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춤은 세월을 압축한다
[공연리뷰] 춤은 세월을 압축한다
  • 정옥희 무용평론가
  • 승인 2021.08.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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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 두 편
'율' 장면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율' 장면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더프리뷰=서울] 정옥희 무용평론가 = ‘국제' 공연예술제와 가장 거리가 먼 춤이 제27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의 막을 열었다. 서울교방의 <율律>(이하 <율>)이다. 교방(敎坊)이라니. 교방은 기생학교를 뜻하고, 서울교방은 김수악-장금도-조갑녀로 이어지는 교방굿거리춤을 잇는 단체다. 대극장 무대에서 안무가의 창작물로서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자리에 권번(券番)의 춤만큼 어울리지 않는 대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교방의 동인이자 <율>의 안무가인 김지영은 이를 동시대춤으로 바라보게 했다.

<율>은 독무인 조갑녀流 민살풀이춤을 군무로 확장한 창작춤이다. 본디 즉흥적이었으되 무수한 반복을 통해 몸에 배겨지고 스승에서 제자로 전수되며 이제는 단단한 레퍼토리가 되어버린 춤에 즉흥적인 시나위, 동작의 연속성을 나열하는 연무(延舞), 그물처럼 연결되는 인다라망(因陀羅網) 등의 안무기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율>은 민살풀이춤이자 동시대춤이 되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네 명의 악사가 올라온다. 전통춤 공연에서 주로 옆이나 뒤에 가려진 이들이 관객을 등지고 앉아 무용수를 바라본다. 무대 중앙엔 크림색 한복을 입고 머리를 곱게 쪽진 열다섯 명의 무용수가 서로 다른 자세로 뭉쳐 있다. 조금씩 대형이 풀어지면서 이들은 두 줄로 늘어서서 다소곳이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바로 선다. 흐르는 장단 속에 천천히 왼손으로 치마를 치켜들고 오른손을 옆으로 들어올린다. 연습실에서 춤을 익히던 숱한 날들처럼 그렇게 무심히 함께 움직인다. 조갑녀의 춤을 복제한 듯 통일되었던 군무에서 조금씩 대형이 변하고 동작이 변한다. 각자 자신의 몸에 밴 춤을 풀어내고 때로는 작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소용돌이처럼 말리면서 흐름을 형성한다. 손끝까지 똑같이 춤추다가도 즉흥적인 동작으로 변주하며 흩어진다. 이들은 하나이자 여럿인 존재이다.

단독자의 홀춤을 증폭시킨 <율>은 세월을 압축했다. 누군가의 춤을 무수히 겹쳐낸 그림이기도 하고, 비슷한 운명을 지닌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구슬프고도 무심하게, 때론 실긋 미소를 머금은 채 움직였다. 무용수들은 많은 순간 관객을 등지고 돌아서서 머물렀는데, 그들의 뒷모습은 각각의 몸이 품은 그늘을 보여줬다.

<율>에서 애틋한 점은 ‘동시대춤’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고, 그들 중 많은 이는 평생 전통 춤사위에 매진해 온 이들이다. 안무가는 이들을 불편한 영역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그들의 춤과 삶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그 결과 한 명 한 명이 지닌 역사가 세련된 풍경으로 어우러졌다. 

율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율'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개막식의 또 다른 작품인 시나브로가슴에의 <ZERO>(안무: 권혁) 역시 시간을 다룬다. 막이 열리면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상체를 드러낸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 있다. “4, 3, 2, 1”의 짧은 카운트다운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한다. 체중을 한발씩 번갈아 지탱하여 팔을 교차로 흔드는 동작이다. 일이 분 정도 지났을 때 관객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아, 이 동작을 끝까지 하겠구나.’ 

시나브로가슴에 'ZERO'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시나브로가슴에 'ZERO' (사진제공=시나브로가슴에)

무용수는 한 명에서 셋으로, 셋에서 일곱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대형을 움직인다. 일렬로 늘어섰다, V자나 삼각형을 만들었다 하며 천천히 이동한다. 관객을 등지고 머리를 숙인 채 고집스레 뛴다. 끝없는 반복은 지루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어지간한 서사에서 가차 없이 편집되었을 반복의 과정이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 된다. 지루함을 이겨낸 관객들은 무수한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견갑골 사이로 흐르는 땀, 보다 거칠어진 숨결, 불끈거리는 어깨들이 만들어낸 양감 말이다.

반복은 고행적이고, 구도적이며, 최면적이고, 명상적이다. 얼굴이 지워진 이들은 자아와 상념을 지워버린 듯 고통과 고양감에 몰두해 있다. 몸들은 맥박처럼, 파도처럼, 호흡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고 우리는 이를 관조한다. 숭고하다.

드디어 움직임이 바뀐다. 무용수들이 갑작스레 멈추어 섰다가 팔을 휘젓고 바닥에 누웠다가 다음 순간 다시 제자리뛰기를 반복한다. 반복적인 기계 음향 속에서 어떻게 신호를 맞추었는지 모르겠다. 무수한 반복 속에서 한 순간에 망설임 없이 다음 동작을 이어가는 모습이 마치 정교하게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구경하듯 경이롭다. 관객들은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한 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에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기에, 우린 반복 속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윽고 한 줄로 늘어선 무용수들이 제자리뛰기를 하다가 거대한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ZERO' (사진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
'ZERO' (사진제공=시나브로가슴에)

무용 작품에서 지구력이 부각되기란 쉽지 않지만, <ZERO>는 끝없이 나아가는 지구력을 통해 시간을 확장하고 세월을 압축한다. 육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과정, 동일한 움직임을 무수히 겹치고 겹칠 때 새로운 감각과 사유가 발생한다. 살아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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