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이 지다, 육완순 이사장 별세
큰 별이 지다, 육완순 이사장 별세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1.07.24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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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가 육완순 (출처=한국현대무용진흥회)
현대무용가 육완순 (출처=한국현대무용진흥회)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이 23일 오후 5시 40분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주 출신인 그녀는 아무리 상투적이라 해도 ‘대모’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한국 현대무용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이화여대와 동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며 한국현대무용의 선구자 고(故) 박외선을 사사했다. 1961년 미국으로 유학,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현대무용을 배우며 마사 그레엄, 호세 리몽, 앨빈 에일리 등 세계적인 무용가들을 사사했다.

1963년 귀국,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부임한 그녀는 같은 해 자신의 첫 현대무용 발표회를 열어 관객과 평론가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후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한국 현대무용은 현대무용의 실질적 창시자라고 할 마사 그레엄 기법의 절대적 영향을 받게 된다.

안무가로서 그녀는 한국적 소재를 서양춤 기법에 접목, 수십 편의 안무를 창작했다. <초혼> <무녀도> <한두레> <실크로드> 등 많은 작품을 통해 현대무용의 ‘육완순식 한국화’를 시도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일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1970년 뮤지컬을 현대무용화한 이 작품은 1973년 초연 이래 현재까지도 공연될만큼 롱런을 이어가며 현대무용 대중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마리아역의 김화숙, 박명숙, 안신희, 그리고 예수 역을 맡았던 박호빈, 최두혁 등이 모두 스타로 성장하며 이후 한국 무용계의 중견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육완순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중 한 장면(출처=youtube.com)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중 한 장면(출처=youtube.com)

또한 육완순은 교육자로서도 한국 현대무용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해방 이후 이른바 ‘신무용’을 극복할만큼 뚜렷한 현대무용의 발흥이 없던 상황에서 한국 현대무용은 선구자인 박외선에 의한 춤아카데미즘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지형에 놓이게 되는데 이 때 신진 유학파 출신인 육완순에 의해 본격적인 한국 현대무용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녀의 많은 제자들이 이후 대학에서 자리를 잡으며 현대무용을 주도하게 되고 한동안 우리 현대무용계는 마사 그레엄의 수축과 이완(contraction and release) 기법이 주도하게 된다.

개인 차원의 예술가, 교육자를 넘어 육완순은 한국 현대무용의 전반적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75년 이화여대 출신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을 창단,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동시대의 춤’을 표방했으며 한국현대무용협회,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등을 창립, 현대무용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올해 40주년을 맞은 국제현대무용제(MODAFE)도 그녀가 창설했다. 또한 제도화를 통해 현대무용의 기반을 다지려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창단된 국립현대무용단은 육완순과 그 제자들이 기여한 공적이며 헌신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현대무용단 출범식에서 선언문 같은 축사를 낭독하던 육완순의 눈물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안무경연대회인 프랑스 바뇰레 안무대회 한국 대표를 맡아 한국인 무용가들을 진출시키는 데 힘썼고 나중에는 서울국제안무대회(SCF)를 창설, 외국 심사위원들이 한국 작품들을 초청해 가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곡도 있었다. 1991년에는 금품을 받고 이화여대 무용과에 학생 두 명을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화여대 무용과의 세 교수가 모두 처벌을 받은 이 입시비리 사건은 이후 한동안 무용계에서 이화여대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서간 형식의 저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를 통해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고인은 타계 직전까지도 많은 약속과 회합 등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에서 귀국한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건강관리에 힘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소처럼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연도 빼놓지 않고 보러다니는 등 건강한 모습이었으나 지난 20일 오후 사무실에서 갑자기 쓰러지면서 불과 며칠 만에 세상을 등졌다. 책이 제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편지가 된 셈이다.

저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제공=디자인필)
저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제공=디자인필)

길지 않은 역사에 비해 무섭게 발돋움하고 있는 한국 현대무용. 예술, 교육, 행정 등 한국 현대무용 전반에 걸쳐 ‘육완순’이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 6월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현대무용가 육완순, 내 이름 앞에 이 다섯 글자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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