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4)
하영식 [‘내안의 물고기’ 동행기]-(4)
  • 더프리뷰
  • 승인 2021.08.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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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의 모습 (c)조명환

[더프리뷰=부산] 하영식 작가 = 대만에서는 물고기보다는 소금과 더 가까워졌다. 많은 물고기들을 해양박물관에서 봤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염전지대와 사적인 염전지대, 소금언덕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장소였다. 세미나에서도 밝혔지만 인간이 바닷물에서 나왔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바로 인간의 몸에 소금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 몸에 소금이 없으면 죽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모든 의혹이 해소된 건 아니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우리는 바닷물을 마시면 죽게 되나? 우리가 바닷물에서 나왔다면 바닷물도 마실 수 있어야 합당하다. 하지만 현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세월이 너무 흘러버렸고 모든 게 너무 변해버렸다.

4억 년 전, 인간의 조상인 물고기들이 뭍으로 올라온 이래 점점 바다와 멀어지니 당연히 소금과도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처음에는 소금물인 바닷물을 마셨겠지만 수억 년이 흐르면서 뭍으로 올라와 소금과 멀어졌으니 결국에는 소량의 소금만 섭취할 수 있는 몸으로 진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몸에 소금기는 남아있지만, 극소량의 소금밖에 섭취하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바닷물도 지역에 따라 소금의 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사해를 꼽을 수 있다. 사해는 ‘죽음의 바다’라고 하는데 소금의 농도가 너무 강해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사해(死海)라 한다.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스라엘을 방문해 사해의 소금물에 들어가 드러누운 적도 있다. 소금의 농도가 너무 진하니 나처럼 수영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물에 떠다닌 기억이 있다. 어떤 성경학자는 사해가 생겨난 원인이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되면서 시작됐으며 사해의 밑바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적들이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우리말의 지구와 비슷한 ‘치구 소금 산’이다. 타이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치구의 소금 산을 방문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도 많은 외국인들과 대만 사람들이 보였다.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산이 나타났다. 대만에서 눈이 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얀 산이라니! 소금이 축적돼 작은 산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모두 소금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온다고 한다. 높지도 않아 소금을 발밑에 밟으면서 작은 산을 오른다는 데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상은 일대를 모두 볼 수 있어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평평한 곳에 우뚝 솟은 소금 산에 오르니 일대의 낮은 평원들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더위를 씻어내 주었다. 산을 오르면서 갑자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이라는 시구가 생각났다. 왜 갑자기 태산이 생각났는지도 의문이다. 그렇다, 인생은 산을 오르는 일과도 같다. 소금으로 굳어진 소금 산, 비록 낮은 산이지만 쉬지 않고 올라가 반드시 정복하리라!

염전의 소금봉우리 (c)조명환
염전의 소금봉우리 (c)조명환

소금 산의 봉우리는 우리 일행이 아예 정복해버렸다. 무용수들과 영상사진작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은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듯 점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우리는 물고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소금 산에서도 잊지 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물고기가 바다의 수면 위로 점핑하는 멋진 모습을 무용수들이 재현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멀리 보이는 바닷가를 다시 음미했다. 바다를 인간의 어머니로 묘사한 한자 '바다 해(海)'라는 글자에도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한자가 섞인 신문을 읽을 줄 알았지만 처음부터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면서 배우지 못한 게 후회된다. 사실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철학자가 돼야 할 것이다. ‘물이 인간의 어머니’라는 뜻의 바다 해(海)라는 글자에서 유추해보건대, 동양에서는 인간이 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서양의 철학자들보다 수천 년 더 일찍 깨달았을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의 생각은 비슷하니 누가 먼저니 하는 논쟁을 하게 되면 서양에서도 수천 년 전의 사람이 나올 법도 하니 이런 논쟁은 안 하는 게 좋다. 차라리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누가 만들었나에 대해 논쟁하는 게 낫다. 왜냐면 금방 답이 나오니까.

소금 산을 올라온 일행에게 소금 맛을 보라고 했다. 소금 산을 이루는 소금은 우리가 먹는 소금과는 조금 달랐다. 모두들 인상을 찌푸리면서 뱉어내는 시늉을 했다. 거친 맛이었고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정제된 소금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에 맞을 리 없다. 소금 산의 소금은 우리가 경험한 소금이 아니라 짠맛이 나는 바위라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끝내 산을 이룬 소금의 끈질긴 생명력과 위대한 성취에 찬사를 보낸다.

이전에는 이 지역에서 소금을 채취해 정제한 뒤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곳에도 많은 염전들이 생겨나고 많은 양의 소금이 생산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전반적으로 소금 값은 내려가니 자연히 수익성이 약화됐고 결국에는 소금생산이나 판매를 중단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소금생산을 중단한 대신에 소금 산을 관광지로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리는 것 같다.

다음 날도 바닷가를 들른 뒤, 소금을 생산하는 다른 염전으로 향했다. 오늘은 다른 소금을 경험하기 위해 대만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염전으로 갔다. 우리가 방문한 염전은 ‘징자이쟈오’ 염전으로서 300년 동안 소금을 생산해온 곳이다. 염전 사이로 도보길이 잘 정비돼있었고 염전 곳곳에는 작은 봉우리가 솟구쳐있는 무르팍 정도 높이의 미니 소금 산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소풍 나온 가족들이 염전에 맨발로 들어가서 갈퀴로 소금을 모아내는 일을 하면서 즐거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염전 일대를 둘러보고서 염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금을 만들어내는 곳 저편에서 해가 지면서 붉은 색과 파란 색이 어우러진 색의 조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바닷가의 수평선 아래로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노을과는 색깔이 달랐다. 석양도 장소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일행 중 카메라맨들은 모두 석양을 렌즈에 담느라 정신없었다.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중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양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해가 거의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오기 전, 우리는 서둘러 타이난으로 되돌아왔다.

염전의 모습 (c)조명환
염전의 모습 (c)조명환

바닷물을 햇빛에 말리면 소금이라는 결정체가 나온다.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서 수확시기도 많은 차이가 난다. 더운 지역에서는 바닷물이 빨리 증발하니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수확하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서서히 증발하니 생산기간이 많이 길어진다.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가 방문한 개인이 소유한 염전에서는 보통 석 달이 걸린다고 했다. 1년에 두 번 수확하는 게 보통이지만 더운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증발이 빠르기 때문에 몇 번의 수확기를 거친다. 대만도 네 번의 수확기를 가진다.

소금을 관찰하면서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소금을 생산하는 사람을 기술자나 엔지니어라 하지 않고 ‘농부’라고 하며 이들이 생산하여 거두는 것을 ‘수확’이라는 말을 쓴다. 흥미롭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생산방식도 다르다. 일본에서는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소금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바닷물을 떠와서 바다모래를 담은 큰 바구니에 물을 통과시켜 찌꺼기를 제거한 후 가마솥에 물을 끓이는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은 실내에서 이뤄지지만 공장은 바닷가에 위치한다. 추운 유럽지역에서는 천일염보다는 소금광산에서 소금을 캐내어 소비해왔다.

소금을 '수확'하는 '농부'가 되어본다. (c)조명환
소금을 '수확'하는 '농부'가 되어본다. (c)조명환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인 소금, 지금은 어디서나 살 수 있고 가격도 싸지만 과거에는 구하기 힘들었고 비싸고 귀한 물품이었다. ‘급여’라는 의미인 영어의 “salary”의 어원은 라틴어 “salarium”이며 “sal”은 소금을 의미한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병사들의 월급을 소금과 함께 지불하기도 했다. 당시 로마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예수도 유명한 산상수훈에서 소금을 언급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출처=//hanjin0207.tistory.com/573 [목회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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