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궁중무의 굳건한 맥 ‘춤으로 빚은 효’
[공연리뷰] 궁중무의 굳건한 맥 ‘춤으로 빚은 효’
  •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 승인 2021.07.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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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빚은 효' 의 무대 (사진제공=)
'춤으로 빚은 효' 의 무대 (사진제공=국립국악원)

 

[더프리뷰=서울]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 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유정숙)이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정기공연 <춤으로 빚은 효>를 예악당 무대에 올렸다. 올해 개원 7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은 4월에 기념공연 <야진연>을 공연했고, 이어서 정악단, 민속악단, 창작악단과 무용단의 정기공연을 차례로 개최한 것이다.

<춤으로 빚은 효>는 1828(戊子)년 효명세자의 어머니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축연하기 위해 창덕궁 연경당에서 행한 진작례에서 궁중무 7종목을 선별하여 춤 중심으로 구성한 공연이다. 1828년의 연경당 진작례는 여러 기관/단체들에 의해 연경당 현장이나 극장무대에서 재현된 바 있다. 효명의 대리청정 시기(1827~1830)에 새로운 정재 23종목이 창제되었는데, 그중 19종목이 연경당 진작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춘앵전과 무산향도 이때 초연되었다.

또한 효명세자는 왕권 강화를 모색하고 효심이 지극했기에, 효명세자와 당시의 정재들을 모티브로 하여 여러 시각과 콘셉트에 의해 다양한 구성으로 국립국악원에서도 공연하였다. 건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왕조의 번영을 기원했던 조선 초의 정재에 비해, 순조 시기 효명이 주도해서 창제된 정재들은 풍경이나 자연의 정취, 고사(古事)나 선가(仙家)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주제들을 다루었고, 구성방식이나 무대장치들도 새롭게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춘앵무' (사진제공=)
'춘앵무'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이번 공연에 올려진 종목들은 <망선문> <춘대옥촉> <보상무> <향령무> <박접무> <춘앵전무> <첩승>이다. 무대에서 자주 접할 수 없었던 궁중무를 원형에 가깝게 선보인다고 했는데, 실로 <망선문> <춘대옥촉> <보상무> <첩승>을 오랜만에 예악당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축약한 구성이 아니라 가능한 본래의 구성대로 공연하였다. 그리고 1828년 연경당 진작례는 진시(辰時) 즉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무동들이 출연했었다. 이번 공연에서 무용단의 남녀 춤꾼들도 무동의 역할로 춤추었다.

첫 번째 정재는 <망선문(望仙門)>이다. 2인이 당(幢-의장이나 군에서 지휘용으로 쓰는 기)을 들고, 4인이 작선(雀扇)을 들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마주보며 작선을 기울이면 문(門)이 만들어지고, 집당 역할의 춤꾼이 문을 드나들며 춤추었다. 여기서 문은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선문(仙門) 앞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니, 선계(仙界)로 들어가 연향을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1828년 연경당 진작에서도 첫 번째 정재로 올려졌다.

<춘대옥촉(春臺玉燭)>은 윤대(輪臺)라는 무대에 보등(寶燈)과 당(幢)을 들고 추는 춤이다. 이번 공연에서 윤대를 재현하지는 못했고, 무대 중앙의 돌출무대를 올려 윤대처럼 띄웠다. 무대 위의 무대는 매우 적극적인 장치이다. 순조대 정재에는 이러한 장치를 여러 종목에서 볼 수 있다. 언젠가 예악당 무대에 사방에 계단이 놓이고 화려하게 장식된 윤대가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보상무' (사진제공=)
'보상무' (사진제공=국립국악원)

 

<보상무(寶相舞)>와 <향령무(響鈴舞)>는 1828년 연경당 진작에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로 올려졌었다. <보상무>는 포구락처럼 보상반에 채색공을 넣어 상을 주거나 얼굴에 먹점을 찍는 정재이다. 창사 중에 “꽃 사이에서 퉁소와 북을 연주하라 재촉마오(花間簫鼓莫催曲)”라는 가사는 편을 갈라 공을 던지는 일종의 게임이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필자가 보았던 25일 공연에서는 오른쪽 대열(右隊) 2명의 얼굴에 먹점이 그려졌다.

그리고 <박접무(撲蝶舞)>는 봄날 쌍쌍이 나는 나비들이 모티브인 궁중무이다. 6인의 춤꾼이 다양한 대형을 보여주는데, 첫 작대(作隊)는 앞쪽에 한 쌍, 뒤쪽에 한 쌍, 중간에서 좌우로 한 쌍의 대형이다. 다이아몬드 모양과 유사하다. 곧 원형으로 회진하면서 앞뒤 2열로 변한 후, 다시 6인이 가로 1열로 춤추다가 좌우 세로로 2열이 된다. 이 대형에서 대무(對舞)하다가 1열을 이룬 후 다시 첫 번째 작대를 만든 후에, 전대(前隊)와 후대(後隊)가 교차하고 중간의 2인도 교차하기도 한다. 이 움직임들은 마치 나비의 다양한 날갯짓과 동선을 형상하는 듯했고, 가로로 서서 6인이 팔을 벌렸을 때 겉옷 화접포(花蝶袍)에 수놓은 나비들이 활짝 펼쳐졌다. 참으로 화사하게 추어졌다.

'박접무' (사진제공=)
'박접무'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춘앵전무(春鶯囀舞)>도 무동의 춤으로, 박성호 단원이 춤추었다. 현재는 여성 춤꾼의 춘앵전을 많이 볼수 있지만, 이 춤의 초연을 무동이 추었다고 한다. 1828년 초연 시 연경당의 당시 관객들은 어떤 감상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 <첩승(疊勝)>은 10첩의 창사를 부르며 춤추는 정재이다. 연경당 진작에서 열네번 째로 올려졌었다. 창사에는 왕비를 모시고 궁궐 연못 앞에서 악사들이 연주하고 기녀들이 나붓이 춤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당일 연향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머니 순원왕후의 장수를 기원한 정재이다. 노래가 중심인 정재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반복적인 구성이기에 국립국악원 무대에 별로 오르지 않았지만, 이번에 전곡을 연행했다.

'첩승' (사진제공=)
'첩승'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춤으로 빚은 효>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궁중무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1828년에 연행했던 궁중무의 모습을 가능한 한 재현하고자 했으니, 명실상부 조선조 장악원의 맥이 국립국악원 무용단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문득 2001년에 국립국악원이 공연한 <정재, 들여다보기>가 떠올랐다. 이 공연은 조선조 연향 기록인 의궤나 홀기에 대한 당시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왕조의 꿈 태평서곡>(1999년)이라는 연향을 재연한 후, 정재 자체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공연이었다. 궁중무가 갖추고 있는 춤사위와 의물, 복식을 중심으로 그 형식과 미의식, 의미망을 관객들에게 선보였고, 궁중무 감상의 심미안(審美眼)을 업그레이드시켰었다. 그 후 20여년이 지났고, 공연계의 환경과 흐름도 변하였다. 궁중무 감상의 환경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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