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1)
[인터뷰]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1)
  • 이종호 기자
  • 승인 2021.06.06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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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 대중화 위해 ‘유행가 창작무용’ 고려중
“외국인 무용수에게도 문호 개방해야”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기자 = 지난 2월 17일자로 임기 2년의 천안시립무용단 제7대 예술감독에 취임한 중진 안무가 김용철(金龍喆, 56)은 4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다.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취임공연을 겸한 정기공연은 12월로 잡혔지만 벌써부터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우선 올 가을(9월 29일-10월 3일)에 열릴 제19회 천안흥타령춤축제에서 선보일 ‘춤체조’를 고안해야 한다. 2003년 천안흥타령축제로 출범해 2011년 ‘천안흥타령춤축제’로 개명되면서 춤장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돼 온 행사인만큼 모든 참가자들에게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해줄 새로운 춤체조를 고안해야 한다. 남녀노소, 내/외국인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베테랑 안무가인 그이지만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어 전국무용제가 천안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천안시립무용단으로서는 개‧폐회식에 찬조 출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무용제는 매년 지역을 옮겨다니며 열리는데 올해는 천안시 차례다. 전국 각 지역의 대표 무용단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개최지 대표 단체로서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전국무용제가 끝나자마자 천안시 행사인 K-Art 지역박람회도 준비해야 한다. K-Art 박람회는 천안흥타령춤축제의 연장사업으로, 춤을 중심으로 한 전시, 교육, 체험의 장이다. 미래의 춤산업을 지향하는 전시콘텐츠 활성화를 선도하는 문화산업의 장이 될 것이다. 2025년부터는 지역박람회가 아닌 K-Art 국제박람회로 확장한다는 게 천안문화재단의 계획이다.

천안시립무용단은 천안흥타령축제가 생긴 이후 지역 춤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립단체 필요성이 거론되는 분위기에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비상근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7년 11월 20일 정식 출범한 단체이다. 김현숙 초대 단장 이래 정선혜, 염복리, 김종덕, 황재섭, 최은용이 차례로 이끌어왔다. 단원은 12명. 참고로 천안시립 예술단으로는 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 풍물단, 무용단 등 5개 단체가 있다.

발레에서 한국무용으로

김용철은 처음에 발레로 시작했다. 계명대 무용과에 발레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장유경 교수의 춤추는 모습과 지도력에 매료되어 한국무용으로 전향했고, 졸업 후 서울시립무용단(당시 단장 배정혜)에 들어가 1990-93년 단원으로 활동했다. 입단 오디션 당시 남자 무용수는 12명이 응모했으나 김용철이 유일하게 뽑혔다.

 

“아마도 즉흥 시험 때 무대 막을 이용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당시 창작한국무용계의 전설이셨던 배 단장님과의 작업이 향후 저의 창작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서울시립무용단원 시절인 1992년 정부가 ‘춤의 해’를 선포하면서 갖가지 춤판이 벌어졌다. 김용철은 젊은 안무가 육성을 위한 한국무용협회의 ‘젊은 춤꾼 가을잔치’에 선정돼 생애 최초로 정부지원금을 받아 작품을 만들게 됐다. 급조(?)한 자신의 무용단을 ‘섶무용단’으로 명명하고 안무에 돌입했다. 작품명은 <서투른 여행자>. 공연을 본 기획자 장승헌 왈 “제목처럼 작품이 서툴게 나온 듯하네?” 화가 나면서도 깨달음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춤’과 ‘작품’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최초의 고민이 생겼다.

이렇게 1992년 창단된 김용철 섶무용단(섶은 두루마기나 저고리 따위의 깃 아래에 달린 긴 헝겊 조각을 이른다)은 이후 한국춤과 문화의식에 뿌리를 둔 서정적이고 정련된 작품 창작,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적절한 조화를 바탕으로, 한국창작춤의 수준과 영역을 끌어올리고 확장하는 데 진력해왔다.

특히 아시아 춤과 아시아 문화의 수용과 조화를 통한 다양성과 독특함을 바탕으로 98년 베이징 아시아예술제를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타이완, 도쿄, 오사카, 방콕, 인도, 싱가포르, 독일, 뉴욕 등 국제경험을 통해 미래지향적 무대를 추구하는 한편 한국춤의 창작수준 향상과 대중화에도 상당 부분 이바지했다.

1994년 중반 서울시립무용단을 떠나면서 세종대에서 <한국무용에 내재된 남성무용수의 구조적 특이성과 역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20c 한국춤의 원형적 변화와 가치인식에 관한 연구>로 200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모교인 계명대에서 강사생활을 하면서 강의와 작업을 병행했다. 장유경무용단의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스페인, 덴마크, 미주지역에서 민속춤 중심의 공연에 열심히 참여했다.

2000년 문예진흥원(지금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선정하는 신진예술가 제1기생으로 뽑혀 1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뉴욕에서 6개월 연수한 것이 무용예술을 또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댄스 스페이스를 비롯한 여러 스튜디오의 커리큘럼 등 그들의 운영 시스템을 체험하면서 아! 한국과는 달리 자유롭고 선택지향적인 수업방식, 그리고 각국에서 온 여러 무용수들과 교감하면서 사회친화적 태도와 언어구사 능력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8년 6개월간 구미시립무용단에서 안무자로 첫 ‘공직’을 수행하면서 틈틈이 권명화, 김진홍, 조흥동, 채상묵 등 여러 스승으로부터 전통춤 레퍼토리를 전수 받는 한편 그 무렵까지 간헐적으로 접했던 아시아 춤을 제대로 수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져나갔다. 이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근무하면서는 전통춤과 민속춤의 보고인 영남춤들을 익히면서 명무들의 오랜 삶과 깊은 춤들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도 누렸다.

남다른 외국체험의 자산

김용철은 유달리 외국체험이 풍부하다. 요즘이야 능력있는 안무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이 흔한 일이 돼버렸지만 김용철은 자기 세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국 무용인들과의 교류가 많은 편에 속한다.

그는 아직도 1992년 초 배정혜 안무, 오태석 연출의 <떠도는 혼>으로 프랑스 15개 지역을 순회공연하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홍콩국제예술제, 마카오예술축제 공연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프랑스 순회공연 때는 평론가 고(故) 김영태 선생이 계속 동행했고,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브뤼셀 특파원으로 나와 있던 이종호 평론가(현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도 파리 근교 공연 때 찾아와 처음 대면했다. 순회기간 중 파리에서 모리스 베자르 안무, 조르주 동 주역의 <볼레로>를 봤는데 안무자의 예술적 감각과 남성무용수들의 육감적인 감성과 탁월한 기능에 가슴이 요동침을 느꼈다.

1997년 한국미래춤학회(당시 회장 고(故) 송수남) 주관 제1회 서울미래춤비엔날레에서 <붉디 붉은>으로 2등에 해당하는 특별상을 받았고 이듬해 현대무용진흥회(이사장 육완순)의 서울바뇰레 국제안무가대회(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SCF)에 다시 출품했다. 이 작품에 대해 평론가 김태원은 ”어떤 주제성이나 극적 설계가 있기 보다는 일종의 춤 에너지의 발산이었다. 발레가 가진 선의 매끄러움, 한국춤이 가진 유연함과 즉흥, 현대춤이 가진 에너지가 한꺼번에 섞여 나타나는 것으로, 어떤 관습화된 스타일이나 형을 다루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분출하는 흐름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이 작품은 창무국제예술제 김매자 예술감독의 추천으로 베이징아시아예술제에 초청받게 되었고, 덕분에 두 번째로 중국 무용계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중국 현대무용의 선구자격인 조선족 출신 진싱(金星)과 베이징무용대학의 조선족 한현걸, 그리고 현대무용 안성수, 발레 박재홍, 한국창작춤으로는 창무회와 김용철 섶무용단이 참가했다. (김용철의 중국 포함 아시아 무용계와의 교류담은 너무 길어서 이 인터뷰 제2편에서 별도로 다루겠다)

1999년 독일국제무용제에 참가할 한국작품 선정을 위해 예술감독이 내한, 작품을 심사했다. 인터쿨투어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던 임민숙씨의 협력으로 섶무용단 <붉디 붉은>과 <기우제>, 안애순무용단 <열한번째 그림자>, 그리고 윤덕경무용단이 본, 빌레펠트, 하겐을 순회공연했다. 한국팀들의 전반적인 춤 인상은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을 살린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독일 공연 후 아비뇽 페스티벌을 관람하고, 영국 런던의 타임 브릿지를 거닐면서 본격적으로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좀 더 자유로운 생각과 여유를 지니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지, 왜 춤을 추는지 등등 답 없는 질문을 혼자 하곤 했다고. 아비뇽에서의 예술적, 문화적 충격, 그곳에서 만난 예술가들의 열정, 특히 유럽인들의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짝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향후 섶무용단의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했고, 어쨌거나 독립무용단의 삶과 도전정신, 그리고 개척정신이 생긴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업경대>, 난생 처음 받아본 거금 2만달러

“두 차례 미국 공연에서 공연료로 각 2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런 거금(?)을 받아본 건 무용인생 최초의 사건이었죠.”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선보인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선보인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은 2010년 7월 세계무용연맹(WDA) 미국본부 행사 때 뉴욕 D.T.W.에서 <업경대> 단편 버전으로 공연을 했다. 세계 각국 30여 단체가 참가한 행사였다. 그의 작품을 본 재미 무용가 김영순의 초청으로 11월 웨이브 라이징 시리즈 기획공연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빡빡한 일정과 무용수 섭외 문제로 고민하던 중 현지에서 활동하던 후배들과 작업을 할 수 있게 됐고 이렇게 두 차례 공연을 계기로 뉴욕과 미주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2년 국제공연예술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 ISPA) 서울총회 피칭 세션을 통해 <업경대> 영상을 뉴욕에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후 미국의 공연기획사인 KMP(Kristopher McDowell Producer)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 공연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해서 2014년 10월 <업경대> 70분 짜리 버전과 <웃게 하소서> 20분, 총 90분 프로그램으로 휴스턴, 라스크루스, 글렌도라, 팜 데저트 4개 도시를 돌았다.

 

 

2015년에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산타 루시아 국제축제(Festival Internacional de Santa Lucia, FISL)에 초대 받았고, 2016년 3월에는 미국 세인트 폴, 윌밍턴, 마운트 버논 세 도시에서 총 5회의 공연을 가졌다. 2014년 미국 공연 때와 같은 레퍼토리였다. 현실의 삶과 무대작업에 심신이 지쳐가던 즈음에 이루어진 미주 공연은 자신감과 자부심, 금전적 보상으로 인한 직업의식 등을 느끼게 해준 행운의 사건이었다.

<업경대>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49일간의 생사관을 제의적 형식 속에 응축한 작품으로 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염라대왕 앞에 나가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불교적 소재를 강렬하고도 원색적인 감정을 이입, 몸으로 이미지화한 작품이다.

〈업경대〉는 2010년 국립극장이 주최하는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서 70분 짜리로 초연됐다. 당시 출연 인원은 20명. 일본인 작곡가와 부토무용수, 그리고 중국, 말레이시아 무용수들이 함께했다. 2011년에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초청으로 호암아트홀에서 40분 중편 규모로 선보였다.

‘한국춤비평가협회 무용작품 베스트6’ ‘공연과 리뷰(PAF) 춤작가상’ ‘대한민국 무용대상 대상후보 베스트5’ ‘연낙재 선정 춤베스트 5’에 올랐고, 2016년 부산시립무용단에서 80여명의 대군무로 스펙터클 창작춤으로 다시 올리면서 ‘PAF 베스트 레퍼토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업경대>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들이 글을 남겼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제의적 소재와 포스터모던적 다원성의 미학을 접목. 아시아적 세계관과 극장주의적 환상을 부각시킨 감성의 판타지(김태원)” “삶과 죽음의 경계, 사유하기. 모든 춤의 안팎을 넘나든 작품(권옥희)” 등이 맘에 든다.

김용철의 초기 안무작들은 이전 세대 안무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사고를 중시하는 민족적, 설화적 요소, 우화의 직접적 스토리화, 농경사회의 전통 등이 그것이다. 그가 안무가로서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97-1998년 두 차례 〈붉디 붉은〉을 선보이면서다. 그로서는 2기에 해당하는 이 무렵에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현대무용 쪽과의 교감이 시작된다. 창작의 개념. 안무의 개념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3기라 할 수 있는 2010년 〈업경대〉를 계기로 아시아 무용수들과 본격적인 공동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무용수 뿐만 아니라 작곡이나 편집에서도 아시아 예술가들의 협력이 컸다.

섶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늙은 여자'/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섶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늙은 여자'/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섶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늙은 여자'/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섶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늙은 여자'/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국공립 단체들도 체질 강화해야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의 경우 매년 2편의 작품을 만드는데 이게 생각보다 버겁습니다. 행정감독 일을 병행하면서 단원들 관리에 전통춤, 타악춤, 창작춤 등 모든 걸 다해야 해요. 최단 2년에서 최장 4-5년으로 돼 있는 임기제한도 불안한 고용논리이구요. 더군다나 예술감독 선정시 작품을 통한 사전실기평가는 미래의 예술감독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나갑니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들은 마땅히 재고돼야 합니다.”

그도 과거 구미시립무용단부터 시작해 공립무용단 책임자로 여러 곳을 거치다보니 공립무용단의 운영에 관한 나름의 철학과 비전이 생긴 듯하다. 우선 외국인 단원 선발을 위해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일성이다.

“이제 국‧공립단체에서도 외국인을 정단원 혹은 비상근 단원으로라도 선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국내 대학 무용과의 경우 정원미달과 폐과가 속출하고 국내 석‧박사과정의 중국 유학생들이 전체의 20-30%를 차지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작품의 표현력과 감수성 다양화를 위해서도 그의 제언은 솔깃하게 들린다.

김용철 안무의 부산시립무용단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안무의 부산시립무용단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외국인 단원을 받아들이는 직업무용단으로는 얼마 전까지 민간직업단체인 유니버설발레단이 유일했고, 최근 대구시립무용단이 외국인을 선발했다.

“한국무용 단체의 경우 문화적 유사성을 고려, 아시아 무용수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아요. 과거 2012년을 전후해 아시아무용위원회가 만든 아시아무용단이 몇 차례 공연을 했고 이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아시아 무용가들과의 작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만.”

하긴 무용만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의 문화협력은 한국이 가장 소극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은 주로 패권주의적 전략에서, 동남아와 서남아는 그들끼리의 지리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동북아를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에 소극적이다.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외국인 단원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아직은 좀 이르다 싶네요. 대신 얼마전 기간제 단원을 공모하면서 전공과 응모자격 등을 모두 완화했습니다.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 작품과 전공은 장르 불문이라고 했습니다. 외국인 입단은 아직 어렵다 해도 적어도 내국인들 사이에서라도 문을 열고 싶습니다.”

그는 아울러 지역무용단들의 단합과 공동과제에 대한 접근을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했다. “최근 국악계에서는 대한민국 국공립 국악지휘자협회를 창립했습니다. 전국 30여개 국공립단체 예술감독 및 지휘자들이 앞장서 국악예술단체의 권익을 신장하고 동반성장의 기틀을 만들어 미래의 국악을 준비하는 정책개발과 국민의 생활 속에 국악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들은 지난 3월 26일 동국대 한국음악학과 폐과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몆 년 전 대구시립무용단 홍승엽 당시 예술감독이 이러한 취지의 모임을 제안했고 대학로에서 몇 차례 만남을 가졌죠. 하지만 감독들이 교체되면서 흐지부지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다. 지역문화, 지역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울에 비해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1989년부터 3-4년 동안은 국립극장 주최로 전국 시‧도립무용단 페스티벌이 열려서 지역 무용단의 활성화를 꾀하고 각자의 작업을 서로 공유하던 일도 있었지만 더 이상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런가하면 시댄스에서는 서울을 제외한 타지역 무용들을 한 자리에 모아 축제를 열려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서울 관객들이 과연 ‘지방춤‘들을 보기 위해 오겠느냐, 자신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17년 배정혜의 신전통 시리즈에 선보인 김용철의 '미혹'/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7년 배정혜의 신전통 시리즈에 선보인 김용철의 '미혹'/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서울 이외 지역의 공립/민간 무용을 ’전국화‘ 내지 ’중앙화’하기 위한 의식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만이 중앙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앙으로 간주되고 인식되는 방안은 없는 걸까?

대중친화적 한국무용 구상 중

”천안에 부임했으니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를 하나쯤 내놔야 할텐데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중음악을 사용한 1시간 길이의 ‘코믹한 한국무용’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소품으로 ‘드라마음악과 함께하는 춤여행’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모든 작품에 드라마‧영화 OST, 그리고 판소리나 민요, 트롯을 포함한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을 배경으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런 작업일수록 대중친화력과 작품성을 살리기 위해 기획력과 연출구성력이 매우 섬세해야 합니다.“

마침 시댄스에서도 ‘유행가로 만드는 현대무용’ 프로젝트를 기획중이라고 했더니 그는 반색을 하며 적극적 관심을 표했다. 어떻게 하면 5분 내외의 짧은 곡 하나에 예술춤의 수준과 대중적인 흥미를 어울려 넣을 것인가가 안무가의 역량을 시험하는 기준이 될 터이다.

”지금 제가 생각중인 것은 한국의 전통춤과 창의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구성, 대중이 이 시대 우리 춤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의 조화로운 만남을 꾀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전통춤은 너무 이상주의적입니다. 표현과 구성력에 좀 더 진취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좀 내려놓고 컬러풀한 의상도 다소 무채화시키고, 예쁜 분장과 이유 없는 웃음을 이제는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객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아울러 자신의 대표작인 <업경대>의 2탄도 생각중이라고 했다. 예수재(살아있을 때 지내는 49재)를 기본 발상으로 한 작품이다. ”모든 삶의 행위가 살아생전에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제입니다만 <복복(福福)>, 만복을 기원한다는 것이죠, 축복과 명복의 함축적인 의미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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