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4)-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자 속에 살고 있다.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4)-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자 속에 살고 있다.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1.06.09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제로는 서로 모르면서 서로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나와 타인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저녁 노을 풍경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사진=김윤정)

나의 세계

[더프리뷰=뒤셀도르프] 나는 워낙 잡다하게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와 닿는 것들이 있으면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다.

나의 지난 작품 <완벽한 사랑>에서는 장-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라는 영화 속 한 장면의 “너하고는 대화가 불가능해. 너는 나에게 단어로 말하고 나는 너를 느낌으로 바라보니까” 라는 두 줄 대사를 재구성해서 쓰기도 했고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에서는 튀니지의 극작가 잘릴라 바카르의 <주눈>이라는 희곡의 일부를 각색해서 한 부분에 쓰기도 했다. 춤은 논리가 줄 수 없는 혼돈을 정리해주고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움직임만으로는 부족해서 간간히 작품 속에 텍스트들을 쓴다.

나는 공연이 없는 동안에도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서 영감을 받고 다음 작품 준비 모드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공연을 하지 않고 있어도 나는 늘 공연준비 중이다. 나의 모든 관심사는 무대로 향한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오랜 시간 생각하고 콘셉트를 세우고 지원금 신청 부터 기획 단계를 거치면 연습에 들어가고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온통 작품에 몰입하는 시간들이다. 특히나 연습실을 오가며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은 세상이 마치 내 공연이 잘못되면 큰 일이라도 날 듯이, 세상이 마치 끝이라도 날 것처럼 온통 작업 생각 뿐이다. 연습 계획을 세우고 스태프들과 틈틈이 만나 소통하면서 그 소통을 상상하면서 댄서들과 연구하고 연습에 몰입해야 한다. 매일 연습하는 과정의 영상들을 찍고 연습이 끝나면 세밀한 부분들을 모니터링하면서, 또 전체 그림을 생각하면서 늘 몸과 마음이 작품으로 풀 가동 중이다.

연습실의 풍경(사진=김윤정)
연습실의 풍경(사진=김윤정)

다른 세계

나는 지난번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공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를 하는 동안은 서울에 집이 없다보니 연습 기간 종로구 계동에서 한옥 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한옥들 그리고 카페, 식당들이 정겨운 느낌의 동네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연습이 없던 어느 날 작품 속의 텍스트를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계동 길에 있는 현대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내 눈에는 마치 몇 천 명처럼 보이는 어마어마한 회사원들의 인파와 부딪히는 날이 있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동네가 점심시간이 되니 회사원들로 넘쳐났다. 식당과 카페들이 주변 회사원들로 꽉꽉 차는 가운데 웬 추리닝을 입은 중년 여자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나는 나름 자유로운 영혼으로 내가 크게 타인에게 해가 되는 정도가 아니면 워낙 남의 시선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그야말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빈티지스러운 화병이 모던한 건물 안에 덩그러니 있는 듯한? 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사물이 자리를 잘못 잡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신경쓰였던 한 컷(사진=김윤정)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는 물론 평범한 회사원들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얼마나 생소하게 다가오던지, 문득 아 세상이 연습실 그리고 무용공연이 전부가 아니었지? 그야말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나의 세상이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일 뿐더러 이 세상은 또 이렇게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생존의 법칙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때로는 취업 준비를 위해 따로 학원을 다녀야 하고 스펙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두가 자신들의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치열함 그 자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세계로 달려간다. 지하철 안에서(사진=김윤정)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각자의 세계로 달려간다. 지하철 안에서(사진=김윤정)

유발 하라리는 “당신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보고 듣고 아는 만큼의 세상의 크기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만이 전부이고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아직도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해도, 그런 이야기가 강한 연민을 유발한다 해도,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 아닌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현실은 각자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만이 진짜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멀리서 일어나는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어떤 행동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하다가도 눈 앞에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그런 엄청난 일조차 잊혀지기 일쑤다. 결국 인간은 모든 대상을 자신의 크기만큼 밖에 측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각자의 박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박스 속에서 살아간다. 각 분야의 박스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자기 분야에서 적어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박스를 본다 해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어떤 한계가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각자 독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글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페르난도 페소아는 훌륭한 대화는 두 개의 독백이라고 했다. 아리송한 듯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러하기도 하다.

모두가 각자 독백을 하고 있는데 형식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표출하고 있지만 누구를 향해서 우리는 모두 떠들고 있는 것일까? 대상이 있는데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상이 있는 독백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상들도 그야말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고 있는 말,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다 다르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어도 너무나 다양하게 다른 가치관과 생각 으로 살고 있다. 얼마나 신기하면서도 다행인가. 각자의 깊고 작은 박스에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발 하라리는 “모든 상상의 공동체는 실제로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이것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왕국, 제국, 교회는 상상의 공동체로 수 천 년씩 기능해왔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신을 영접하고 또 지도자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에 전 생애를 바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돈과 물질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누가 더 행복하냐는 비교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자연을 정복하고 신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며 목숨을 잃기도 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하기도 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주어진 능력과 시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바쁘다. 나는 그들을 관찰하며 아직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나름 괜찮은 인생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우리는 각자 다 자기 자리에 있다. 스스로 그렇게 살면서 그 자리에 맞는 위치에 가 있다. 먼지는 결국 날리다가 구석이라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엄마의 시골

나는 한국에 가면 연습이 없을 때는 시골 생활을 하신 지 십여 년이 되어가는 엄마가 계시는 전라도 영암에서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시다가 전라도하고는 아무 인연도 없으셨지만 그 곳에 정착을 하시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엄마가 그렇게 땅 냄새 맡으며 살고 싶다고 하실 때 나는 그게 상상 속에서나 좋아 보이지 실제 나이 들어 그렇게 시골에서 사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엄마의 말씀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용감한 우리 엄마는 결국 꿈을 이루셨고 엄마의 꿈을 과소평가했던 것이 죄송 하리만큼 만족하시며 잘 살고 계시다. 다행히 외삼촌도 퇴직 후 엄마 계시는 곳 가까이 집을 짓고 살고 계셔서 맘도 놓인다.

영산포에서 (사진=김윤정)
영산포에서 (사진=김윤정)

나도 처음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정적 속 엄마의 집이 내 집같은 친밀함이 더해진다. 이제는 심지어 그 평화로운 지리멸렬함이 아름답기까지하다. 마당에 나가서 딸기를 따며, 결명자를 따며 즐거워하시는 엄마,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도 예사로이 보질 않으시는 엄마, 보는 사람도 없건만 혼자 사시는 집에서도 머리 뒤태까지 신경 쓰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동생이 생각난다. 그녀가 파리 유학 시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에도 단아하게 옷을 차려 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길래 오늘 무슨 약속 있어? 하고 물으면 자기는 쉬는 날도 그렇게 자기를 가꾸고 아침을 먹을 때 행복하다고 하던 게 떠오른다.

나는 혼자 사시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엄마가 독립적으로 씩씩하게 살 수 있는지도 관찰해 보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엄마처럼 자기 세계관이 뚜렷하면서도 세상사에는 또 유연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정이 넘치지만 타인과 엄마의 삶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시며 스스로 건강을 챙기며 사시는 엄마가 나에게는 미래 엄마의 연세가 될때 닮고 싶은 모습이다. 나의 인생은 누구나 겪을 만한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축제였다. 그런 축제는 엄마가 계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는 자수성가하신 가부장적인 아빠를 만나 고생을 많이 하셨었다. 그렇게 괴팍하고 고지식한 아빠 밑에서도 늘 자식들이 원하는 걸 힘껏 밀어주시느라 최선을 다하셨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일제시대, 육이오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아래 근대 시대를 지나 현대를 살아내고 계시는 분들이다. 한 평생에 그토록 역동적인 역사를 겪고 살아 오셨으니 우리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감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이다.

바라봐 주는 시선으로 완성되는 것

작년 한국에 귀국해서 코로나로 인해 인생에 처음 해보는 자가격리를 시골에서 했었다. 기왕에 해보는 격리기간 동안 엄마 집에 와이파이도 없는 김에 스마트폰도 최소한의 카톡(공연 관련자, 연습실 스케줄 체크) 이외에는 꺼 놓고 아날로그적인 시간을 가져 봤다. 단순하게 먹고 운동하고 독서하는 시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집중력이 생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산초 에 묻혀 혼자 사는 기인들이 왜 그런 삶을 사는지 아주 잠깐이지만 미약하게나마 느껴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대면하고 사는 시간보다는 늘 어떤 대상들, 그리고 미디어에 휩쓸려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들에는 얼마나 인색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튼 엄마가 시골에 정착하시게 되면서부터 때때로 나도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은 나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고 이 사건을 나만의 방식으로 잘 다루어야 했다.

시골의 드넓은 평야(사진=김윤정)

동풍과 서풍이 반반 섞인 듯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마당에 앉아 넓은 평야를 보고 있으면 마치 서부 개척시대 영화에 나오는 대지주(?)의 고독이 내 안으로 전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밑도 끝도 없는 노스탈직한 감성에 젖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숨겨지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듯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에 이끌려 이리저리 사잇길을 걸어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들판 한 모퉁이에 수줍게 혼자 피어 있는 들꽃이라도 발견하면 진심으로 그 아름다운 빛과 자태에 매혹 당한 채 한참을 바라본다. 아무도 오가는 사람도 없는 곳에 핀 꽃이 그렇게 나라도 봐라봐 주어야 비로소 꽃으로 태어나 완성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발견하고 봐주지 않았다면 그 꽃은 자신이 아름다운 꽃이라는 걸 알지도 못하고 남몰래 피었다가 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 제 삼자의 시선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완성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각자의 박스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그렇게 서로 봐주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들에 핀 꽃을 내가 발견하고 감탄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비로소 드러나듯이 말이다.

덩그마니 놓인 낡은 자전거. 혹 누군가 보아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사진=김윤정)

나의 쓸모 없음

사실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시골 예찬이 아니고 그 곳에서의 나의 쓸모 없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더더욱 내가 그렇게도 열중하는 무용공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세상은 성직자나 철학자가 없어도 돌아가지만 농부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 아닌가? 시골에 가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용지물인지를 알 수가 있다. 한 인간의 가장 쓸모 없음을 깨닫는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내가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한 순간이다. 시골에서는 그야말로 베짱이 같은 시간들을 보내기 일쑤다. 내가 시골에 가면 기껏 한다는 것이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땀이 서린 들판을 보며 감상에 젖거나 그 사잇길로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유유자적 다니거나 해가 지는 하늘을 스마트폰에 담는 게 일이다. 그리고 면에 나가서 새로 생긴 카페에 앉아 좌판을 두드리며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이 되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야말로 가장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페소아는 “지성인들을 추방하면 그들은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노동하는 법을 모르고 지성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불행을 지적해온 지성인이 없다면 인류는 불행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시시대처럼 말이다.”라고도 한다. 그래, 나처럼 노동을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사회에 아무 짓도 하면 안 된다 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것이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지성인도 아니다. 어중간한 지성으로 노동도 할 줄 모르고 그야말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나르시스트적 예술가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를 향해 맘껏 책을 써 대며 사회적 불행과 현상을 분석하는 철학가도 지식인도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나의 카페 사랑은 시골에 가서도 변함 없다. 자전거를 타고 면까지 나가야 카페가 있는데 시골 카페에서는 가끔 너무나 다른 정서의 음악들이 솔직히 방해스럽기도 하지만 그냥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는 옆 테이블에, 농사를 짓고 축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앉아 그들에게는 씨이오(CEO) 격인 아버지들에 관한 불만과 갈등들을 이야기하고 있있다. 어른들은 양이 중요하고 자신들은 질을 중요시한다며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힘 있는 기득권 아버지와 아직 그 눈치를 보며 주도권을 잡기를 기다리는 아들들이 있다. 시골도 그 나름 힘의 논리의 작용에 의한 세대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는 것이다. 서울의 중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시골도 나름의 시퀀스로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문맹 속에 세계관

엄마의 집 바로 이웃에 사시는 할머니는 97세이시다. 옷 가게를 한다는 딸이 보내준 새 옷을 입으신 날은 감이나 농사 지으신 야채를 들고 스윽 들르신다. 나는 새로 입으신 옷이 너무 잘 어울리신다고, 사실 진짜 그렇게 보여서, 내심 진심을 다해 말씀 드린다. 그런 칭찬에 정말 즐거워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할머니 안의 소녀를 본다. 할머니는 늘 투박한 사투리에 주어가 빠진 상태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서 큰 소리로 웃으신다. 엄마와 나도 같이 웃는다. 할머니가 가시고 나면 ”엄마, 뭐라고 말씀하신 거야?“하고 물으면 우리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몰라”하신다. 알아들으면 듣는 대로 못 알아들으면 또 그런 대로 상관 없으시다는 표정이시다. 하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다 기억도 못 할 이야기들인데.

이웃 할머니는 문맹이시다. 나는 그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평생 글자를 모르고도 자식들을 다 키우시고 구십이 넘도록 살아 오시면서 터득한 지혜로 여전히 당당하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문맹이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의외로 엄마가 사시는 시골 마을의 노인들 중에는 글자를 모르시는 분들이 꽤 있으시다고 한다. 우리는 글자를 통해 인식을 하고 또 교육 받으면서 지식을 쌓고, 자아형성에 영향을 받으며 각자의 세계관이 생겨난다. 그런데 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아온 그 분들은 그런 경험 없이도 자기 안에서 발생한 자아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천주교 신자이신 엄마를 따라 성당에 가면 연세 많으신 노인들 사이에 앉아 나는 그분들이 기도하며 신을 섬기는 모습을 조용히 관찰한다.그리고 평생 농사를 짓느라 허리는 휘고 불편해 보이시지만 꿋꿋하게 지켜오신 자신들만의 세계는 확실하게 있어 보이신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우리들 세계의 한계를 나타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어차피 한계는 어떤 상태에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계동의 언덕 풍경(사진=김윤정)
계동의 언덕 풍경(사진=김윤정)

가끔 타인들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반추하는 느낌도 특별하다. 어차피 타인을 만나고 관찰하고 알아 간다는 것은 사실 진짜 그 사람을 알아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껴지는 감각과 감정들, 그러니까 자신이라는 필터로 걸러 보여지는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일 뿐이다. 페소아의 말처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층으로 이루어진 오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차피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한 개인이라는 것은 불과 백년 안에 교육 받고 깨닫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소통하고, 직접적, 간접적 경험들을 섞어서 자신의 머리와 가슴으로 걸러지는 생각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정도라니 말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신념과 확신을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자신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펴보면 신념과 확신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신념과 확신이 강할수록 우리는 또 얼마나 다른 오류와 선입견에 갇히게 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학습된 지성과 지식, 이런 것들을 배제하고 원초적인 순수한 인간으로 만나는 일은 가능한가? 나라는 범위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 나와 연계된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면 과연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의는 무엇이며 나 그리고 타인이라는 정의의 경계는 무엇일까?

끝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들만의 박스에 갇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어떤 우연 또는 필연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