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나는 것만이 아름다워” -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소리 나는 것만이 아름다워” -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1.09.29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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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9월 25일(토)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일곱 번 째 ‘소소살롱’이 열렸다. 이번에는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가 호스트로 섰는데, 무대 뒤의 스태프로는 첫 출연자였다.

목소(본명 우정인)는 자신의 예명에 대해 설명하며 운을 뗐다. ‘목소’는 프랑스어로 ‘조각(morceau, 모르소)’인 동시에 영어 ‘romantic’의 철자 순서를 바꾸고 ‘n’을 ‘u’로 뒤집어 조합한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목소 자신의 ‘romantic’은 삶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운드 디자이너가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래퍼로 활동하던 시기를 소개했다. 친구와 함께 ‘폴 어쿠스틱’이라는 이름으로 5개국 투어가 아닌 ‘서울 5개구’ 투어를 했다고. 마포 민중의 집을 시작으로 철거 전의 종로 옥인아파트, 서대문구의 체화당 등. 그는 투어 당시 러닝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자신들을 따라다니며 CD를 구입해주던 장면을 훈훈하게 상기했다.

그는 사춘기가 열두 살 즈음 비교적 일찍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비유를 통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았고, 그런 시간들이 자신을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신의 시는 처음부터 편지였던 것 같다고. 시의 형식이 서간체가 아니어도,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말하고 있어도 특정한 누군가, 혹은 불특정한 다수에게 보내는 자신의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는 레코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듀스(Deux)의 3집 앨범이 멋있어보여 구매했고, 그것이 랩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시는 부끄러운데 비트라는 옷을 입으면 괜찮아졌다”며 랩이 자신에게 훌륭한 외투가 되어줬다고 고백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킥과 스네어 사이의 틈을 있음과 없음으로 인식해요. 지금 객석도 채워진 자리가 있고 빈자리가 있는데, 채워진 자리는 있음, 빈자리는 없음, 이렇게 리듬으로 읽혀요.”

함께 래퍼 활동을 했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부터는 랩을 하지 못했다. 너무 절망적이었던 당시 집에 누워만 있다 보니 냉장고 소리나 바깥에서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2011년 즈음 사운드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스스로는 2014년부터 제대로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 작업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일이 자신의 직업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그는 대학 재학 당시 연출가 구자혜와 함께 ‘니체와 현대철학’이라는 강의를 수강했는데, 강의 시간이 오전 9시 30분으로 너무 일러서 자주 함께 지각을 했다고 밝혔다. 둘은 ‘지각 메이트’가 되어 가까워졌고, ‘친구 따라 대학로 간’ 목소는 자연스레 연극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소리작업과 연극 소리작업의 차이점으로 선택의 여부를 꼽았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재현에 기반을 두기에 특정한 장면 안에 들어가는 모든 소리를 넣는다. 촬영 현장에 소리가 없더라도 따로 추가해 장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반면 연극은 극장에서 연출이 가능한 요소로 공간과 시간성을 표현하고, 많은 소리들 중 무엇을 들려줄지 선택한다.

“청각은 시각에 비해 해석되는 정도가 낮은 편이에요. 그래서 정서와 감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연출가님들한테 귀찮게 물어보면서. (웃음) 똑같은 소리여도 높낮이나 크기에 차이를 두는 등의 노력을 해요.”

예시로 그는 자신이 작업했던 연극 <좋아하고 있어>를 들었다. 그는 <좋아하고 있어>를 “두 여자 고등학생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담은 아주 바람직한 청소년극”이라고 소개했다. 연극이 시작될 때는 일상적인 소리로서 물소리를 표현하지만, 작중 긴장감이 고조된 장면에서는 같은 물소리에 입체감을 입혀 분위기를 달리하는 식이다.

끊임없이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는 그이지만 난감한 상황도 물론 있다. ‘사람이 태어나다 만 소리’를 작업해야 했을 때 연출가에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목소리로 예를 들어 달라”고 했다고 했다. “예시를 들어줬다면 그것을 녹음해서 쓰려고 했는데 못 내시더라”라고 덧붙여 객석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갖는 직업병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행을 가면 습관처럼 녹음을 한다고 밝혔다. 여행지에서 녹음한 소리를 작업에 사용하면 그게 여행하며 녹음한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 순간을 다시 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윤리적인 태도를 중시한다고 했다. 그는 2018년 청소년예술가탐색전 <듣는 시간, 들리는 공간>을 진행하며 “안전한 커뮤니티를 경험해 본 사람은 바깥에서도 안전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참여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참여자 중 누구도 무시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그들의 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타인을 성실하게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가의 취향과 미감을 관객과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춘 이번 프로그램답게 그는 자신이 마음에 품는 문장들을 공유했다. 커트 보니것의 ‘독특한 여행 제의는 신으로부터의 댄싱 레슨입니다.’라는 문장은 목소가 첫눈에 반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춤이 서툴기에 상대의 발을 밟을 수도,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예의 바르고 우아하게 춤을 연습하는 태도로 살아가고 싶어요.”

이외에도 질 들뢰즈의 문장을 공유하고 니체의 문장을 배경 소리와 함께 낭독하기도 했다. 기형도 시인의 “소리 나는 것만이 아름다울 테지. / 소리만이 새로운 것이니까 쉽게 죽으니까. / 소리만이 변화를 신고 다니니까.”라는 구절을 소개하며 “변화 속에 변주되어 돌아보고, 삶 자체의 아름다움과 들리지 않는 소리에 집중하며 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공연을 볼 때 소리에 좀 더 집중해주셨으면 하는 직업적 바람이 있다”고 고백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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