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촉망받는 젊은 안무가, 기대감의 중압을 이겨내다
[공연리뷰] 촉망받는 젊은 안무가, 기대감의 중압을 이겨내다
  • 최병주 기자
  • 승인 2021.07.03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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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지마 레이사의 신작 'Because Kazcause'
매달린 장면 (c)Temman Seina
매달린 장면 (c)Temman Seina

[더프리뷰=도쿄] 최병주 SAI 예술감독 =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礼紗)가 이끄는 무용단 케다고로(ケだゴロ、2013년 창단)가 5년 만에 터트린 단독 공연 <Because Kazcause>를 보고 왔다. 일본에서 유망한 젊은 안무가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녀로서는 기획공연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공연무대였으니, 좋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압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당초 이 작품은 작년 5월에 상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 올해도 작은 소극장이라 엄청난 부담을 느끼면서 무대에 올렸을 것이다(6월 17-20일, 도쿄 기타자와타운홀 지하 소극장 B1).

’춤이 보고 싶다! 신인 시리즈15(ダンスがみたい!新人シリーズ15)‘에서 신인상(2016),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컴피티션Ⅱ’에서 최우수신인상 수상(2017)을 필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해마다 일본의 중요한 상을 받고 있다. 때문에 일본 컨템포러리 댄스계에서 가장 촉망 받는 젊은 안무가 중 한 명인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같은 또래 무용가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녀와의 첫 인연은 2019년 후쿠오카 댄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대표작 <SKY>(군무)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여기서 뽑혀 같은 해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듬해 홍콩댄스익스체인지(Hong Kong Dance Exchange)에서도 상연되었다. 우리 SAI에도 이런 안무가가 참가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 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달려가 그녀를 설득했다. 결국 SAI 2019 컴피티션에서 대표작 <기저귀를 찬 원숭이 オムツをはいたさる>(솔로)로 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마카오에서도 상연됐다. 올해 SAI 2021에서 대상을 탄 작품 <nostalgia>의 안무가인 다무라 고이치로(田村興一郎)도 그녀를 보고 참가했다고 하니, 그런 의미에서 SAI까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작은 극장 안에 들어서면 언제부터 서 있었던 건지, 살인사건 현장에서 쓰이는 파란 비닐과 로프에 꽁꽁 묶여 있는, 누가 봐도 시체인 듯한 물체가 공중에 매달려 있고, 그 아래 여자 일곱 명이 길게 늘어진 로프를 붙잡고 원을 그리며 서 있다. 영어로 떠드는 라디오 소리와 함께 그냥 무심히 서 있다가 한 명이 “하루코, 내 손 소독했으니 제발 이 로프 좀 잡아 줘, 응?” 하는 중에 갑자기 시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누군가 계속 전화로 대화를 하다가 “난 안 잡혀”라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무대 뒤쪽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첫 장면 (c)Temman Seina
첫 장면 (c)Temman Seina

<Because Kazcause>는 1982년의 마츠야마 호스테스 살해사건(松山ホステス殺害事件)이 모티브다. 이 사건은 범인인 후쿠다 가즈코(福田和子, 1948-2005)가 범행 직후부터 15년, 공소시효가 소멸하기 21일 전에 체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으로, 연극, 드라마, 다큐멘터리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모티브는 그녀가 불안감에 몸서리치면서, 성형수술을 반복하면서, 카바레와 스낵을 전전하던 5천459일에 걸친 피신 과정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

작품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범인의 실제 전화 목소리 “무서워, 무서워”라든지 “난 안 잡혀” 와 같은 두려움 섞인 녹음이 생생한 긴박감을 더해 준다. 그녀가 달아난 곳은 셀 수 없이 많았으나, 이 작은 소극장에서 가즈코의 분신들이 선택한 피신처는 하필이면 천장이었다.

천장 전면에는 튼실한 굵기의 오렌지색 파이프가 바둑무늬처럼 설치되어 있고, 바닥에도 똑같이 오렌지색 테이프가 그려져 있다. 무대 뒤 한 켠에 존재하는 문은 장면 변화와 더불어 그녀의 피신처,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이용되었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로프는 파이프에 걸쳐 목을 매고 서 있다가 자살하려는 듯 로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클라이밍 도구 카라비너(Karabiner)로 고정하여 천장까지 타고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녀를 지탱해 주는 생명줄로도 느껴졌다.

도망가는 장면 (c)Bozzo
도망가는 장면 (c)Bozzo

파이프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있는 두 남자는 그녀들을 쫓는 경찰이지만, 그녀들을 찾아 내려는 세상 모두의 눈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력을 거스르는 천장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을 은신처로 사용함으로써 강조 혹은 암시하려는 듯 두 남자는 우스꽝스럽게 혀를 내밀면서 말하는 아인슈타인과 연미복 차림의 뉴튼이었다. 다른 캐릭터로 등장했더라면 어땠을까? 지상이 아닌 천정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충분히 전해지기에 오히려 설명적인 느낌이 들어 좀 아쉬웠다.

남자 듀오 (c)Temman Seina
남자 듀오 (c)Temman Seina

이 듀오는 바지 앞 지퍼에서 수갑을 꺼내 서로의 바지에 묶는, 수갑을 파이프와 옷에 채워 몸이 공중에서 회전하는 등의 유머러스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과시하는 혹은 싸우는 듯한 표현들은 접촉즉흥의 원리에 입각하면서도 일상적인 제스처에 가까웠다. 스펙터클하고 시원시원한 그들의 움직임이 지상에서 그녀들을 쫓는다면 그들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녀들의 천장에 설치된 파이프를 이용한 갖가지 움직임들도 만만치 않았다. 중반부터는 계속 손에 땀을 쥐고 볼 만큼 아찔하고도 위험해 보였다. 이런 움직임들은 초반에 그녀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떼어낸 문짝을 머리 위에 얹고 있으면, 한 명씩 그걸 밟고 파이프에 철봉처럼 매달리거나 올라가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들이 양다리를 파이프에 걸쳐 거꾸로 매달리면 치마가 쏟아져 내려 얼굴을 덮는데, 이 때 안무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귀여운 일회용 기저귀가 무대 전면에 드러난다. 두 남자가 그 치마를 들치면 한결같이 가즈코의 사투리로 “비슷한 얼굴이 있다니까요” 하는데,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무가는 “케다고로 창단 공연 때 20명이 작은 공간에서 움직이기 쉬운 의상으로 기저귀를 사용했지만, 점점 성적 이미지를 이탈하는 순수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기저귀 보이는 장면 (c)Bozzo
기저귀 보이는 장면 (c)Bozzo

이때까지는 오랜 세월 쫓기면서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피신처를 찾아 헤매던 가즈코의 염원을 헤아리듯 그 피신처를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천장으로 설정, 파이프를 타고 올라갈 발상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고, 어찌 보면 아이들의 철봉놀이처럼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잡히지 않으려는 그녀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두 남자가 등장하기만 하면 괴성을 지르며 안간힘을 쓰며 파이프에 매달려 양다리로 자전거 타듯 발버둥치는, 놀이기구 구름다리를 건너가듯 한 손 한 손 파이프를 잡아 도망가는,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빠른 속도로 파이프를 타고 거꾸로 기어 다니는 등의 초인적인 움직임들로 대변되어 극장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든다.

도망가는 장면 (c)Temman Seina
도망가는 장면 (c)Temman Seina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누구나 결말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안타까움에 저절로 상반신이 무대로 쏠렸다. 그녀들이 파이프를 타고 도망칠 때마다 주로 사용되는 엔카는 가즈코가 카바레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특히 후반부 쫒고 쫒기는 아수라장 속에서 체포되기 직전 불렀다는 하야시 아사미(林あさ美)의 <지팡구 ジパング>의 달콤한 목소리는 그녀들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멍 자국처럼 진하디 진한 삶에의 애착으로 내 가슴에도 새겨졌다.

끝 장면은 천장과 파이프의 좁은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가쁜 숨을 참아내는 내내 하염없이 새어 나오는 숨소리, 그리고 파이프 사이로 그녀들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두 남자를 향해 내던져진 색색가지 브래지어들이었다.

끝 장면 (c)Bozzo
끝 장면 (c)Bozzo

시모지마 레이사에 대해서는 일본 무용계에서 호불호가 엇갈린다. 이상한 짓을 하는 안무가 아니면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는 안무가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아마도 매끄럽고 강도 높은 테크닉을 구사하는 작품들, 아니면 일본 무용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디어는 참신한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공연들에 이골이 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3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이번 신작 <Because Kazcause>는 아홉 명이 서기에는 좁은 무대를 천장을 이용한 기발한 발상으로 60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점, 또한 거기에 맞는 움직임을 개발한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무용으로 단련된 신체가 아니면서도 특수부대 합숙훈련을 했나 할 정도로 단련된 신체가 만들어낸 움직임들이었다. 무용이 일상적인 움직임의 반복과 추상화를 거쳐 실현되는 것이라면, 시모지마의 일상적인 움직임은 더 날것이었으며, 자신과 무용수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가혹하고도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표현들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용이란 세상을 탐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단체의 대표작인 <SKY>는 그녀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의 연합적군사건(連合赤軍事件, 1971)을 통해 고립된 공간에서의 집단심리를 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지메가 크게 복선으로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Because Kazcause>에서는 후쿠다 가즈코, 중력, 남녀차별, 성적 문제, 유아성, 코로나로 고뇌하는 현재 등 너무 많은 메시지가 정리되지 않은 채 산만하게 전해졌던 것 같다. 앞으로 재연을 거치면서 좋은 방향으로 더 걸러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촉망 받는 젊은 안무가로서 기대감이라는 중압을 이겨낸 <Because Kazcause> 공연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礼紗)

1992년생. 가고시마 출신. 일곱 살 때부터 가고시마에서 무용을 시작, 요사고이춤(よさこい踊り)을 중심으로 활동. 요비린(桜美林) 대학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를 기사누키 구니코(木佐貫邦子)에게 사사. 2013년 케다고로(ケダゴロ) 무용단을 결성, 전 작품을 안무・구성・연출하고 있다. 솔로 대표작 <기저귀를 찬 원숭이 オムツをはいたサル>와 대표작인 <SKY>는 국내외 다수 페스티벌에서 상연. “무용이란 세상을 탐구하는 하나의 수법”이라는 이념 하에 작품 창작이나 발표를 통해 사람과의 만남・세상을 배움・자신의 생각을 생성해 내는 목적으로 활동한다. 국경을 초월해 논쟁을 만들어 내는 작품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다.

수상경력

◆‘춤이 보고 싶다! 신인 시리즈15(ダンスがみたい!新人シリーズ15)에서 <엄격한 제3자의 눈으로…厳しい第三者の目で…> 신인상(2016)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2017 컴피티션Ⅱ(横浜ダンスコレクション2017コンペティションII)에서 <기저귀를 찬 원숭이 オムツをはいたサル> 최우수신인상, 터치포인트 아트 파운데이션상 수상 (2017)

◆5./BODY.RADICAL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Biennial(헝가리)에서 <기저귀를 찬 원숭이> 관객상(2017)

◆New Dance For Asia 2018 3rd Asia Solo&Duo Challenge Masdanza(한국)에서 <기저귀를 찬 원숭이>로 NDA상(2018)

◆SAI Dance Festival 2019 COMPETITION <기저귀를 찬 원숭이> 최우수작품상(2019)

◆제8회 에르스르재단(エルスール財団) 컨템포러리 댄스 부문 신인상(2019)

◆KYOTO CHOREOGRAPHY AWARD <SKY>교토상 및 오디언스상 수상(2021)

이 글을 쓴 최병주는 재일 무용이론가이자 SAI(일본 무용가들의 국제무대 진출 플랫폼) 예술갑독이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래 지금까지 한일 양국간 무용교류에 코디네이터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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