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아이다>, 지독한 사랑이 불러온 파국
[공연리뷰] <아이다>, 지독한 사랑이 불러온 파국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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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오페라단의 한계 넘어 완벽무대 과시
1막 2장 Gran scena della consacrazione e finale(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1막 2장 Gran scena della consacrazione e finale(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프랑스의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이집트 멤피스의 돌무덤에서 3천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녀의 해골을 발견했다. 그는 이 남녀가 연인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소설 <멤피스의 신전>을 썼다. 이 소설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원작이다.

1막 1장 Scena e pezzo d’assieme(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1막 1장 Scena e pezzo d’assieme(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프랑스 오페라 코미크의 디렉터 카미유 뒤 로클이 프랑스어 대본을 썼고,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기슬란초니가 이 대본을 다시 작업했다. 주제페 베르디의 웅장하고 화려한 음악을 입은 <아이다>는 1871년 12월 24일,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2막 1장 Coro di donne e danza degli schiavi mori(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2막 1장 Coro di donne e danza degli schiavi mori(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지난 5월 7-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21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이 올랐다.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아이다>였다.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무대는 1991년 창단 이래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이번 <아이다>는 민간 오페라단이 할 수 있는 역량의 최고치를 보여준 것 같다. 성악가들의 눈부신 기량, 연출가 최이순의 정교한 연출력이 빛난 무대였다.

1막 2장 Gran scena della consacrazione e finale (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1막 2장 Gran scena della consacrazione e finale (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라다메스를 맡은 테너 김재형은 무대 첫 등장부터 ‘올킬’이었다. 전쟁터의 아레스 같은 존재가 한 여인으로 인해 조바심내고, 갈등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결국 그가 평생 헌신해 온 나라까지 등지고, 오직 그녀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억울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섬세하면서도 절절하게 보여주었다.

2막 2장 Gran finale II(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2막 2장 Gran finale II(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아이다를 부른 조선형 역시 밀도 있는 노래와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다. 노예지만 암네리스 앞에 비굴하지 않은, 적국의 공주다운 품위를 지키는 아이다. 사랑과 조국을 두고 고뇌하면서도, 연인에게 당당하게 조국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팜므 파탈을 확실히 표현해냈다.

암네리스의 백재은은 이 무대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메조 소프라노가 맡는 역할들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암네리스이기도 하지만. 백재은은 사랑에 배신당하고도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구하지 못해 무너지는 처절한 여인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라다메스만큼은 가질 수 없었던 그녀의 비통한 절규가, 막이 내리고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3막 Introduzione, Preghiera(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3막 Introduzione, Preghiera(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아모나스로의 한명원, 이집트 왕의 이준석, 람피스의 이진수 역시 뛰어난 기량으로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각자 다른 개성으로 캐릭터의 위엄을 드러냈는데, 이들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저 역할들에 어울릴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몇 장면에 삽입된 발레(안무 김순정)는 인간이 지닌 영적인 신비로움과 조형미, 리듬감, 역동성,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한 마디로 버릴 것이 없었다. 물론 ‘개선행진곡’이 등장하는 2막 2장이 좀더 화려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성악가들의 연기력은 그런 아쉬움을 잊게 했다. 무대 디자인이나 장면 전환도 효율적이었다.

다만 4막 라다메스가 신관들의 심판을 받는 장면에서 자막에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으로 표기한 것은 옥에 티다.

4막 1장 Scena del giudizio(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4막 1장 Scena del giudizio(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모두 간절했다. 라다메스도, 아이다도, 암네리스도, 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또 자신의 사랑만큼은 양보할 수 없이 간절한 이들이었다. 라다메스와 함께 돌무덤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다. 죽음을 통해 연인들은 사랑을 확인하지만, 살아남은 비련의 여인 암네리스는 프타 신에게 평화를 구한다. 누구보다 절실하게 사랑을 품었던 이들이 맞이한 결말이다.

죽어서야 이룬 사랑이 가슴 아파서, 남은 여인이 가여워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4막 2장 Finale ultimo(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4막 2장 Finale ultimo(제공=(사)글로리아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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