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근 개인전 ‘차가운 꿈 Bleak Island’ - 대안공간 루프
박형근 개인전 ‘차가운 꿈 Bleak Island’ - 대안공간 루프
  • 전수산나 기자
  • 승인 2021.08.3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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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근 개인전 전시 포스터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박형근 개인전 전시 포스터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더프리뷰=서울] 전수산나 기자 = 대안공간 루프는 8월 26일(목)-9월 26일(일) <박형근 개인전: 차가운 꿈 Bleak Island>을 마련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추석연휴 휴관). 관람료 무료.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형근은 2005년부터 오름, 바다, 계곡, 동굴을 다시 찾아 그림으로 담았다. 이후 17 년 동안 제주의 표면을 대형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제주의 표면이 100여 년 간 근대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형근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작품들은 거기서 나왔다.

<다랑쉬>는 2008년 작품으로 1948년 4.3 사건 당시 굴속에 숨어있던 마을사람 11명이 나오지 않자 그 입구에 불을 피워 질식사시켰던 집단학살의 현장을 담았다. 다랑쉬 마을은 전체가 사라졌고 1992년이 돼서야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출봉>은 일제 강점기에 만든 진지동굴을 촬영한 사진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밖 새하얀 세상은 미지의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역사는 복잡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제주의 전 지역을 요새화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의 제주는 일본군 6만 명이 주둔하며 미군과의 결전을 대비하던 전략적 기지로, 작가가 소싯적 친구들과 놀던 해안동굴은 자연동굴이 아닌 일본군에 의한 진지동굴이었다.

박형근 '일출봉' 사진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박형근 '일출봉'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도두>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를 기록한 작업이다. 푸른색과 짙은 초록색, 회색의 바다와 하늘은 경계 없이 끝없는 안개에 뒤덮여 있다. 박형근은 제주의 바다는 ‘감시의 바다’라 말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제주의 근대사와 어두운 바다가 제주를 연결해 낭만적인 제주 풍경은 허구라고 그는 말한다.

<새별오름>은 매년 3월 행해지는 제주 들불축제를 대형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이다. 과거 제주에서는 말 같은 가축의 방목을 위해 병해충을 방제할 목적으로 정월대보름 즈음 오름에 들불 놓기를 했다.

박형근 '새별오름' 사진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박형근 '새별오름'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작가는 <The Second Paradise> 연작을 진행하면서 관광지화해가는 제주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이번 전시 <차가운 꿈>은 2005년부터 새롭게 제주를 촬영한 연작이다. 작가는 제주의 풍경에 담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를 하나의 포착된 이미지로서 탐구한다.

작가노트

한대 남방한계선과 열대 북방한계선이 교차하는 지리, 생태학적 특이점에 위치한 이 섬은 본래 이어도와 같은 피안의 세계를 꿈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곳을 장악한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를 비롯하여 섬 전역에 기이한 시설과 구멍들을 만들더니, 어느새 섬 전체가 낯선 구조물과 장치에 잠식 당해버렸다. 섬은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제국주의 전초기지, 현대사 비극의 무대, 관광산업과 개발의 논리 앞에 놓였다.

<차가운 꿈>은 제주도에 대한 관찰과 기록의 결과물이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원시성에 가려진 제주도의 이면, 그늘, 지하로 진입하려는 사진작업이다. 그간 온라인과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이상적인 이미지로 인해 오인하기 쉽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군사적, 지정학적 운명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근현대의 과학, 실험, 조작이 자행된 공간으로서 특정 모델이 구체적인 양태로 현실화한 지대이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산, 낮게 펼쳐진 오름군, 용암 위에 생겨난 곶자왈과 바다도 천혜의 숭고미를 연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차가운 꿈>에 등장하는 사진의 대상들은 투사를 거부하는 것들,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 것, 위장과 은폐에 익숙하게 발전, 진화해 온 것들이며 자연지형을 철저히 이용하는 한편 필요 여하에 따라 가차없이 폐기 가능한 것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질적인 사물들 간의 조화와 융합을 가장하고 자연과 인공 간의 연결과 관계를 촉진시키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 만들어졌으며, 우리의 감각은 여전히 쉽게 교란, 통제당한다.

하여 <차가운 꿈>은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랜드스케이프이다. 차가운 기계가 남긴 각진 흔적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하며, 관찰자와 일상의 감각마저 지배, 제어해 나간다. 마치 이미 결정된 방위와 좌표 위에 놓인 카메라처럼 나의 시점마저도 제한한다. 무형의 견고한 틀 너머를 바라보는 일은 고고학적 탐사의 태도와 공상 과학적인 상상으로만 가능할 지 모른다. <차가운 꿈>은 근대화 이후에 작동하기 시작한 이데올로기, 자본, 욕망의 기제들을 가시적인 형태로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허상의 실재화를 기획, 실현시켜 나가는 유토피아적 이상의 실행 공간인 제주 전역에 대한 사진기록이며 탐사작업이다. 또한 랜드스케이프의 구축과 변형 그리고 오작동이 남긴 상처와 흔적을 목도하는 동시에 현실 속 가상성의 적용이 가속화하는 지대를 탐색해 나가는 프로젝트이다.

박형근 '다랑쉬'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박형근 '다랑쉬'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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