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깊은 울림의 음악을 남기고 떠나다 – 크리스타 루트비히
[칼럼] 깊은 울림의 음악을 남기고 떠나다 – 크리스타 루트비히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04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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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루트비히, 2015년 모습(c)Franz Johann Morgenbesser(출처:wiki commons)
크리스타 루트비히, 2015년 모습(c)Franz Johann Morgenbesser(출처:wiki commons)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중학생 때였다. 음악 선생님이 이탈리아 가곡과 독일 가곡들을 녹음한 테이프를 주셨다.

이탈리아 가곡은 베냐미노 질리의 노래였고, 독일 가곡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노래였다. 파바로티나 칼라스가 아니어서 내심 실망했으나(당시에는 파바로티나 칼라스의 독일 가곡 음반이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선생님은 파바로티나 칼라스를 따라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질리는 이탈리아 가곡을, 디스카우와 루트비히는 독일 가곡을 가장 정석대로 표현하는 가수들이니 많이 들으라고 당부하셨다.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노래에는 지적인 느낌과 품위가 배어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목소리. 나는 그녀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봄의 찬가 Frühlingsglaube>를 들으며 따라하려 애썼지만 매우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 곡을 패스하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타 루트비히(Christa Ludwig)가 지난 4월 24일, 9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사실 오랫동안 그녀의 노래를 잊고 있었기에 사망 소식에 조금 놀랐다. 1928년에 출생한 그녀보다 조금 앞서 태어난 마리아 칼라스(1923-1977)나 레나타 테발디(1922-2004)는 이미 하늘의 별이 된 지 오래라, 이제야 기억난 것이다. 그녀의 음악과 나의 추억들이.

크리스타 루트비히는 1928년 3월 16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빈 폴크스오퍼 가수 안톤 루트비히, 오이게니 베살라 루트비히가 그녀의 부모다. 어머니도 메조 소프라노였다. 그녀에게 성악가의 길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194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박쥐>의 오를로프스키 역으로 첫 무대에 섰다. 그러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55년 빈 오페라극장에서 칼 뵘이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를 맡으면서다. 여기저기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낙천적이고 조심성 없는 소년 케루비노. 1959년 뉴욕 메트 데뷔도 역시 케루비노였다. 케루비노와 함께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도 그녀의 단골 캐릭터였다.

1958년 <발퀴레>의 발트라우테로 라 스칼라에, 1966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브랑게네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그리고 1969년에는 <아이다>의 암네리스로 코벤트 가든 무대에 데뷔했다. 1959년 메트 데뷔 이후 1993년까지 15개의 다른 배역으로 121회의 출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장미의 기사>에서 옥타비안과 마르샬린(소프라노가 맡는 역) 두 역할을 다 해보았다.

루트비히는 리릭 메조 소프라노에서 스핀토로, 드라마틱으로 소리가 깊어져갔다. 카르멘과 델릴라로 무대를 압도하면서도, 소프라노가 맡는 아리아드네, 레오노레, 레이디 멕베스로 역할을 확장시켜 나갔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으로부터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 역을 제안 받기도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루트비히가 거절했다고 한다)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레퍼토리 중 말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오토 클렘페러, 카라얀, 번스타인 등과 말러 교향곡을 연주했고 감동의 명반들이 남았다. 또 여성으로는 드물게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완주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를 가리켜 ’남자나 여자가 아닌, 한 인간의 영혼여행‘이라고 말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크리스타 루트비히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나는 언제나 크리스타 루트비히가 또래 성악가들 중에 최고로 훌륭한 브람스 가수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슈트라우스를 듣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녀야말로 최고의 마르샬린(장미의 기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러를 듣기 전까지는. 나는 그녀에게 또다른 왕좌를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바그너를 듣자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그리고 최근 내 오페레타 <캔디드>의 올드 레이디 역에서 놀라운 해석을 들었을 때, 나는 두 손 들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최고이고, 모든 가능한 인간들 중 베스트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니 1988년 8월 탱글우드, 번스타인 70회 생일 기념 콘서트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루트비히가 <캔디드>의 ‘올드 레이디 탱고 I am easily assimilated‘를 부르는 영상이 있었다. 60이 넘은 흰 머리의 그녀가 귀엽고 유쾌하게 몸을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9년 역시 번스타인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영상도 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올드 레이디가 또 있을까.

1990년 10월, 서울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던 루트비히는 전화로 레너드 번스타인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무대에 선 루트비히는 말러의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Ich bin der Abbanden gekommen>를 불러 번스타인을 추모했다.

크리스타 루트비히. 내가 오래 전 처음 들었던 슈베르트의 <음악에 An die Musik>와 브람스의 <영원한 사랑 Von ewiger Liebe>가 떠오른다. 깊고 기품 있는 목소리가 이끄는 격정과 평안 속으로 오롯이 빠져들던 날들이었다.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출처:youtube.com)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1928-2021)(출처:youtube.com)

메조 소프라노로서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설로 남은 크리스타 루트비히. 나 역시 그녀의 목소리로 위안 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디바,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추천영상 : 빈 고별 콘서트부터 젊은 날의 그녀(전남편 발터 베리까지도)를 볼 수 있는 영상들을 고루 골라보았다.

https://youtu.be/CTK6ffHQucs
https://youtu.be/oxV1RVa2rKY
https://youtu.be/vKh4JsWvsPw
https://youtu.be/DPD1DmSNqYU
https://youtu.be/9tgQ_Ubr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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