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7) - 우리는 과연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7) - 우리는 과연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1.07.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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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여행 이야기
뭄바이 중앙역 (제공=김윤정)
뭄바이 중앙역 (사진제공=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독일에서 만든 나의 첫 안무작 제목이 <도둑맞은 꿈>이었는데 인도의 신화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었다. 신화에 의하면 인간도 태초에는 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신은 어찌나 신성을 남용하고 욕심도 많은지 다른 신들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인간이 잠든 사이 인간의 신성을 빼앗아 감추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멀리 숨겨 놓아도 영리한 인간들은 찾아내고 말 것이라고 여긴 신들이 고심한 끝에 인간의 신성을 숨기기로 한 곳이 바로 인간의 마음속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인간들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늘 머나먼 곳으로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안에 있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인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언젠가 꼭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가본 적은 없었지만 인도는 왠지 어느 이름 모를 골목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는, 어디선가 봤던 글처럼 미지의 세계 같은 아련한 환상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타고난 역마살로 꽤나 여행을 다녔지만 어쩌다 보니 인도는 좀처럼 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조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우연하게, 그것도 아주 갑자기 인도를 드디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2019년 가을, 그러니까 코로나가 창궐하기 바로 몇 달 전이었다. 인도의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초대해 주신 지인이 계시는 곳이며 영국의 식민지 시절 수도였던 벵골주의 콜카타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 위험하고 더러운 곳에 왜 가려느냐,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여기며 인도행 비자를 준비하면서 꿋꿋하게 짐을 쌌다.

드디어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조용한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인도 출장을 갔었는데 내 인생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야”라며 지나간다. 아, 진짜 우연이라 하기엔 하필 인도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아침, 길에서 들리는 첫 대화가 그런 소리라니. 정말 나도 모르게 “저, 저기요, 저 지금 인도로 가는 길인데요?!!” 하고 말할 뻔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인도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런 불길한 우연(?)의 싸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좀 더 비장한 마음으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떠났다. 그렇게도 무수히 비행기를 타고 안 다녀본 곳 없이 돌아다니던 내가 인도로 가는 길은 왜 그렇게 긴장되고 또 멀게 느껴졌을까? 공항에 마중 나오신 대표님(지인님에 대한 나의 호칭을 그대로 쓰겠다)께서 인도 전통의상을 입으시고 웃음으로 맞아 주셨다. 인도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라며 인도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다. 인간적인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나라 인도와 대표님은 어딘가 잘 어울렸다.

물리크가트 꽃시장 (제공=김윤정)
물리크가트 꽃시장 (사진제공=김윤정)

늘 도전을 멈추지 않으시고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하시는 대표님은 독일에도 회사가 있으시고 이제는 인도에까지 확장을 하고 계셨다. 대표님은 사업을 하실 때는 냉철하신 듯하지만 늘 주변을 살피고 또 베푸시는 따뜻하신 분이다.

나는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일상조차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어디를 가도 관찰하고 영감을 받는 삶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가도 늘 환경 적응이 빠른 편이다. 그런데 도착 날부터 눈에 들어오는 콜카타의 광경들은 무슨 시대극 영화 세트장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더위에 맨발로 앉아 그 자리에서 닭을 잡아 파는 상인들, 엉켜있는 자동차들 속에서 길을 가로막는 소떼들, 뿌연 먼지 속 그렇게 복잡한 길 한가운데 앉아서 앙상한 뼈를 드러낸 노인이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 그야말로 수없이 듣고 읽고 사진으로 보아 왔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지고 맡아지는 냄새들을 통해 나는 정말 머나먼 땅에 온 것 같았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롭다더니 ‘올드 퓨처’를 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새롭고 신기한 정신적 모험이었다.

작가 류시화는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콜카타의 첫 인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인도 콜카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가난하고 더럽고 복잡한 도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내면서 보니 콜카타는 처음 볼 때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훨씬 더 더럽고, 훨씬 더 복잡한 곳이었다.”

콜카타의 인력거 (제공=김윤정)
콜카타의 인력거 (사진제공=김윤정)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그랬다. 그런데 왜 <양철북>으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2015)는 콜카타를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이며 최고의 영감의 도시로 삼았을까?

괴테는 왜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인도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나 자신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을까?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왜 “지구의 나머지 나라를 모두 본 것보다 더 강렬한 나라, 인도”라고 했을까?

타고르 하우스

우선 시인 타고르와 마더 테레사의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 시인의 생가 타고르 하우스를 찾아가 보았다. 타고르 하우스는 무척이나 복잡한 거리에 있었는데 오고가는 차들과 릭샤(인력거)들이 북적였고 집 앞에는 거리의 이발사들이 한가하게 머리를 자르고 있고 그 옆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대표님께서 인도는 위험하다며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늘 붙여 주셔서 비교적 안전하게 콜카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마음껏 골목들을 누비며 걷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우리는 타고르가 한국을 표현한 시 <동방의 등불> 을 기억할 것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 하우스 앞의 거리의 이발사 (제공=김윤정)
타고르 하우스 앞의 거리의 이발사 (사진제공=김윤정)

마더 테레사

인도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도시 콜카타에서 평생 봉사활동을 하시며 마지막까지 생을 마치신 마더 테레사님의 집을 방문했다. 콜카타는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 이후 들어온 난민들로 인해 더욱 극빈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평생을 집도 없이 고단하게 산 사람들이 늙고 병들었을 때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마지막을 편하게 쉬다 가도록 호스피스를 짓고 그곳에서 극빈자들을 돌보는 일에 일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 날도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잠시도 외면할 수 없어 시상식에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걸어 들어가니 마더 테레사의 사진이 걸려 있는 문이 보였다. 문을 살살 두드리니 수녀님들이 문을 열어 주시고는 조용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나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잠든 동상 아래 조용하게 기도를 하고 집을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어떤 분이 내 손에 테레사 수녀님의 사진이 인쇄된 카드와 묵주를 쥐어 주셨다.

마더 테레사의 집 (제공=김윤정)
마더 테레사의 집 (사진제공=김윤정)

인도의 전통춤 오디씨(Odissi)

콜카타에서 무엇보다 나에게 특별한 시간은 인도의 전통춤 오디씨(Odissi) 개인 지도를 받으러 다녔던 일주일이었다. 이 춤은 인도 북동부의 오리사라는 도시의 힌두 신전에서 신에게 바쳐지던 성스러운 춤으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유지, 계승되고 있는 춤이라고 한다. 현대에도 몇 천 년 전의 춤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오디씨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춤으로, 재미있는 것은 발 포지션은 늘 턴 아웃을 유지하는데 그 각도가 서양 무용처럼 완전한 턴 아웃이 아닌 중간 정도이고 무릎은 항상 그랑 플리에가 아닌 드미 플리에 정도이다. 그리고 발바닥은 앞부분과 뒤꿈치를 치면서 리드미컬하게 다양한 스텝을 한다. 그야말로 서양춤의 기본 원리와 탭댄스 또는 플라맹고의 느낌도 났고 우리나라 전통춤처럼 땅을 누르면서 하는 잔발 디딤질과 닮기도 했다. 그런데 상체는 아주 복잡한 손가락 동작에다가 팔꿈치와 머리 각도가 다양해서 정말이지 일주일 동안 2분 30초짜리 안무를 배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인도의 전통춤 오디씨(Odissi) 레슨 (제공=김윤정)
인도의 전통춤 오디씨(Odissi) 레슨 (사진제공=김윤정)

매순간 온몸의 각도를 맞추려면 그야말로 정신 수양의 수준으로 집중을 해야 했다. 시선은 절대로 머리를 돌리고 바로 보는 게 아니고 먼저 턱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눈동자가 곁눈질하듯 옆으로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힙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통으로 먼저 리드해서 골반이 따라가게 하는 것도 보기보다 쉽지가 않았다. 다양한 신과 자연을 표현하는 정교한 손가락 동작들과 시선과 팔꿈치와 몸의 각도를 잡는 것이 그야말로 머리에 지진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라는 작품에서 무용수들에게 오십 여 개가 넘는 손가락 동작을 외우게 했는데 멘붕이 올 것 같다고 해서 함께 웃었다.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전통춤을 단 며칠 배워서야 그 느낌을 가늠하기 조차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에게 아주 빠른 편이라며 용기를 주고 끝까지 작품 하나를 남겨준 스승 슈바(Shubha Bangur)에게 감사한다. 하루는 레슨이 끝나고 곧 있을 공연의 준비를 위해 그녀의 어린 제자들이 와서 연습하는 걸 구경했는데 그 복잡하고 현란한 동작들을 해내는 어여쁜 인도 소녀들을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다운 인도의 역사박물관, 빅토리아 기념관 등등 명소들을 돌고 오후에는 오디씨 레슨을 받고 저녁이면 대표님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또 다른 세상에서 럭셔리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대표님의 사업 파트너들은 친구의 친구는 자기들에게도 친구라며 인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왔다. 나는 사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갠지스 강가에서 시체를 태우고 한쪽에서는 그 물로 목욕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한번 보는 것이라고 했다. 왜 죽음을 보고 싶으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나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언젠가 나에게 죽음이 찾아오면 너무 당황하지 않기 위해 늘 죽음을 아주 가까이 느끼며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대표님의 사업 파트너 중에 한 분이 바쁜 와중에 특별히 시간을 내서 갠지스 강의 줄기인 후글리 강가에 있는 화장터로 데려가 주었다. 나는 나무토막처럼 누워있는 시체 위로 화장하기 직전에 행해지는 의식을 보았다. 이미 영혼이 떠난 상태의 몸이라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었다. 결국 우리의 몸은 살아 숨 쉬는 동안만 존재하는 겉옷 같은 것이구나 싶었다.

콜카타 국립박물관 (제공=김윤정)
콜카타 국립박물관 (사진제공=김윤정)

벨루어마스 사원(Belurmath-temple)

인도에서 성자들의 존경을 받는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6-1886)는 모든 종교를 깊이 연구하고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뜻을 받들어 지어진 후글리 강가에 있는 벨루어마스 사원은 종교에 차별을 두지 않고 누구라도 와서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원은 모든 종교를 화합시키는 의미로 교회도 성당도 힌두사원도 모스크도 아우를 수 있는 건축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콜카타 시내에 있는 염소를 잡아 신성한 피를 제물로 바친다는 칼리 사원을 비롯해 여러 사원들을 둘러 보았지만 벨루어마스 사원을 찾은 그날의 광경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후글리 강가에서 물을 기르며 기도하는 사람들, 그 위로 이름 모를 새떼들이 웅장한 현대 교향악 같은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고, 하늘은 해가 어스름히 지면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벨루어마스 사원(Belurmath temple) (제공=김윤정)
벨루어마스 사원(Belurmath temple) (사진제공=김윤정)

그리고 무더위에도 화려한 색깔의 천을 두르고 사원으로 가는 끝없이 이어지는 인파, 사원 안에 수도자들의 우렁찬 염불 소리, 그 앞에 모여 기도를 하는 신심이 깊어 보이는 사람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득한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유난히 습기 많은 저녁의 그 몽롱한 분위기에 취하는 듯했고 그날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종종 천진한 눈빛의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해서 대표님과 나는 사진을 찍어 주었다. 신나서 돌아서는 아이들을 다시 잡으면서 대표님은 사진을 찍어줬으니 1루피를 주고 가야지 하시니 아이들은 큰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농담인 걸 알고 해맑게 웃으며 갔다. 갠지스강은 아니었지만 꼭 한번 그 강물을 만져 보고 싶었던 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후글리 강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후글리 강 (제공=김윤정)
후글리 강 (사진제공=김윤정)

언젠가부터 나는 세상의 모든 신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형식과 방식으로 다른 문화, 다른 역사 속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분명히 그 위에 도달하는 순간은 하나의 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뭄바이

열흘간의 콜카타에서의 시간이 마치 꿈을 꾼 듯이 지나고 마지막 며칠은 서울의 인구밀도의 세 배가 넘는 도시,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도시, 볼리우드로 유명한 거대 도시, 뭄바이로 갔다. 뭄바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영국 동인도회사의 거점으로 육성된 무역항이다. 도시 곳곳에 영국 식민지 시절의 빅토리아식 거대한 건물들이 유럽의 분위기가 나기도 했지만 빈민가, 슬럼가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뭄바이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곳은 카스트 신분제도의 제 4계급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5계급의 불가촉 천민들이 180년 동안 빨래로 생업을 이어간다는 공동빨래터(Dhobi Ghat)였다. 아무리 더러워진 빨래라도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더없이 깨끗해지지만, 이들의 타고난 신분은 빨아도 빨아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1955년 불가촉 천민 관련법이 제정되어 이들에 대한 종교적, 직업적,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인도 전역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카스트제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으며 절대적인 가난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뭄바이의 공동 빨래터(Dhobi Ghat) (제공=김윤정)
뭄바이의 공동 빨래터(Dhobi Ghat) (사진제공=김윤정)

도비 가트 주변에는 이들이 살고 있는 천막촌이 늘어서 있는데 세계 어떤 곳을 가보아도 이보다 더 처참한 삶은 없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겨우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높이의 막대기 네 개를 꽂아놓고 비닐을 씌운 천장, 그리고 그 비좁은 곳에서 여러 명의 가족들이 음식도 해먹고 자고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하우리 철교 위에서 도비 가트를 내려다보면 그 뙤약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지저분해 보이는 물이 담긴 물통 속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세상에서 더 이상 지저분할 수 없을 것 같은 세탁장 위에서 펄럭이며 마르고 있는 빨래들의 색깔은 어쩌면 그리도 선명하고 깨끗해 보이던지, 그런 대조되는 것들이 인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뭄바이에는 한때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오른 적도 있었던 인도 최고의 부호 무케시 암바니의 집도 있다. 한눈에 봐도 초호화 빌딩인데 5인 가족이 사는 집에 일하는 사람들만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무케시 암바니의 집 안틸리아 타워 (제공=김윤정)
무케시 암바니의 집 안틸리아 타워 (사진제공=김윤정)

언젠가 어느 인도 부호의 자녀 결혼식에 할리우드 스타들부터 우리나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참석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가문의 집이었다. 헬기 착륙장이 세 군데나 있다는 60층 높이의 빌딩을 돌면서 바로 하루 전에 보았던 천막촌이 떠올랐다. 인도는 현세의 삶은 전생의 결과이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산다고 한다.

공용어로 지정된 언어만 20개이고 실제로는 3천372개의 언어를 쓰는 나라 인도, 세상이 너무 신비해서 수 천 개의 신이 존재한다는 인도,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삶들이 공존하는 인도의 사상과 철학은 공허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며 습관적인 자만과 욕심에 빠진 사람들을 맘껏 비웃어 주기도 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신을 믿으며, 우리 개개인 모두의 발현은 우리를 만든 창조자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작품이라고 한다.

신성과 수성이 혼재하고, 신과 성자와 사기꾼과 동물들이 뒤엉켜 나름의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뿌연 도시의 나라 인도의 모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전생을 믿고 다음 생을 믿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환상인가. 시간의 한계에 갇혀 각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여운을 주는 환상인가?

인도를 떠올리면 불과 2년 전이었지만 아주 오래 전 머나먼 곳에서 잠시 꿈을 꾸고 온 듯하다.

지면을 빌려 그렇게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완성할 기회를 주신 지인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인도를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더구나 인도에 다녀온 후 몇 개월 뒤 이렇게 코로나가 창궐하게 됐다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그때 미뤘으면 어쩌면 영영 인도 땅을 밟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는 동안에 세계와 만나고 자기 자신과 뜨겁게 해후한 자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끝없이 걸어 자기의 집에 이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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