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나 할프린을 그리워하며
[기고] 안나 할프린을 그리워하며
  • 최보결 무용가
  • 승인 2021.06.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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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으로 가득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95회 생일때 안나 할프린(사진제공=최보결)
95회 생일때 안나 할프린(사진제공=최보결)

[더프리뷰=서울] 최보결 무용가 = 안나 할프린. 지난 5월 26일 그녀가 지구별을 떠났다. 지금 하늘에서 그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녀의 소천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지만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깃털처럼 가볍게 마주할 수 있다니 의아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이 같았다.

세계적인 치유춤, 커뮤니티 댄스의 대가, 휴머니스트,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그녀를 기억하자면 ‘깃털같이 가벼운 존재’였다.

그녀는 1920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2021년 5월 26일 100살을 넘기시고 101세로 샌프란시스코 타말페이즈에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그녀의 책 <치유예술로서의 춤>을 읽고 한국 타말파 과정에 참여하였고 2013년 7월 안나 할프린의 타말파연구소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타말페이즈 마운틴으로 갔다. 그녀의 철학과 원리, 방법론은 춤을 추며 늘 목말라하던 궁금증과 의혹을 명쾌하게, 감동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하게 했다.

‘움직임의 원리는 무엇인가?’ ‘무엇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 ‘움직임의 욕구와 충동이 어떻게 표현이 되고 춤이 되는가?’ ‘나의 움직임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인간과 춤의 관계’ 등등... 오래도록 품고 있던 질문들, 몰라서 답답했고 한계를 느꼈던 나에게 그녀의 춤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공기를 집 안으로 들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말파 연구소 데크에서 춤을 지도하는 모습(사진제공=최보결)
타말파 연구소 데크에서 손자 제이 한과 함께 (사진제공=최보결)

춤을 이해하려 할 때 늘 따라다니는, 몸, 인간, 삶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창조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그 중심에 ‘몸’과 ‘움직임’이 모든 것의 ‘열쇠(Key)’였다.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가 그녀의 이슈였다. 그래서 커뮤니티 댄스로 자연스럽게 향하게 되었고 암환자,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잘 걷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움직임을 이끌어 내어 자신의 느낌을 찾고 ‘존재’를 몸으로 체험하게 했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스스로의 움직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녀는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밀려나오는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은유, 상징들을 볼 수 있는 눈과 몸, 내면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귀, 호기심 가득한 손과 발, 어깨, 척추, 골반으로 어우러진 ‘몸’에 황홀해 할 수 있는 ‘느낌’을 가진, ‘나’를 만나게, 기억해 내게 해준 여인, 예술가, 스승이었다.

서커스를 하는 집에서 태어난 안나는 춤 속에서 자랐으며 1938년 윈스콘신 대학 무용과에 진학하여 그녀의 춤과 예술, 삶에 대한 방향성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교수였던 스승 마가렛 도블러와 대학원생이었던 남편 로런스 할프린이다.

나는 안나 할프린을 알기 전에 <창조적 경험으로서의 춤>의 저자인 마가렛 도블러를 먼저 알았었다. 영감을 주고 가슴 떨리게 하는 춤의 메시지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10년 지나 안나 할프린을 알게 되었고 도블러가 안나의 스승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난 많이 흥분되었었다. ‘아! 이런 것이 계보라는 거구나’ 라고 느꼈다. 안나에게서 도블러가 느껴졌다. 스승과 제자라는 것이 이렇게 연결되는 거라는 것, 도블러 위에 안나가 축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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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할프린(왼쪽)과 마가렛 도블러(c)Connie Beeson

안나의 남편 로런스 할프린은 세계적인 생태건축가였다. 안나에게 생명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 영향을 끼쳤고 안나의 춤의 원리와 철학을 구조화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타말페이즈의 소박한 타말파 스튜디오는 로런스가 직접 나무로 지어준 공간이었다. 50평 정도의 스튜디오와 20평 정도의 야외 데크가 전부였지만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몸과 움직임, 춤의 원리를 공부하러 온 예술가들과 심리학자, 그리고 치유하러 온 사람들이 45년간 거쳐간 영감 가득한 공간이다.

무용가 머스 커닝험, 작곡가 존 케이지, 비주얼 아티스트 로버트 모리스, 시인인 리차드 브라우티건, 제임스 브라우튼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탐구를 위한 실험실이며 안식처였다.

메레디스 몽크, 트리샤 브라운, 이본 레이너, 시몬 포르티, 호프만 소토, 이도희 등은 실험적인 예술작업을 하는 그녀의 제자들이다. 특히 소토는 한국을 오가며 소매틱적 방법으로 안나의 철학과 원리를 가르치는 안나의 애제자셨다. 이도희는 굿을 퍼포먼스로 무대 위에 올렸고, 소리와 춤으로 샤머니즘을 무대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하는 한국인이다. 안나는 동양의 샤머니즘에 매료되어 도희 선생님을 특히 아끼셨다고 한다.

그리고 안나의 집은 그 스튜디오 바로 위에 있다. 정말 심플하고 자연스러운 안락한 집이다. 안나가 즐겨 앉는 나무의자도 로런스가 만들어 주었고 그 의자가 놓여진 위치는 스튜디오와 숲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에 있었는데 그것 역시 로런스의 선물이라고 한다.

나는 그 아름다운 집에서 수업을 하려고 스튜디오를 향해 나무 계단을 내려오는 안나 선생님의 신비한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보곤 했다.

2013년 93세였던 안나는 그레이 백발의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듯한 곱슬머리와 회색빛 푸른 눈,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과 손으로 우리를 움직임, 창조적 내면세계로 이끌었다. 그녀의 몸과 움직임, 표정, 목소리, 웃음, 미소에는 어디에도 긴장이나 힘주는 에너지가 없었다. 가벼움, 그러나 ‘존재’로 ‘fact’를 현상학적으로 가르쳤다. 몸의 과학을 가르치고 그 몸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내면화 과정을 가르쳤다.

타말파 연구소에서 참가자들과 함께(사진제공=최보결)

“이 내면의 세계는 느낌과 감정 그리고 정신이 살고 있는 곳인 몸이다. 우리 조상의 기억과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기억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수 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 온 육체에 살고 있고, 이 육체는 또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이 육체는 생존을 위해 복잡하게 디자인되었다. 육체는 위대한 삶의 춤을 출 수 있는 지혜와 경이와 신비를 지니고 있다.”라고 안나 할프린은 그녀의 저서 <치유예술로서의 춤>에서 말하고 있다.

2007년 플래니터리 축제 모습(사진제공=최보결)
2007년 플래니터리 축제 모습(사진제공=최보결)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발레로부터 자유와 인간의 본성을 부르짖으며 탄생한 현대무용. 그 시작과 격동 속에 포스트 모던댄스, 저드슨 처치 그룹 등 춤과 예술의 최전선에서 자유롭게 실험해 온 무용가였다. 그녀의 가장 큰 실험과 혁명은 춤을 세상으로 내려오게 하고 모든 사람이 움직이고 춤추도록 일깨워주고 영감을 주고 용기를 준 일이다. 움직임의 형태 속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를 불러내 삶과 연결시켜 그녀의 스승 도블러가 프래그머티즘의 실용적인 춤의 기능, 가치를 연구한 것을 이어받아 실현시키고 있다.

가장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가장 깊은 인간 내면의 영혼을 만나게 해준 한 세기 이래 가장 위대한 무용가, 예술가, 혁신가라고 말하고 싶다. 댄스 레전드 안나 할프린!

참가자들과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을 넘는 안나 할프린(사진제공=최보결)
참가자들과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을 넘는 안나 할프린(사진제공=최보결)

그녀로부터 몸, 움직임, 춤, 생명, 사랑, 평화, 예술을 긍정하게 된 모든 사람들 속에 안나는 영원히 함께 숨쉬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녀는 갔지만 그 숨결들이 온 지구를 감싸고 자연스럽게 ‘깃털처럼 가벼운’ 춤과 삶으로 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제자들, 함께 춤 춘 모든 사람들 속에서 나도 작은 씨앗을 심고 퍼트리며 그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할 거라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안나와 약속했다.

최보결과 함께(사진제공=최보결)
최보결과 함께(사진제공=최보결)

그래도 그녀의 부재는 때때로 헛헛하다. 피나 바우쉬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헛헛함이 시간이 흐르면서 농도가 흐려졌듯이 안나에 대한 그리움이 당분간 몸 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을 거다.

그녀의 딸이며 타말파의 공동 설립자인 다리아 할프린이 안나의 업적들을 더 통합하고 확장하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휴머니즘을 춤과 예술로 펼치고, 치유의 도구로 사용되는 춤을 넘어 춤을 추니 치유가 되는 예술의 위대한 속성과 안나의 철학과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안식처, 메카로 계속 거듭날 거라고 기대한다.

시대의 아름다운 자들, 위대한 자들이 떠나가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흔적, 풍요로운 선물을 잘 받고 음미하며 누리고 싶다. 내년에 그녀를 위한 춤을 추어야겠다. ‘깃털처럼 가벼운 춤’을.

안나 할프린 선생님,
영감으로 가득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년 6월 17일 최보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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