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일역전은 시간문제“ - 이명찬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신간] “한일역전은 시간문제“ - 이명찬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 이종호 기자
  • 승인 2021.02.18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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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고의 틀에 갇힌 일본의 암담한 미래
‘국뽕’ 아닌, 구체적 수치와 사례로 역전 가능성의 근거 제시
'한일 역전' 표지(제공=서울셀렉션)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표지(제공=서울셀렉션)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기자 = 일본이란 나라. 우리에게 일본은 좋든 싫든 일종의 숙명이다. 이 숙명적인 상대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체적 반응은 아마도 ‘밉지만 우리가 따라잡기는 어려운 나라’로 요약되는 것같다.

그런데 우리에게 만연한 이런 선입견을 아주 시원하게, 그러면서도 결코 감정적이거나 ‘국뽕’스럽지 않게,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날려버리는 책이 나왔다. 이명찬 박사의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서울셀렉션, 400쪽, 2만2천원.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래 일본은 한일강제병합, 군 위안부 동원, 강제징용, 창씨개명, 식민사관 주입 등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흔과 한을 남겨놓았다. 이런 역사로 인해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의 압제에 시달리면서, 해방 후에는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일본에 뒤처지면서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극일감정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그 감정은 때로는 ‘반일’로, 때로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숭일(崇日)’로 나타났다.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모순된 감정이 근 150년간 우리 민족의 심중에 깊이 자리내린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인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졌고 대통령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특히나 나이든 세대에서는, 여전히 ‘일본은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같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을 읽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같다. 제목 그대로 한일 간 힘의 관계가 역전되고 있다고 선언하는 책인데, 결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풍부하고 정확한 통계와 자료를 바탕으로 역전의 근본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최근 두드러진 한일 갈등과 일본의 수출규제와 혐한 자체가 이미 한일역전 현상이 일어난 데 따른 결과임을 밝히고, 갈등을 해소할 궁극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영속패전론과 혐한의 배경
이 책이 제시하는 한일역전을 뒷받침하는 자료와 증언은 한국의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일본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일본인 학자, 관료, 정치인, 시민운동가 등의 생생한 발언과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다양한 영역에서 역전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1부에서는 영원히 앞서 나가리라 생각했던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본의 정치·사회·문화적 후진성을 살펴본다.

저자는 혐한의 근원적인 이유를 파헤친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교수의 <영속패전론>을 소개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면 왜 일본에서 한국 비하 여론이 강한지, 특히 아베 정권이 수출규제를 시행한 시기를 전후해 혐한의 불길이 더우 거세게 번졌는지, 그 구조적인 이유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이유를 정리하면서 그중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결과적으로 가속화시킨 한일 양국 간 국력의 극적인 변화에 있음을 밝힌다. 저자는 과거 몇 세기에 걸쳐 대다수 분야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최근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러한 역전이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혐한을 부채질한다고 말한다. 한일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이 ‘한일역전’이라는 것이다.

731부대의 망령이 지배하는 코로나 방역
2부에서는 ‘일본이 저것밖에 안 되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된, 그리고 일본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일본의 코로나 대응 과정을 한국과 비교하며 살펴본다. 특히 양국의 대응 과정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초기 PCR검사, 마스크 대책,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 등을 상술하고 있다.

저자는 아베 정권이 코로나 대응에 실패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조직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보건소를 극단적으로 축소한 것과 저 악명 높은 731부대의 DNA를 물려받은 ‘전문가회의’(초기 코로나 대응 전문가 조직) 구성원들의 지나친 ‘임상 경시 연구지상주의’와 ‘정보은폐 체질’을 한 원인으로 꼽는다.

다른 이유로는 정치적 요인을 든다. 아베 총리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과 올림픽을 의식해 PCR검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아베 총리와 감염증 전문가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아 혼미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부처 간 협력과 소통을 가로막는 일본 특유의 칸막이 조직문화, 신용카드·인터넷뱅킹·ATM을 잘 쓰지 않고 아직도 이메일 대신 팩스를 쓰는 디지털화 지연 현상, 재택근무를 불가능하게 하는 도장문화, 국가행정 시스템의 비효율성, 동조적이고 상호 감시적이며 윗사람에게 순종적인 일본인 기질이 코로나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한다.

수치로 본 일본은 이미 후진국이다
3부에서는 우리가 정말 일본을 따라잡기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경제 분야에서도 한일역전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경제대국 일본을 추월한다고? 정말?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논거를 보면 납득이 되기 시작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본의 세계 경쟁력 30위, 평균임금 18위(OECD 회원 35개국 중), 상대빈곤율 27위(38개국 중), GDP 대비 교육에 대한 공적지출 비율 40위(43개국 중), 연금소득 대체율 41위(50개국 중), GDP 대비 장애인에 대한 공적지출 비율 32위(37개국 중), GDP 대비 실업에 대한 공적지출 비율 31위(34개국 중) 등이다.

각종 지표가 일본이 이미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임을 입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아베 총리가 3대 실책으로 일본의 침체를 가속화했다고 지적한다. 첫째, 수출규제로 일본제품 불매라는 한국의 역공을 자초했으며 둘째, 한국과의 갈등 조장으로 방역대책(PCR 진단키트, 드라이브스루 검진 방법 등)에서 앞선 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으며 셋째, 도쿄올림픽 개최를 염원한 나머지 PCR검사를 지체시켜 심각한 재난의 불씨를 남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아도 근래 한일 양국의 경제상황이 디지털화에 앞선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는데, 아베의 이러한 실책이 일본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고 진단한다.

한일역전을 웅변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양국 GDP의 극적인 역전이다. 2017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지난 2017년부터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물가 등을 감안하면 한국 국민의 생활수준이 일본 국민보다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현재의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는 명목 GDP도 한국이 곧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언제나 옳고 우월하다’는 이상한 믿음
저자는 한일역전을 앞당기려면 (상당수 한국인을 포함해)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자와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일본은 언제나 옳고 우월하다는 믿음’을 깨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세력의 역전에서 빚어진 한일 갈등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케네스 오간스키(Kenneth Organski)의 세력 전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에 따르면 국력의 격차가 좁혀질 때 갈등과 분쟁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2000-2018년 약 18년간 중국은 11배, 러시아는 7배, 한국은 3배, 미국은 2배나 국내총생산이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은 단 2% 성장에 그쳤다. 한국은 일본의 150배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한 셈이다. 그러니 양국간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한일 간 힘의 역전을 최대한 앞당겨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며, 이것이 한일 역사문제를 해결할 가장 궁극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강한 자에게 약한 특질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가 ‘갑’이 되는 순간 공손해지고 우리의 의사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패전 이후의 미일, 중일 관계를 예로 들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책에 대한 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제목은 도전적이고, 내용은 도발적이다. 한국인에게는 눌려 있던 용수철이 튀어오르는 카타르시스를 줄 것이고, 일본인에게는 보이기 싫은 속옷이 들춰지는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그간 우리는 반일(反日), 배일(排日), 극일(克日), 용일(用日) 등 내셔널리즘과 경제행위 차원에서 일본을 보아왔으나, 이제는 일본을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분일(分日)과 비일(批日)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이 책은 웅변한다. 이 책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허상을 깨듯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본’을 광장으로 소환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한일역전 가능성의 논거들에 대해 반론을 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 책이 적어도 신뢰할만한 여러 객관적 지표들에 근거해서 쓰였다는 사실이다.

저자 이명찬 박사는 1978년 금오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 군복무(5년)를 마친 후,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와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국제정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세계평화연구소 연수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등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으로 근무한 후 2020년 퇴직했다. 국방부 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9년에는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KBS, TV조선, 채널A, YTN, 아리랑TV 등 여러 미디어에 한일관계 관련 인터뷰 및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2019년에는 jtbc의 일본 우익단체 ‘일본회의’ 관련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일본 수출규제 관련 토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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