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2)
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2)
  • 더프리뷰
  • 승인 2021.07.2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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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c)김형석 (제공=신은주무용단)
'내 안의 물고기' (c)김형석 (제공=신은주무용단)

[더프리뷰=부산] 하영식 작가 = 인간의 기원을 고민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인간은 물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던 그 물은 담수가 아닌 눈만 뜨면 보이던 바닷물이었다. 인간이 바닷물에서 나왔다는 증거 중 하나가 소금이다. 인간의 몸에는 적당량의 소금이 함유돼 있으며 물과 함께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땀이나 피가 짠 맛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증거로서 바닷물과 인간 몸에 흐르는 피에서 소금이 농축된 비율이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수분인 물과 고기 덩어리인 살의 비율이 바다와 육지의 비율인 7:3으로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 번째로는 태아가 성장하는 임신모의 자궁 속 양수의 성분과 바닷물의 성분이 일치한다고 한다. 물론 양수의 성분은 항상 같은 것은 아니어서 태아가 성장하면서 양수의 양이나 요소도 변한다.

이렇게 많은 증거들이 나왔는데도 인간이 물고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는 물고기를 조상으로 섬기기 어렵다는 게 현실을 감안한 사실임을 부정할 순 없다. 인생의 후반부까지 살아온 사람으로서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물고기가 나의 조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물고기를 조상으로 받아들인다고 선포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나에게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어쨌든 물고기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믿든 안 믿든 물고기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증거가 많이 나왔으니 물고기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에 가보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만 물고기를 인간의 조상으로 떠받들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도 물고기가 우리의 조상이란 사실을 널리 알리고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확실한 걸 보고 느껴야 한다!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제공=신은주무용단)​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제공=신은주무용단)​

최선의 방법은 물고기가 있는 장소에 직접 가서 물고기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소금까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물고기와 소금을 보고 나면 인간들이 횟감이나 매운탕으로 먹어왔던 물고기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리서치에서 특이한 점은 외국으로 물고기와 소금을 보러간다는 데 있다. 왜 하필 외국인가? 가까운 자갈치시장이나 송정만 가도 물고기를 볼 수 있는데 왜 비싼 교통비를 들여 외국까지 가서 물고기를 보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유롭다. 바다 속에는 인간 세상처럼 국경선을 그려놓지 않았으니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후에 따라서 사는 물고기들이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바닷물고기는 거의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열대지역에 사는 물고기나 북극의 얼음 밑에 사는 물고기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물고기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건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이고 한 종류의 물고기만이 아니라 수백 종의 물고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산 자갈치나 송정은 제외됐다!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노니는 수족관과 염전이나 소금광산이 있는 국가와 장소를 심혈을 기울여 물색하고 탐색했다. 몇 군데 나왔으나 나중에 밝힐 예정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신은주무용단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국제성이다. 국내의 예술 팀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국제적인) 교류와 더불어 외국의 예술 팀들과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며 공연하는 게 목적이다. 외국으로 리서치를 떠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현지의 예술 팀과 함께 협력해서 <내안의 물고기>라는 작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다. 준비된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양국에서 함께 교환공연들을 계획했기에 설령 수족관이나 소금에서는 조금 미흡한 점이 있다 해도 국제적인 관점에서는 모두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와 현장 리서치에 참가하는 무용수들과 사진, 영상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2019년 12월 7일 서면의 한 카페에서 한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위의 내용을 주지시키기 위해 프로젝터를 걸어놓고서 열변을 토했으나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참가한 사람들이 <내안의 물고기>라는 제목만이라도 숙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헤어질 땐 “내안의 물고기!”라는 구호를 크게 연호하고 헤어졌다. 물론 카페의 다른 좌석에 앉았던 사람들은 우리를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라 눈을 흘기고 소곤대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최소한 우리네 조상은 박쥐가 아니라 물고기라는 사실이!

이제 물고기와 소금을 보기 위해서 떠나는 일만 남았다. 오키나와로 가는 일행과 이른 아침부터 부산김해공항에 모였다. 신은주 예술감독과 부산의 젊은 무용가들, 사진과 영상을 맡은 작가들과 나까지 8명이 물고기와 바다를 보고 자연과 맞서기 위해 길을 떠났다. 12월 10일, 오키나와에 도착했는데 날씨는 한국의 늦여름 날씨처럼 온화하고 포근했다.

오키나와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바닷가에 위치한 해양박물관 방문이었다. 처음 가본 곳이라 인상이 너무 강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크고 작은 물고기들, 그렇게 많은 물고기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수십 가지 형형색색의 색깔들과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유유자적하면서 거대한 수족관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노란 바탕에 푸른 줄무늬가 수놓아진 물고기, 파란 바탕에 노란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가 즐겁게 유영하면서 지나가 버렸다. 왜 물고기를 보러 외국까지 왔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은 아름다운 물고기 덕에 말끔히 가셔버렸다.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제공=신은주무용단)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제공=신은주무용단)

물고기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는데 어떤 물고기는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차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타고난 모습이 그렇겠지만 내 눈에는 어쨌든 불평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보였다. 물고기의 뾰로통한 모습에 웃음을 참다못해 사진까지 찍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물고기는 어미물고기의 등에 올라타서 함께 물속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거대한 물고기의 등장이었다. 길이가 거의 3-4 미터나 되고 덩치도 다른 물고기에 비해 수십 배가 큰 거대한 물고기가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이었다. 거대 물고기가 나타나자 작은 물고기들이 길을 비켜주는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공포감을 느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물고기들을 관망하면서 우리 인간들과 다시 비교해보았다. “왜 우리는 바다에서 나왔는데 바닷물 속에서는 1분도 견디지 못할까”라는 질문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사실 나는 폐활량이 적은지 바닷물 속에서 1분이 아니라 30초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몇 분을 견디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물고기들은 어떻게 물속을 여유롭게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질문이지만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 아가미로 숨을 쉰다는 말은 들은 적 있지만 겨우 그 정도의 답으로 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내 안의 물고기' (c)김형석 (제공=신은주무용단)
'내 안의 물고기' (c)김형석 (제공=신은주무용단)

아가미로 숨을 들이마시면 물이 들어올 텐데 어떻게 숨을 들이쉬는지. 인간은 폐로 숨을 쉬는데 물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다. 아가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들도 마찬가지다. 육지로 나오면 폐가 없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어 죽게 된다. 물고기를 잡아서 그냥 땅에만 놔둬도 죽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물고기의 아가미는 조금 복잡하게 만들어져 기능하는 구조이다. 물고기가 물을 마시면 물은 아가미의 빗살처럼 생긴 곳을 통과하면서 분해된다. 분해된 산소는 작은 혈관들을 통해 피 속으로 들어가고 이산화탄소는 아가미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사실 우리 인간들의 숨쉬기와는 달리 물속에서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간다. 너무 과학적이고 정교해서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고기도 이렇게 숨을 쉰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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