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3)
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3)
  • 더프리뷰
  • 승인 2021.08.0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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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더프리뷰=부산] 하영식 작가 = 물고기 앞에서 함께 갔던 동료들은 모두들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물고기가 우리들의 정신을 다 빼앗아 가버려 다른 생각은 도무지 할 수조차 없었다. 물고기만 바라보면서 이렇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화롭게 물속을 헤엄치면서 다른 물고기들과 싸우거나 부딪힘 없이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보기에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다시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들은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과연 우리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나만 홀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 수는 있을까.

'내 안의 물고기'(c)김형석

오키나와에서 또 다른 하이라이트로는 단연 바닷가에서 벌어졌던 즉흥공연과 촬영활동이 압권이었다. 오키나와 현지에 사는 일본인 부부가 안내했던 바닷가는 감춰진 보물과도 같은 장소였다. 풍부한 모래사장과 산호바위들이 간간히 보이고 인적은 찾아볼 수 없는 우리들만의 바닷가였다. 좋은 장소에는 어디든 인파가 우글거리는 한국의 바닷가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준비해온 의상으로 갈아입은 무용수들은 여전히 냉기가 있는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형상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실행해 함께 온 동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이들은 준비해온 붉고 푸르고 흰 갖가지 색깔의 천들을 펼쳐들고 달리면서 천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물에 들어간 무용수들은 바닷물이 더 따뜻하니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했다.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내 안의 물고기' (c)조명환

낮에는 날씨가 따뜻해 별 문제 없었지만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퍼포먼스를 감행했던 무용수들의 입술이 시퍼렇게 변하고 덜덜 떠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를 본 일본인 부부는 주위에서 작은 나무들을 끌어와 모닥불을 피워 추위에 떠는 무용수들을 뒷바라지하는 친절함을 보여줬다. 오후 늦게까지 쌀쌀한 날씨에도 무용수들이나 카메라 영상 팀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촬영을 하는 끈기를 보여줬다. 이들이 보여준 열정과 끈기는 해가 지는 와중에도 계속돼 어쩔 수 없이 끝내자는 제안을 한 후에야 겨우 상황이 종결될 수 있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두들 모여 앉아 젖은 옷과 몸을 말리는 동안 하늘 동쪽에서는 작은 달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오키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는 소풍에서 돌아오는 어린이들처럼 기쁨을 토해냈으며 뭔가 이룩했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한 하루였다.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다음 날은 오키나와에서도 멀리 떨어진 작은 섬인 쿠다카 섬으로 가는 일정이 예정돼있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호텔에서 나왔다. 아침부터 해변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려서 항만에 도착해 페리호를 타고 섬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오키나와도 섬이지만 도시화된 대단히 큰 섬이다. 큰 섬에서 작은 섬으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했다. 오키나와도 그다지 공해는 없는 것 같았는데 완전한 무공해 천연지대로 간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입 밖으로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한 번 보고 나 스스로 답을 얻겠다는 심사였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한 섬은 무공해 청정지역이라 단정 지어도 좋을 만큼 깨끗했다. 내가 깨끗하고 좋다고 하자 우리들을 데려온 일본인 부부는 으쓱해하면서 기분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작은 신사가 갖춰져 있어 모두들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물론 나는 신사에 대해 존중은 하지만 믿지는 않으니 기도하는 시늉만 했다.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니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군지 밝히진 않겠지만, 나처럼 흉내만 내는 사람도 보였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모두들 마음을 가다듬고서 해변을 향해 걸었다. 작은 섬이니 조금만 걸어도 해변이 보였다. 해변에는 우리들 일행만 존재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우리만 남으니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해변이기도 하지만 다른 편에는 바위산이 있고 절벽으로 이뤄진 만처럼 깊숙이 형성된 천혜의 장소였다. 거친 산호로 이뤄진 바위여서 맨발로 밟고 다니기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돼 있었다. 무용수들이나 카메라맨들은 지극히 조심해야 할 장소였다. 무용수들은 물에 들어가서 퍼포먼스를 했고 수중카메라까지 동원돼 촬영이 이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무용수가 물속에서 실수로 바위에 몸을 긁히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작은 긁힘이었으나 불상사는 불상사였고 모두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바위해변에서의 작업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히든 공간이 남아있었다. 바위해변 옆에 펼쳐진 천혜의 장소인 흰모래 해변이었다. 여기서 다시 퍼포먼스와 촬영을 진행했다. 하얀 모래로 뒤덮인 바닷가, 흰 모래 위로 천을 들고 뛰는 무용수들,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무용수들을 따라가며 촬영하는 카메라맨들의 모습이다. 세상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기어코 실천하려는 듯 이들은 자신의 일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일들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바람과 파도, 흰 모래, 푸른 하늘, 몇 명의 무용수들이 보인다. 물고기가 바다에서 나온 모습같이 고요하게 때로는 거칠고 폭넓게 움직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인간이 물속에서 나왔고 물고기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과연 이들은 그렇게 빠른 시간에 내재화시켰을까.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열정과 움직임은 진실되며 위선이나 거짓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고기에서 인간이 진화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리기 위해 예술가들이 이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닐 슈빈 교수가 봤으면 얼마나 감동 받을까. 나중에는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남자 무용수의 모습이 마치 물고기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 훌륭한 퍼포먼스를 해냈다. 그래서 “물고기랑 너무 닮았다!”라는 말을 그에게 해주니 다른 동료들도 모두 동의했다. 무엇보다도 바위에 긁혀 상처를 받아 한 동안 소침해하던 여자 무용수도 이젠 완전히 회복됐는지 아주 즐겁게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하루를 마치면서 함께 모여 “내안의 물고기!”를 힘차게 외쳤다. 그렇다, 난 물고기에서 나왔다! 밤이면 모여서 촬영된 이미지와 영상을 함께 보며 다양하고 긴 토론을 진행하였다. 세대도 다르고 문화와 정서도 다른 참가자들은 물고기의 진화라는 몸을 화두로 관찰하고 상상하며 물고기와 만나고 있었다.

<현장 리서치-대만>

성탄절을 전후로 두 번째 리서치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대만이다. 대만으로 가는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고기와 소금을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만의 예술팀과의 교류이다. 대만에 도착한 뒤 곧 바로 찾아간 곳은 해변이었다. 확 트인 바닷가에서 석양이 지는 모습을 감상하러 온 것이다. 붉은 빛 덩어리가 조금씩 삭아 들어가다 나중에는 완전히 바다 저편에서 사라져버리는 광경이다. 사실 석양이 지는 광경은 방향이 맞지 않으면 바닷가에서 보기 힘들다. 가령 동해바다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일출은 볼 수 있지만 일몰은 전혀 보지 못한다. 반대로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석양만 볼 수 있지 일출 광경은 전혀 볼 수 없다. 대만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도시 타이난에서 유명한 게 바로 석양이 지는 광경인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외국인들이 타이난의 석양을 보기 위해 저녁이 되자 해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함께 온 동료들 중 무용수 한 명이 갑자기 춤(동작)을 시작했다. 태양이 지는 수평선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고 고요했다. 고요 속의 아름다움! 고요한 상태에서 여전히 붉은 빛이 가시지 않은 바다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몇 사람의 실루엣은 한 폭의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흩어져 있던 대만 가족들이나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조용하게 모여들면서 우리 무용수들의 퍼포먼스는 의도하지 않은 즉석공연으로 변해버렸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 바닷가의 공연은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운 예술공연이었다. 공연은 태양이 완전히 빛을 잃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어두움이 완전히 세상을 지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대만의 첫 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석양을 등지고 즉흥춤을 추던 때”를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고 신은주 감독도 회고했다. 대부분의 동료들도 대만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순간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대만이나 오키나와는 물고기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조상인 물고기를 회를 쳐서 날로 먹거나 익혀서 먹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을 안내했던 대만의 무용가 크리스티나는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쁜 일정을 계획해서 실행해 옮겼다. 덕분에 많은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고 대만만이 가진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트리하우스나 불교사원, 치메이박물관 등 크리스티나 덕분에 좋은 관람을 했다. 크리스티나의 헌신적인 노력은 국제교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었다.

해양박물관은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타이난에서도 3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먼 거리였다. 많은 외국 사람들과 대만 사람들도 보였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았다. 박물관 입구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설치돼 있었는데 대여섯 마리의 돌고래 상들이 세워져 우리를 맞아들이고 있었고 곧 분수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돌고래는 이미 포유류로 진화가 완성된 물고기여서 우리의 조상으로는 섬길 수 없는 단점은 있지만 여전히 물고기니 존중 받아야 할 것이다.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내 안의 물고기'(c)조명환​

대만의 수족관들도 오키나와와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물고기들의 종류도 많았다. 거대한 규모의 박물관에는 대만 연안의 바다 물고기들 뿐만 아니라 내륙지방의 강과 하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들도 전시해 학생들에게는 많은 학습이 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빛을 가진 작은 해파리부터 오키나와에서 봤던 물고기와 비슷하게 화를 잔뜩 낸 물고기까지 많은 물고기들의 행진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철갑을 두른 듯 덩치 큰 물고기와 마치 물속을 나는 듯 날개를 넓게 펼치고 유영하는 가오리 떼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서도 나는 많은 물고기를 보는 행운을 안았고 인간의 조상인 물고기들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계절은 이미 12월 말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대만 남쪽의 한낮의 날씨는 한국의 선선한 여름철 날씨와도 같이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무더웠다. 점심식사를 마친 무용수들은 모두 분수대 앞에 모였다. 분수에서는 물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분수 밑의 못에는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지만 무용수들은 모두 분수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같이 온 크리스티나까지 분수 안으로 뛰어들면서 모두들 놀랐다. 크리스티나도 무용수이니 다른 무용수들이 뛰어드는 걸 보고서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을 맞으며 분수대 안에서 내안의 물고기 정신으로 물고기를 형상화하는 퍼포먼스를 행하자 박물관을 출입하던 많은 학생들과 외국인들까지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더군다나 촬영 팀까지도 일심동체가 되어 무용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옷이 젖는 것도 감수하고 함께 물에 들어가는 프로정신을 보여줬다.

당시 필자의 가슴은 순간적인 감동으로 먹먹해졌다. 내안의 물고기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든 예술가들의 모습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선에 뛰어든 척탄병의 모습과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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