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객석의 합창으로 완성된 존 노의 리사이틀
[공연리뷰] 객석의 합창으로 완성된 존 노의 리사이틀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30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테너 존 노 리사이틀
테너 존 노 (c)Sangwook Lee(제공=크레디아)
테너 존 노 (c)Sangwook Lee(제공=크레디아)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월드뮤직, EDM, 국악과 팝송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방송된 ‘팬텀싱어 3’에서 가장 파격적인 음악으로 주목받았던 테너 존 노의 리사이틀이 지난 9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방송에서 보여준 많은 실험적인 시도를 뒤로 하고, 피바디 음대와 줄리아드 석사, 예일 오페라단이라는 정통 성악가 코스를 밟아온 테너 존 노.

아무래도 첫 독창회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부터 시작해서 오페라 <마술피리> <사랑의 묘약> <카르멘>의 아리아들, 슈베르트와 토스티와 R. 슈트라우스의 가곡들, 그리고 아트팝으로 불리는 신귀복과 김효근의 가곡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솔직히 풀 오케스트라는 무리라는 느낌이었다. 청아한 미성을 보여주려면 피아노 한 대로 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별 출연한 김주택이 오케스트라 음량을 시원하게 뚫고 부르다가, 존 노와 듀엣에서 갑자기 볼륨을 확 줄이는 것을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와 벨코레의 이중창이 참 재미있었다. 허풍스러운 마초 벨코레와 아디나를 위해 큰 결심을 하는 네모리노가 서로 딴 마음을 품고 노래하는 이중창의 묘미를 두 사람이 매우 잘 살렸다. 무대에서 뿐 아니라 방송으로도 김주택과 존 노의 이미지가 이 캐릭터들과 비슷했기 때문인지, 둘의 노래에 유쾌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존 노는 일찍이 네모리노 캐릭터에 애착이 있다고 밝혀왔다. 순박하고 어수룩한 네모리노처럼 본인도 바보같은 구석이 있다면서. 그래서인지 정말 순박하고 사랑스러운 네모리노의 노래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노래 뿐 아니라 표정, 손짓 하나하나로 네모리노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쩌면 존 노의 정체성이 그와 닮았을 지도 모른다. 음악 밖에 모르고, 겸손하고, 그래서 무모한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 감동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클래식의 길을 걷다가 한국 무대에 서기 위해 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 대중의 인기를 얻고 그에 힘입어 클래식 무대에 서게 된 존 노에게 첫 리사이틀 무대는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객석에 감동을 표현했다.

비제의 <카르멘> '꽃노래'는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꽃노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존 노가 워낙 맑고 반짝이는 음색이라 그런지, 돈 호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절박한 군인이라기보다 여린 마음의 소년병으로 보였다. 네모리노가 입대했다면 저렇게 순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존 노만의 해석이리라 여겨졌다.

테너 존 노 (c)Sangwook Lee(제공=크레디아)

기대했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테너의 미성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토스티의 가곡이나 R. 슈트라우스의 가곡들도 진지했다.

앙코르가 시작되자 독특한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존 노의 팬클럽에서 미리 준비한 핑거라이트가 객석에서 켜졌다. 존 노가 <클로리스에게>를 부를 때 객석에는 불빛의 물결이 일렁였다.

앙코르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부를 때, 감정에 북받친 존 노가 노래를 잇지 못하자 객석에서 나직이 합창이 울려 퍼졌다. 어느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무대 위의 존 노는 얼마나 감동했을지...... 존 노의 리사이틀은 청중이 완성해주고 있었다.

타고난 성격이겠지만 나는 존 노가 무대에서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 너무 겸손하고 작은 일에도 눈물짓는 모습이 감동을 주지만, 그래도 예술가는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이 매력적인 것 같다. 예술가 존 노의 성악가로서의 행보를 응원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