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가 보여준 가능성
[공연리뷰]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가 보여준 가능성
  • 이민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1.08.30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과제
시니어 성악도의 열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어르신 성악도의 열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이민희 음악평론가 = 나이가 지긋한 성악가가 <고향생각>을 부르며 실향의 아픔을 이야기하면, 그의 어린 시절이 간략한 연극으로 뒤따르고 이어 젊은 어머니가 등장해 <시간에 기대어>를 열창한다. 2021년 8월 14-1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진행된 대학가곡축제의 한 장면으로, 가곡이 스토리와 상황에 맞추어 노래되는 모습이다.

예술의전당은 성악과 재학생으로 이뤄진 지원자들에게 150선의 가곡 목록을 제공했고, 학생들은 여기에서 3-4곡 가량을 선별해 연기와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15분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일반적인 가곡 콘서트와는 다른, 연극적인 요소와 캐릭터가 존재하는 세미 음악극이 탄생했다. 무대 뒤편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각 팀이 설정한 배경 등을 최소한의 이미지로 구현했고, 의자, 테이블, 전화기 등 자잘한 소품이 팀에 맞게 구비되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학교의 20학번 학생에서부터 서울사이버대학의 어르신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성악도 총 27팀이 참가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대학가곡축제는 과거에 큰 사랑을 받았던 한국가곡의 부활을 꾀하는 동시에 성악과 대학생에게 양질의 무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과거 세대는 애창가곡을 중심에 둔 가창(歌唱)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최근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대학의 성악과 교과과정 안에도 한국가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업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 안에서 대학가곡축제에 참여한 학생과 관객은 ‘한국가곡’에 대한 독특한 소회와 감정에 마주할 수 있었다.

변화한 가곡, 변화한 노래하기 방식

일반적으로 ‘한국가곡’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음악은 피아노로 반주되며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긴 호흡과 성량으로 내지르는 <선구자>와 같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가곡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피아노와 성악선율이 이중주(duo)를 이루며 정해진 음정과 내성(內聲)을 꼭 지켜 연주했다면, 최근에는 선율은 유지하되 다양한 반주와 편곡으로 관객을 만나는 추세다. 특히 전통적인 성악발성을 이용해 객석을 목소리로 가득 메우던 과거와 달리,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가사를 분명히 발음한다.

일각에서 ‘아트팝’이라 부르는 이런 유형의 가곡은 대중음악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한 매체 환경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번 가곡축제에서는 1948년 작곡된 <고풍의상>(윤이상 곡) 등도 들을 수 있었지만, 2015년 작곡되어 팬텀싱어 등을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김효근 곡) 등과 유사한 가곡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핀마이크 착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핀마이크 착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공연에 참가한 성악가들이 모두 핀마이크를 차고 무대에 올랐다는 점도 언급할만하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어색해 보이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날 무대가 실시간 생중계되었고 연기 부분에 대사가 많았기에 마이크 증폭은 필수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유튜브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 본인의 노래를 자유자재로 편집해서 올리는 요즘 성악도에게 마이크는 더 이상 낯선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연 중에 몇몇 학생은 마이크 때문에 본인의 돋보이는 음색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고, 고정된 마이크 볼륨이 너무 커서 감상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인 아쉬움은 섬세한 음향 조절 등을 통해 꼭 보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학가곡축제가 보여준 새로움들, 즉 마이크를 찬 성악도가 연기를 하며 카메라 앞에서 열창했다는 사실은 과거에 비해 너무도 달라진 가창 환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래적이었다. 적어도 이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정식 무대에 설 때에는 전통적인 무대만큼이나 이와 같은 공연 방식이 일반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다섯 팀이나 같은 노래를 불렀을까?

14일과 15일에 걸쳐 공연한 총 27팀은 각기 다른 스토리를 들려줬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5번, <시간에 기대어>가 4번, <꿈의 날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엄마야 누나야>가 각각 3번씩 선곡됐다. 특히 <엄마야 누나야>를 제외하고 세 번 이상 불린 곡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아트팝 류의 음악이다.

물론 동일한 곡이 다른 맥락에 배치되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SCU 성악앙상블의 ‘그리운 가족’ 안에서는 ‘실향민의 아픔’을 표현하지만, ‘나울’ 팀의 ‘낡은 축음기의 기억’ 안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진솔한 토로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예닐곱 팀을 묶어 2시간 길이의 음악회로 감상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런 중복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정 음악을 최초로 청취하는 순간에는 해당 음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그 이후에는 15분 전, 30분 전 다른 맥락에 배치되었던 음악의 잔상이 남아 온전한 몰입을 방해했다.

이런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이재현 예술의전당 음악담당 PD가 언급했듯 “(학생들이) 전적으로 만들어오고, 학생들이 제작한 공연에 절대 손을 대지 말고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만 풀어내자(...)”는 취지로 본 음악회가 진행됐고, 그래서 “선곡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여러 팀이 동시에 선택한 가곡을 멘토가 조율하고 교체하는 것이 음악회 전체의 기획에 맞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복은 대학가곡축제를 거친 학생들이 ‘여전히’ 한국가곡을 많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한국가곡의 부흥을 꾀했던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생들에게 150곡의 목록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사전 아카데미를 등을 통해 가곡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악보와 가사, 음원 등을 공유함으로써 모든 가곡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 해에 제공됐던 150개의 가곡 중에는 학생들이 세팅한 줄거리 진행에 보다 잘 맞는 음악이 다수 있었다. 아마도 학생들이 해당 가곡의 선율이나 가사를 알고 있었다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좀 더 많은 수의 가곡을 보다 설득력 있는 기준으로 선별하면 좋을 것이다. 이외에도 세일가곡콩쿠르 등을 통해 배출되는 새로운 창작 가곡 레퍼토리를 흡수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이런 가곡들은 최근 가곡사의 논쟁거리인 창작자의 친일행적 등과 거리가 멀며, 재기 넘치는 젊은 작곡가의 참신한 음악 작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예술의전당이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행을 그저 뒤따르는 입장에서 벗어나, 한국가곡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극? 이제 극에도 조금 더 집중하기

음악과 극의 조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음악과 극의 조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는 비록 ‘가곡’에서 시작된 기획이었지만, 참가 학생들이 ‘극(theater)’이라는 매체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를테면 이은서 (서울대 20학번) 학생은 “사실 막연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다녀와서 정통 클래식 연주가로 살아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뮤지컬, 연극, 연기 쪽으로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쪽 분야도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무대를 통해) 선택지가 다양해진 거죠”라고 이야기한다. 대학 내에도 연기 및 무대실습 수업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유명 오페라 한 장면을 팀을 짜 재연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극 자체를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대학가곡축제에서는 스스로 만든 이야기를 노래함으로써 그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했던 음악과 극의 조합을 보다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다만 이와 같은 기획이 계속되려면 팀 내의 ‘연출가’와 ‘대본가’를 명시하고 학생이 아이디어를 보다 분명히 제시하되 이를 본인이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올해도 팀 내 특정 학생이 대본 속 지문을 직접 쓰거나 주도적으로 이끈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모두 무기명으로 묻혀 버렸다. 가곡을 전면에 등장시켰지만 현장에서의 감동은 연기나 연출, 대본 등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연출과 대본에 대한 강화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성악가로서 무대에 서기 원하는 학생 뿐 아니라 무대기획이나 연출 등에 관심이 있는 더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가곡축제가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나울’ 팀의 주하민(서울대 17학번) 학생은 “성악과를 진학한 학생들 중에서 연출가를 꿈꾸는 학생이 분명히 있는데(...) 기획이나 연출을 원하는 그런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기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에게 대학가곡축제는 대학에서 미처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으며,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다양한 학생을 포용하고 함께함으로써 대학가곡축제가 매해 개최되는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준비과정의 멘토링 장면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준비과정의 멘토링 장면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