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2)
[인터뷰]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2)
  • 이종호 기자
  • 승인 2021.06.06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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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무용계와 적극 교류해야“
문화적 친근성에 기반한 폭넓은 연대구축 필요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기자 = 앞서 말했듯, 김용철은 동세대 무용가들 가운데 국제교류와 해외체험이 많은 편이다. 그것도 단순히 대형 무용단의 일원으로 공연만 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자작(自作)을 가지고 나가거나 워크숍, 장기체류, 공동창작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예술적 자양을 풍요롭게 키워온 경우에 속한다.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그는 1990년 10월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배정혜 서울시립무용단의 <유리도시>와 홍신자 안무 <명왕성>에 출연하면서 생애 첫 해외여행/해외공연을 체험하게 된다. ‘중공(中共)’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의 낮선 땅은 그에게 새로움과 설렘,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계속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준다.

“중국에 가보니 남자 무용수가 많더군요. 지금이야 자연스런 일이지만 남자 무용수가 매우 적고 사회적 인식이 낮은 당시 한국 상황에 비추어 퍽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들의 춤은 매우 남성적, 저돌적이며 육체성(피지컬하면서 감성을 더하는)을 강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과의 본격적 교류는 그로부터 한참 뒤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로 재직 중이던 2006년 상하이 바오샨(宝山)에서 열린 세계민속축전기구(CIOFF) 축제에서 이루어졌다. 중국에 한류가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이라 드라마 음악을 배경으로 안무한 작품을 공연했는데 공연을 본 칭하이(靑海)성 가무단의 예술감독이 질문해왔다. “왜 음악은 흐르는데 계속 추지 않고 정지하고 있지?” 아, 이 사람들은 ‘정중동(靜中動)’을 모르는구나. 이걸 어찌 설명할꼬?

이게 인연이 돼서 이듬해인 2007년 칭하이성 시닝(西寧)시 소재 칭하이민족가무단에 초청을 받아 단원 5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고, 그 중간에 허난성(河南城) 쑹산에 있는 소림사(少林寺) 무예학교를 찾아가 한 주간 외국인 대상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잠시 무예와 춤의 만남을 꿈꿔본 시간이었다.

칭하이가무단은 남성‧여성 무용수를 따로 훈련시키면서 작품연습 시간에 합반을 하는 방식이 이채로웠다. 김용철은 그들의 몸놀림과 호흡, 그리고 표현방법을 차별화하는 방식을 주목했다. 오전에는 김용철, 오후에는 광둥현대무용단의 현대무용 트레이너가 특강을 했는데 김용철은 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 비디오를 광둥현대무용축제의 카렌 장(현 홍콩웨스트코울룬문화특구 西九龍文娛藝術區, 약칭 西九文化區 무용부장)에게 보낼 수 있었고, 이렇게 해서 2008년 광둥현대무용축제에서 자신의 <붉디붉은> <난장>과 정미영의 <Korea and its Wind>를 묶어 ‘한국의 밤’ 특집으로 선을 보였다.

광둥현대무용축제는 무용공연, 무용캠프와 심포지엄 등 3주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매번 300여 명의 무용학도들이 현대무용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을 보기 위해 광저우시로 몰려든다. 이 축제는 과거 김매자의 창무회와 초청을 주고받은 이후 한동안 한국과의 교류가 뜸했는데 섶무용단이 다시금 물꼬를 튼 셈이다. 관객들은 70분간 ‘한국의 밤’ 공연을 본 뒤 “무대를 장악하는 집중감과 심도 있는 한국적 컨템포러리 춤을 감상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중국과의 본격적 교류에 박차를 가해 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2009년 제2회 광둥무용캠프에 초청강사로 다시 방문하게 된다.

베이징현대무용축제와 광둥현대무용축제는 타이완의 클라우드 게이트(예술감독 린 화민)를 비롯해 홍콩시립현대무용단, 광둥현대무용단, 북경LDTX(레이동텐샤, 하늘아래 천둥번개)무용단등이 초창기 주요 프로그램을 채우다가 서서히 유럽과 아시아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이 두 축제의 창시자는 중국 현대무용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윌리 차오(曺誠淵)다. 예술적 능력과 경제력을 함께 갖춘 이 선구자적 인물이 만든, 중화권 최대의 무용행사들이다. 윌리 차오는 최근 들어 다른 많은 축제를 만들었고, 이후 홍콩을 떠나 중국 본토의 현대무용 발전을 위해 정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광둥과 베이징은 중국 현대무용의 요람

“여기서 본격적으로 중국 무용가들과 교류가 시작됐지요. 홍콩시립현대무용단 창설자이자 예술감독인 윌리 차오와 광둥의 공연기획자인 퀑와이랍도 만났구요. 뉴욕에서 활동한 호잉, 평론가 우장핑도 기억이 나네요. 또한 거기서 여러 아시아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을 만났었죠. 이후에도 몇 년 동안 광저우를 다녔습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무용인들과의 본격적 교류가 시작된 셈이다.

한중수교 20주년이던 2012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인 성기숙의 기획으로 베이징중앙민족대학 극장에서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전이 개최됐다. 김매자, 채상묵, 이애주 등의 전통춤과 창작춤을 소개하고 심포지엄도 열었다. 이때 김용철은 황병기의 가야금곡 <밤의 소리>를 배경으로 솔로작품〈혼‧곡‧성〉을추었다.

여름에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한달 간 쿤밍(昆明)의 컨템포러리 윈난 갤러리에서 공연과 교육을 할 기회를 가졌다. 과거 서울에서 <공작춤>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유명 무용가 양리핑의 대형 가무극(현지 용어로는 歌舞集) <윈난영상 雲南映象, Dynamic Yunnan>을 통해 소수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접하게 된다. 2003년 시작해 지금까지도 매일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출연자 70여 명 가운데 30%가 전문 공연자, 70%가 춤과 무관한 농민 등 일반인인데, 여기에는 한족 외에도 15개 소수민족이 포함돼 있어 그들의 다채로운 예술과 감수성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

2017년 부산시립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7년 부산시립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7년 부산시립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7년 부산시립무용단 김용철 안무의 '춤 인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3년에는 6개월간 북경 LDTX 무용단에서 현대춤과 소수민족춤들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다. 중국 전통드라마극, 발레극, 경극 등 공연들을 관람하면서 중국의 다양한 움직임과 컬러풀한 색채에 매력을 느끼곤 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베이징현대무용축제에 참가, 중국인 무용수를 섶무용단 단원들과 공동작업시키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다져나갔다. 아울러 베이징무용대학과 중앙민족대학의 실기시험에 참관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 고전무용을 비롯해 소수민족의 민간무용을 감상할 기회까지 얻게 돼 기대에 부풀었다. 조선, 티베트, 몽골, 위구르, 묘족, 와이족, 이족, 다이족 등 10여 개 민족무용이 젊고 힘 넘치는 학생들에 의해 연마되고 있었다. 한 무용수가 다른 민족의 춤까지 수련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고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중국 무용교육의 장점인 것같았다.

2017년 배정혜의 신전통 시리즈에 참가한 김용철의 '권명화류 바라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7년 배정혜의 신전통 시리즈에 참가한 김용철의 '권명화류 바라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베이징현대무용축제와 광둥현대무용축제에는 이후 김남진, 박나훈, 이동원, 정미영, 김재득, 최명현, 강정환 등이 참가하면서 ‘춤의 한류’의 기운이 피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20년에는 두 행사 모두 운영과 재정상의 문제로 열리지 않았다.

대신 작년 12월 4-8일에 제1회 광둥-홍콩-마카오 그레이터 베이 무용축제(粤港澳大湾区舞蹈周, Guangdong-Hong Kong-Macao Greater Bay Dance Festival)가 선전(深玔)에서 열렸다.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하는 새로운 축제가 출범한 것이다. 이 역시 윌리 차오의 야심찬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현재 중국은 이런저런 현대무용 행사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윌리 차오가 만든 축제들이 사실상 거의 전부였으나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작게나마 행사들을 띄우고 있다. 물론 윌리 차오 역시 대부답게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에 관심있는 무용인이라면 중국 현대무용의 발전양상을 좀 예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9년 제1회 태원시 무용축제(예술감독 Allen Chunhui Xing) 워크숍 진행, 2020년에는 중국무용가협회가 주관하는 온라인 강의 ‘김용철 안무작으로 본 한국창작춤 세계’를 진행하면서 그간 연락이 두절되었던 친구들의 소식도 다시 듣게 됐어요.“

그는 요즘 중국판 <댄싱9>이랄 수 있는 <무용폭풍 舞蹈风暴>과 <무림쟁파 舞林争霸>를 즐겨보고 있다.

일본 무용인들과의 교류는 중국과 달라

김용철은 동세대 무용가들 가운데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 단연 독보적이다. 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중국에 머물지 않는다. 당연히 일본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그는 2003년 오사카시립대학교 무대예술대학에서 유학중이던 대구 출신 무용가 김진희의 소개로 오사카 댄스박스(DanceBox) 컨템포러리 무용예술제에서 <붉디 붉은>을 공연했다. 워크숍을 병행했는데 첫 해외에서의 수업을 다소 서투르게 진행한 데 대해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일본 현대무용과 접목한 부토에 관심이 생기면서 댄스박스 예술감독인 오타니 이쿠(大谷 火+奧)의 작품을 구미시립무용단 공연에 초대했고 단원들에게 부토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고로, 오타니 이쿠는 그 자신 부토예술가이면서 기획자/제작자로 정열적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나는 2000년 가을 오사카에서 한국 현대무용에 대해 강연을 한 인연으로 그와 알게 돼 한동안 교류를 가졌었다. 그는 일본내에서 현대무용이 상대적으로 약한 오사카 지역에서 기업과 시의 도움을 이끌어내 소극장을 만들고 젊은 안무가들을 육성했으며 오사카무대예술마켓(PAMO)의 창설과 운영에도 깊이 관여해 나를 3-4년 연속 초청해 주었다. 현지에서는 일본식으로 ‘단스복스’라고 발음해서 한동안 잘 알아듣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2009년 제주에서 열린 제3회 델픽대회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근거지를 고베로 옮긴 다음에는 교류가 별로 없으나 지금도 이런저런 국제행사에서 그를 모시고 일하는 단스복스 기획자들을 만나게 된다. 어쨌든 나는 그와의 친교 덕분에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을 오사카에 여럿 보낼 수 있었다. 아시아 현대무용 교류에 대한 그의 생각은 2003년 8월 13일자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에 간략히나마 나타나있다.)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한 김용철 섶무용단의 '업경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은 2004년 산카이주쿠(山海塾)와 함께 부토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 무용단이 주최하는 부토 워크숍에 2주간 참가하면서 마로 아카지(麿赤兒) 예술감독이 추구하는 ‘텐푸텐시키(天賦典式)’ 미학을 알게 되었다. 태어난 것부터가 재능이고 모든 생물체는 움직이며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춤이 될 수 있다는 것. 연수 후에는 워크숍 공연에 참가했는데, 온몸에 오일과 금가루를 바른 채 비트가 강한 음악을 배경으로 횃불을 들고 느리고 비슷한 동작을 1시간 동안이나 괴기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반복하던 기억이 난다. 그 처절한(?) 몸짓.

이후 2005년 도쿄 디프라체극장(예술감독은 OM-2극단의 마카베 시게오) 주최 ‘무용이 보고 싶다’ 기획에 <난장>으로 참여, 두 곳의 소극장(닛뽀리에 있는 D-창고와 카구라 자카에 소재한 D-창고 공연장)에서 5일간 공연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총 1개월간 춤, 연극, 퍼포먼스 등이 여름 내내 공연된 종합예술 기획전이었다.

2006년 심철종 씨와 도쿄 아오야마극장장을 지냈던 고(故) 다카야 세이지 선생의 주관으로 한일댄스페스티벌이 아오야마극장에서 개최됐는데, 김용철은 <난장>을 업그레이드해서 다시 올렸다. 2011년 디프라체 축제에 또 초대 받아 〈이름 없는 바람〉을 공연했다. 2019년에는 도쿄 사이(SAI) 댄스페스티벌 예술감독 최병주, 성균소극장 대표 이철진의 공동기획으로 사이타마 극장에서 2인무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김용철은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김미복씨와 2인무 〈흑살풀이〉를 공연했다.

 

2008년에는 아시아 무용가들과 교류하며 얻은 교훈과 자료를 토대로 <일본 부토(舞踏)를 통해 본 한국창작무용의 과제>라는 논문을 작성, 무용학회 논문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한중일 3국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에 관심이 많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대륙적인 힘 또는 몸에 대한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은 매우 음(陰)적이고 섬세하며 숙연하고 조용하다. 생각을 많이 하면서 남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은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이들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양극단 사이를 잘 파악하면서 각국이 지닌 특징들을 우리 문화와 춤 속에 융합해 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모두들 서양 현대무용에 쏠려있을 때

동남아 지역과 김용철의 첫 인연은 2008년 태국의 방콕 프린지 페스티벌(예술감독 파트라 바디)이다. 예술감독 자신의 이름을 딴 파트라 바디 극장은 400여 석을 갖춘 야외공연장으로 실내극장에 버금가는 객석시설과 음향, 조명시설 등을 구비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각종 단체를 소개하면서 매년 1-2월경 주말에만 열리는 행사다. 이 공연을 계기로 동남아시아의 문화와 몸짓언어, 그리고 그들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단다.

 

2009년 싱가포르 오디세이무용단(예술감독 대니 탄) 창단 10주년 때 초청을 받아 〈붉디 붉은〉을 빅토리아 극장에서 공연했다. 2015년 싱가포르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에서 <바랏-살> 및 이선시와의 2인무를 소개했다. 이때 강정환의 <운수 좋은 날>도 함께 공연됐다. 김용철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오디세이무용단의 해외 협력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인도 콜카타 인터페이스 현대예술제(예술감독 수달산)에서 〈붉디 붉은〉과 〈난장〉을, 2014년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에서 열린 ‘부처와 평화’ 주제 국제민속춤축제에 <승무>와 <바라춤>을 선보였다. 앞서 2013년 필리핀 팔라완 국제민속축제에도 참가한 바 있다.

김용철 섶무용단의 '날과 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섶무용단의 '날과 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섶무용단의 '날과 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 섶무용단의 '날과 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용철은 아시아의 여러 무용단체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공형공간(共亨空間, Dua Space Dance Theater Academy. 공동예술감독-Anthony와 Aman)과 아수와라대학 동문무용단이 있다. 특히 현대무용과 태국전통무용 콘(Khon)을 접목해온 피쳇 클룬춘, 태국국립무용단원 아누차 수마만과의 합동공연을 구미시립무용단 무대와 지역 축제에 소개하면서 점점 아시아 무용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커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다이라쿠다칸, 클라우드 게이트, 홍콩시립현대무용단(CCDC), 베이징의 LDTX와 BMDC, 타오 댄스씨어터 등을 보러가기 위해 도쿄, 타이완, 홍콩,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순간들의 감회가 새롭네요.“ 많은 무용가들이 유럽과 미국의 무용을 탐색하고 음미하는 사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아시아의 감성과 당대적 예술의욕으로 컨템포러리 춤세계를 찾아 떠난 여행이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아시아인들끼리는 정서적 교감이 쉽습니다. 어설픈 영어로 해도 서로 통하고, 나라마다 종족무용이 확실히 존재하고, 서양 현대무용에 대한 비서양인으로서의 관점 등등 공동의 관심사도 많지요. 기본적으로는 무용이라는 ‘돈 안되는’ 분야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구요. 물론 중국 같은 예외도 있습니다. 중국 무용수들은 돈벌이라는 직업적 개념이 확실하더군요. 아무튼 아시아 무용수들끼리는 정이 있습니다. 물론 일본 무용가들은 좀 차갑지만요.“

이러한 아시아적 감성과 경험을 통해 섶무용단 단원들의 안무작을 외국에 소개하기도 하고 댄스캠프에 참가를 권유하는 등 그나름의 국제교류를 행하고 있다.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와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시절 단원들의 폭넓은 활동을 위해 서울은 물론이고 베이징과 뉴욕 등 해외시장을 탐색하는 데 가교 역할도 했었다.

 

”글쎄요, 저는 언제나 한정된 사고와 공간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합니다.“ 그의 아시아 교류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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