정, 소리, 연극적 움직임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다양한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윤정은 ”이번 공연을 위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 다큐 <소셜 딜레마>를 비롯해 인도 전통춤에서 신과 자연을 표현하는 손동작, 댄서들 각자의 행복한 순간 텍스트와 공동 움직임 연구,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 스마트폰 AI에게 묻고 들은 답변들을 참고했다.“고 말한다.

콘셉트/안무/연출 김윤정, 출연/강민경 김강민 김유정 김주희 배민우 신현아 팝핀현준, 음악/지미 세르, 무대미술/안상원, 조명/김재억, 영상/신현아, 조연출/이경, 드라마투르기/현지예, 의상/정호진, 포스터디자인/신현아, 영상오퍼레이터/허문경, 기획/코르코르디움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안무노트
하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콘셉트 안에 갇히면서도 동시에 모든 감각을 세상을 향해 열어야 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성을 내포한 현재에 빠지는 일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의 늪이다. 그리고 고독한 시간이다. 작업은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다. 춤의 본질인 움직임, 시간, 공간, 의미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 생각과 의도가 댄서들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깊은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믿고 연구해 준 댄서들과 스태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나는 ‘극장’이라는 형식의, 세계의 어두운 무대를 가장 사랑한다. 죽은 듯이 고요한 어둠의 공간에 불 하나 켜지면서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관객이 들어서면서 하나의 작품이 시작되고 완성되어 간다. 불이 꺼지면 하나의 세계는 끝난다. 무대는 우리들 인생과 닮아 있다.

“온라인 세상을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의도로 해온 작업의 공연을,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과 병행하게 된 이 컨템퍼러리적인 상황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과 교감하고 호흡하는 아날로그적인 무용을 온라인 시대에 맞춰 전환되어 보여줘야 하는 이 상황.

새로운 문명의 기기가 발명될수록 우리는 에덴의 동산에서 멀어져 가는 듯하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유능하지만 그 문명의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미숙하다. 전보다 더 큰 힘을 지녔음에도 우리가 전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사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문명이 마법처럼 발전한 시대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차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는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다. 더 무서운 건 그것들이 우리가 그 위험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적이란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알고리즘 체계가 점진적으로 우리 뇌 속을 침식하고 정체성까지 바꿔놓는 현실에서 진정한 행복의 가치란 무엇이며, 자신을 자신답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을 가볍게 무모하게 아름답게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나대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타인의 체계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 윌리엄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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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신작 무용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포스터(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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