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시대를 뛰어넘은 위로의 밤 <레퀴엠>
[공연리뷰] 시대를 뛰어넘은 위로의 밤 <레퀴엠>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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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마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독창자들(사진=크레디아)
연주를 마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독창자들(사진=크레디아)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작곡하라는 누군가의 독촉에 혼신의 힘을 다 한다. 죽음의 사자와도 같은 위촉자의 모습에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모차르트. 음악에의 지나친 몰입과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그의 육신을 갉아먹고, 그는 나중에 붓을 들 힘도 없어 침상에 누운 채 살리에리에게 악보 표기를 맡긴다. 물론 창작된 부분이긴 하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받아 적으면서 신세계를 영접하는 경외감의 눈빛을 빛낸다.

실제로 기력이 다한 모차르트로부터 <레퀴엠>을 받아 적은 사람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다. 모차르트는 ‘부속가’(Sequenz)의 ‘라 크리모사’(눈물의 날) 여덟 마디까지 작곡을 마치고, 그후 쥐스마이어에게 나머지 완성 요령을 일러주었다. 쇠약해진 모차르트는 바로 다음날인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고, 공동묘지에 묻혔다.

<레퀴엠>은 빈의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 위촉한 음악(당시에는 귀족들이 자기 이름으로 곡을 발표하기 위해 작곡을 의뢰하는 일이 빈번했다)이었으나, 모차르트가 죽은 닷새 후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연주되었다. ‘입당송’과 ‘자비송’만 연주되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작곡자 자신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곡으로 처음 연주되었던 것이다.

지난 4월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울려 퍼졌다. 김대진이 지휘하는 디토 오케스트라, 그리고 국립합창단의 연주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의 소프라노 홍혜란, 파워풀한 가창력의 메조 소프라노 정수연,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테너 존 노, 유럽에서 맹활약 중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출신 베이스 박종민이 독창자로 섰다.

인사하는 네 명의 독창자들. 좌로부터 베이스 박종민, 테너 존 노,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소프라노 홍혜연(제공=크레디아)
인사하는 네 사람의 독창자들. 좌로부터 베이스 박종민, 테너 존 노,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소프라노 홍혜연(제공=크레디아)

오랜만에 무대에서 보는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코로나가 덮친 일상이 너무나 길어져서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은 노래하고 있었다. 인간의 연약하고 불쌍함, 그리고 거룩한 신의 자비를 구하며 찬미하는 <레퀴엠>의 가사들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 슬픔 속에서도 솟아나는 생명, 남은 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들.

더 할 나위 없이 장엄하고 섬세한 레퀴엠이었다. 국립합창단과 디토 오케스트라, 그리고 깊은 울림으로 감동을 전한 독창자들이 빚어낸 음악은 각자의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시대는 변하지만 음악의 힘은 영원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지친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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