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음악발전에 헌신하겠습니다”-강창일 금정문화회관장
”부산지역 음악발전에 헌신하겠습니다”-강창일 금정문화회관장
  • 이종호 기자
  • 승인 2021.03.09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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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MF 산파역... 오충근 지휘자와 멋진 호흡으로 성공적 출범
“좋은 공간, 고품격 연주,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3월2일 개막공연 직후 BCMF 주최측과 연주자들 전원 기념촬영(사진=BCMF)
3월2일 개막공연 직후 BCMF 주최측과 연주자들 전원 기념촬영(사진=BCMF)

[더프리뷰=부산] 이종호 기자 = 부산에 도착한 3월 1일 저녁은 온통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당초엔 부산역에서 내려 금정문회회관으로 직행, 다음날 시작되는 제1회 부산클래식음악제의 연습 장면도 보고 주최자들과 간략한 인터뷰라도 할 요량이었으나 배도 고픈 데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의 폭풍우에 기가 꺾여 그냥 해운대 숙소로 갔다.

부산의 지인들 앞에서도 종종 고백하는 바이지만, 나는 부산에 오면 무조건 좋다. 바다가 좋고(무용가 남정호가 ‘바다의 고전’이라고 정의한 해운대를 비롯해 여러 바다), 내 수준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와 억양이 맘에 들고, 시가지 곳곳에 나름의 분위기가 있고, 사람들의 기질이 부담 없다. 부산클래식음악제(Busan Classic Music Festival, BCMF)가 창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 부산 갈 핑계 생겼네”였다. 음악보다 부산!

‘공존-시간을 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일 저녁 7시 30분에 시작된 제1회 BCMF 개막공연은 한 마디로 ‘차분하고 고급스런 실내악의 밤’이었다. 새 단장한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880석)에서 열린 이날 공연에서는 부산클래식음악제오케스트라(리더 임재홍)의 연주로 쾰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종신 플루트 수석주자인 조성현과 15세 나이에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2위에 입상하며 눈부신 커리어를 쌓아올린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협연을 들을 수 있었다. 1부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25번 g단조 작품183> <플루트 협주곡 제2번 D장조 작품314>에 이어 2부에서는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가 연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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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조성현 연주 모습(사진=BCMF)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은 최고 플루티스트로 꼽히는 조성현의 진가를 확인시킨 프로그램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협연한 한수진은 최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답게 열정적으로 시원한 음악의 정수를 보여줬다. 음색이 고급스러웠다. 한수진은 끊임없는 앙코르 요청에 <리베르탕고 Libertango>를 선사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모습(사진=BCMF)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 모습(사진=BCMF)

공연 전후 극장 로비에서는 부산은 물론 서울 등 타지역에서 온 음악계, 언론계 인사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경선(창원국제실내악축제 예술감독) 최은식(전주비바체실내악축제 감독) 이철우(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김기태(월간 객석 발행인) 류태형 조희창 하순봉 김윤선(이상 음악평론가) 김용연(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전 부사장) 이용관(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 방추성(부산영화의전당 사장) 장은익(거제문화예술회관장) 윤정국(김해문화재단 대표) 김동언(경희대 교수, 예술경영) 송희영(서울예대 교수, 예술경영) 등 ‘업계’의 주요 인사들이 이 의미로운 축제의 첫 밤을 함께 기렸다.

부산의 음악인들과 관객들 역시 부산광역시 속의 인구 24만 작은 도시 금정구에서 처음 개최된 고품격 클래식음악 축제에 기쁨과 자부심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위드 코로나19’의 철저한 방역 하에 띄엄띄엄 앉기로 인한 전 좌석의 50% 최대치를 꽉 메운 관람석. 공연장 안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매진으로 입장권이 없어 발을 구르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짜릿한 광경이었다.

금빛누리홀 로비 (사진=BCMF)
금빛누리홀 로비 (사진=BCMF)

다음날 귀경하기에 앞서 강창일 금정문화회관 관장을 잠깐 만났다. 개막공연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야기한 흥분과 계속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전화, 문의전화로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남은 일정에 대한 준비와 내년 이후의 계획으로 자못 상기된 표정이었다.

“당초 이 축제는 2021년 1월에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연기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한겨울 1월에?”

“그게요, 부산은 워낙 자연과 주변이 좋잖아요. 그러니 좋은 계절에 하면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지를 않아요.”

강 관장은 부산의 공연문화가 기대보다 미흡한 원인의 하나로 ‘놀러갈 데가 너무 많은 주변환경’을 꼽았다. 하긴 그렇지, 자연풍광 좋고 유흥할 곳 많은데 뭣하러 근엄하게 고전음악 들으러 오겠어?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북유럽 5개국의 현대무용 플랫폼인 아이스핫(ICEHOT)을 12월 한겨울에 하는 이유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생각났다. “아이스핫을 여름에 하면 좋잖아. 우리 같은 아시아 사람들은 선선하면서도 따뜻한 북유럽의 여름을 즐기고 싶은데 하필 이 추운 때에 한담?” “북유럽은 날씨 좋은 계절이 몇 달 안 되잖아. 그때는 다 놀러 나가는데 누가 극장에 오겠어? 야외축제라면 몰라도.” 나는 지난 10년 동안 아이스핫 다섯 번을 모두 참관했는데 그때마다 날씨 때문에 고생이 심했었다.

부산의 공연장 시설은 대구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1천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만 보더라도 대구는 12개인데 부산은 공공 공연장 기준 2개뿐이란다. 또 부산광역시에 구/군이 16개인데 구/군 단위의 문화회관은 5개, 문화재단은 두 곳에 불과하다. 금정문화재단(2016년 설립)과 부산진문화재단(2020년 설립)뿐이다. 부산이란 도시가 물류가 발달하다보니 상업성과 유흥성이 강해지는 반면 문화예술은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 것 같다는 게 강 관장의 분석이다.

평생 클래식 음악 중심의 공연기획과 예술경영을 해온 그의 입장에서 이런 풍토가 견디기 어려웠으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2019년 7월 금정문화회관 관장으로 부임한 그는 마침 회관의 두 공연장(금빛누리홀, 은빛샘홀)도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는데 저렇게 좋아질 공연장에서 품격 있는 예술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스스로 불태웠을 터이다.

“앙상블을 중시하는 실내악 위주의 축제를 구상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우선은 교향악단들을 불러서 대형 축제를 만들만한 예산이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 음악계에 앙상블 부분이 약하니 축제를 통해 이 부분을 보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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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금정문화회관 관장(사진=BCMF)

실내악은 정교하고 세련되지 않으면 제맛을 낼 수 없다. 우리나라 음악교육에선 이 부분이 약한 편이다. 그러니 10-20명 규모의 연주단체들을 중심으로 제대로 된 고품격 실내악 축제를 만들어보자. 이 단계를 거쳐야 진정한 음악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부산 토박이 음악인 오충근 지휘자를 만나면서 급속도로 구체화됐다. ‘좋은 공간에서 충분한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고품격 실내악축제’라는 기본 구상에 크게 공감한 그는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음악가들을 만났고 지역 기업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이는 일에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 결과 부산에서 활동 중이거나 부산-경남 출신인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출연진을 짜기 시작했고, 결과는 수준 높고 탄탄한 프로그래밍으로 이어졌다. “철학과 예술의 높이에서 작동하는 국가만이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믿는 그로서는 최고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축제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는 신념으로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다녔다.

지역 연주자들을 우선순위로 섭외한 탓인지 이번 축제에는 가족 연주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개막공연에서 프로그램에도 적혀 있지 않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망각 Oblivion>을 깜짝 연주한 노지연(오보에)은 아버지(노영훈, 오보에)와 함께 이날 첫 곡인 모차르트 <교향곡 제25번 g단조 작품 183>을 연주했다. 또 BCMF 부예술감독인 김재원(바이올린)은 17일 공연 예정인 부산신포니에타 김영희(바이올린) 음악감독의 딸이고, 부산피아노트리오의 백재진(바이올린)과 EOPO앙상블(유라시아오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백동훈(클라리넷) 부자도 각각 다른 날 출연한다.

또한 오 지휘자는 열렬한 예술애호가인 동성그룹 백정호 회장을 필두로 지역 기업인들에게 후원을 호소했다. 그 결과 무려 10여 기업이 ‘지속가능한 BCMF’를 만들기 위한 메세나에 동참을 약속했다. 물론 그에 앞서 정미영 금정구청장의 적극적인 사고와 개방적인 정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음악을 책임지는 오 지휘자는 예술감독을, 일반행정과 제작진행, 관객 서비스 등 ‘뒷광대’를 자임한 강창일 관장은 행정감독을 맡아 ’확실한 분업’이라는 원칙 하에 조화롭게 수행해 나갔다.

공연들이 매일매일 열리지 않고 며칠 간격을 두어가며(16일간 7회 공연) 진행되는 것도 출연자들에게 충분한 연습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연습실에서 할 때와 무대에서 할 때는 완전히 다르다. 서울 강동아트센터가 개관할 때 무대와 동일한 규모, 동일한 구조의 연습실을 확보해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예산은 불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뛰어난 인력이 있고, 좋은 공간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가와 관객에 대한 정성이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매년 부산을 찾아올 핑계가 생길 것 같은데? BCMF의 미래를 그윽하고 편안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강창일 관장의 신뢰 넘치는 언급이다.

부산 시민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한번쯤 시간을 내 가보시기 바란다. 바닷바람도 쐬고, 실내악의 격조있는 아름다움에 새삼 마음이 흐뭇해지실 것이다. 축제 일정은 더프리뷰 2월 18일자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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