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한’은 희망을 품는다 -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공연리뷰] ‘한’은 희망을 품는다 -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20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8월 12-15일 새 단장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올려졌다.

광복절을 맞은 국립오페라단의 기획은 신의 한 수였다. 나부코 왕의 바빌로니아는 식민지 유대 백성들을 혹독하게 통치했고, 유대인들은 신께 부르짖으며 해방을 꿈꾸었다. 관객은 베르디의 명작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추할 수 있었다.

베르디의 음악이 주는 감동, 스토리텔링의 힘도 크지만 무엇보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가 한 차원 더 높은 무대를 선보였던 이유는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일 것이다. 스테파노 포다는 상징적 미장센과 혁신적인 연출로 각광받는 스타 연출가다. 국립오페라단과는 세 번째 작업으로, <안드레아 셰니에>(2015)와 <보리스 고두노프>(2017)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 뿐만 아니라 무대·의상·조명·안무를 맡았다.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출연진도 훌륭했다. 고성현은 나부코에 빙의된 것 같았다. 유대인을 핍박하는 왕은 잔혹하고 거만했다.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를 노래할 때, 고성현 아닌 나부코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저주에 걸려 정신이 이상해진 나부코를 연기할 때, 고성현은 슬픔과 무기력과 우울함에 싸인 가련한 노인이 되었다.

아비가엘레를 열연한 문수진의 표현력도 대단했다. 냉혹한 질투의 화신 아비가엘레는 아비를 속이고 왕이 되려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참회하고 숨을 거둔다.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아비가엘레가 악행을 저지르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이 여기서도 빛났다. 아비가엘레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왕이 되고자 하는 때, 어린 소녀가 무대에 등장한다. 소녀는 그저 아비가엘레의 주위를 걷기만 한다. 아비가엘레의 마음에는 어린 소녀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배신해야 하는 필연성, 이즈마엘레의 사랑을 차지한 동생에 대한 질투, 갖지 못할 바엔 모두 죽여버리고 싶은 이즈마엘레를 향한 애증까지 스테파노 포다는 어린 소녀를 활용해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문수진의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무대는 현대적이고 상징적이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니만큼 종교와 세속의 대립은 필연적인 이미지다. 흰 옷을 입은 유대인과 붉은 옷의 바빌로니아인들은 특별히 무기를 들지 않아도 조명과 연기로 전쟁과 폭력, 핍박을 연출했다.

포다의 연출 노트에 의하면 “오페라 <나부코>의 비밀은 외견상 도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대본을 초월하는 ‘영성’에 있다”고 한다. 포다는 작품을 통해 종교를 넘어선 영성을 말하고자 했다. 좌절에 빠져있던 베르디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노랫말에서 얻은 영감으로 위대한 성공을 거둔 여정을, <나부코>의 등장인물 모두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오페라의 절정은 역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무대 위에서 소녀상들이 서서히 내려왔다. 무대 벽 한가운데에는 한글로 ‘한’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박혔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한 유대 민족에게도 그 한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포다가 해석한 ‘한’은, ‘침묵의 시대에 괴로움과 슬픔이 커질 때 집단성을 가지며, 희망이라는 요소를 통해 서로 나누고 체화하고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은 창조와 연결되고, 종내는 트라우마의 해결로 이어진다고.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소녀상은 식민지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었다. 무대를 빙 두른 소녀상들과 그 사이에 서있는 어린 소녀들, 그 안에서 ‘가거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부르는 유대인들의 합창을 듣고 있자니 전율이 일었다. 외국인 연출가 포다가 얼마나 한국의 관객들을 고려하고 생각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니, 소녀상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보편적 이미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02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올리려다 코로나로 취소된 그의 <나부코> 프러덕션은 또 달랐을 것 같다.

국립단체의 소명은 좋은 작품을 많이 알려서 국민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돕는 데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그 소명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길어진 코로나로 지치고 양질의 무대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예술을 통한 치유와 희망을 보게 해준 <나부코>였다.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공연장면 (c)piljoo(제공=국립오페라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