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학의 무용가, 학춤의 안무가 정은혜
[인터뷰] 학의 무용가, 학춤의 안무가 정은혜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1.10.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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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대전] 김혜라 춤비평가 = 26년째 대전지역에서 교육자, 안무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은혜민족무용단 정은혜 감독의 신작 <날개, 학>(아르코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 선정작) 관람 후 인터뷰를 가졌다. 작품 제작과정부터 작품에 담긴 의미까지 나누며 자연스럽게 정 감독만의 춤 세계관도 짚어 볼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시작한 춤과 삶의 여정 속에서 겪은 정은혜 감독만의 창작적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는 비단 한 개인의 고민만이 아니라 한국무용 창작자들 모두가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한국춤 창작은 뿌리를 지키며 새로운 것을 찾는 어려운 작업

김혜라 -- 정은혜 감독만의 한국춤 창작 원리나 신조가 궁금하다.

정은혜 - 한국무용은 현대무용처럼 새로운 것만 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뿌리를 가진 춤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켜갈 건 지켜야 한다. 한국춤을 창작하는 사람은 참 그 경계가 어렵다. 현대적인 것을 하면 국적도 근본도 없는 짓을 한다고 하고, 너무 전통적인 것을 하면 아직도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등 민속무용으로 치며 예술로도 안 본다. 저처럼 다섯 살 때부터 한국 전통춤을 뼛속 깊게 춤춘 사람들은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다. 이미 피와 살이 되어 내 세포가 된 전통춤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내 창작의 모토는 ’지킬 건 지켜 가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세계무대로 나가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설화와 내 춤 뿌리의 교집합인 ‘학춤’을 연구하다

학춤 (사진제공=정은혜)
학춤 (사진제공=정은혜)

김혜라 -- 정은혜 감독 하면 떠오르는 춤이 <학춤>과 <대전십무>이다. 이 두 작품은 대전지역에서 어느 정도 브랜드화되었다. 대전지역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이야기해 보자.

대전십무 (사진제공=정은혜)
대전십무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 대전에는 1995년 충남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왔다. 낯선 도시,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이 여건 속에서 과연 “내가 춤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춤을 추어야 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일상이 우울하고 외롭고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역 공부를 시작했다. 2년여 공부를 하던 중에 주역 선생님이신 권영원 대전시사 편찬위원님이 대전의 토박이 한학자로서 대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대전의 역사, 유래, 문화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국립대 교수이니 대전을 위한 춤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그래서 지역에 뿌리를 둔 소재를 하나씩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 첫 결실이 <유성의 혼불>(2001)로 유성온천 설화를 바탕으로 안무를 했다. 백제시대부터 전해진 이야기로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사방 좋은 곳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때마침 학이 목욕하고 날아간 곳을 가보니 그곳에 뜨거운 물이 있어 아들을 그곳에서 낫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유성에서는 학이 신물, 귀물로 여겨졌다. 저는 원래 김천흥 선생님께 학춤을 전수받았기에 지역 설화와 잘 접목시킬 수 있었다.

유성의 혼불, 2001 (사진제공=정은혜)
유성의 혼불, 2001. (사진제공=정은혜)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학탈은 디테일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고 춤 추기가 아주 불편한 로봇처럼 거칠고 뻣뻣한 의상과 탈이었다. 그래서 섬세한 학탈을 만들려고 다른 분들께 제작을 맡겨 봐도 기대했던 기능과 모양이 안 나와 직접 학탈 연구를 시작했다.

학탈 연구 (사진제공=정은혜)
학탈 연구 (사진제공=정은혜)

온갖 탈이란 탈은 다 뜯어보며 지금의 학탈로 발전되었다. 원래 탈 날개 부분도 대나무로 만들어져 제가 개발한 날개 깃털처럼 떨림이 살아나질 않았다. 재료를 이것저것 써보며 연구 끝에 섬세한 날갯짓이 되게 완성한 후 학춤이 업그레이드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의 별자리부터 시작해서 고사(古事)까지 학과 관련된 것은 모조리 찾았다. 책과 논문에 학과 학춤만 나오면 다 수집해 공부를 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학을 어떻게 길렀는지, 사대부가(家) 정원에서 노니는 학은 두 번째 날개깃을 잘라 날아가지 못하게 한 수법까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대부가 학과 고고하게 노닌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학의 입장에서는 학대를 받은 것이다. 이런 학에 대한 생태와 역사적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어떤 부분을 넣어 기승전결로 이끌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김천흥 선생님께 배운 학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표현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정은혜화시켜 발전한 것이다.

김혜라 -- 김천흥 선생께 학춤을 배운 경위를 듣고 싶다.

정은혜 -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스승인 김백봉 선생님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분이셨다. 당신의 제자를 다른 선생한테 배우라고 보내질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저한테 김천흥 선생한테 춤을 배우라고 권유를 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김천흥 선생님께 전화를 넣어 주셨다. 참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김천흥 선생님 밑에서 오랜 세월 수학을 했다. <학춤> <춘앵전> <무산향> <사자춤> <검무> 등 궁중정재의 모든 것을 섭렵하게 되었다. 처용무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대전에 정착해서 학춤을 더 열심히 연구, <학춤의 역사적 생성과 미>란 책까지 발간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가지고 김백봉 선생님께 갔더니 그 90세 넘으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김천흥 선생님께 보냈는데 이렇게 책도 쓰고 열매를 맺었구나”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김백봉 선생님의 안목과 배려로 제가 학춤을 공부하고 오랜 기간 학춤을 연구,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천흥(좌)과 정은혜(우) (사진제공=정은혜)
김천흥(좌)과 정은혜(우) (사진제공=정은혜)

학춤을 오래 추다 보니 이 춤이 점점 ‘자기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김천흥 선생은 뼈를 심어 주셨고 제가 살을 붙이고 혈을 돌게 하며 생명력을 얻는 학춤이 되게 했다. 사실 제 작품 <날개, 학> 에필로그에서 학이 걸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눈물이 났다. “한성준 선생님, 한영숙 선생님, 김천흥 선생님, 저 정말 잘했지요? 칭찬 받을 만하지요? 저 참 그동안 고생하며 학을 아름답게 살려 냈어요”라고 스스로 말했다. 사실 <악학궤범>에 쓰인 학춤은 학의 동작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뿐 날갯짓이 없다. 그냥 걷고 쳐다보고 훅 난다는 식으로만 적혀 있다. 그런데 한성준 선생 때에 와서 날갯짓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날개, 학 2021 (사진제공=정은혜)

대단하신 분이다. 그리고 학춤은 다른 한국춤과는 달리 발끝부터 딛는다. 김천흥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발 쓰임이 처음에는 애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영숙 선생님의 제자인 김응화 선생(현재 LA 거주)을 만나 얘기를 했는데 한영숙 선생님께서 발 디딤새를 발끝부터 딛도록 그 분도 동일하게 배웠다고 하시더라. 그러니 한성준 선생의 기법이 한영숙, 김천흥에게 전수되었고 이제 정은혜로 계승되고 있다고 본다.

정은혜 학춤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학춤 (사진제공=정은혜)

사실 학춤이 보기에는 쉬워도 근성 없이는 할 수가 없다. 다리와 상체, 고개 모두 90도로 꺾어야 학이 된다. 조금만 각도가 맞지 않으면 이티(E.T)가 되지, 학 모양이 안 나온다. 무대에서 춤추고 퇴장하면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가 천천히 허리를 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힘만 많이 들고 무용수 얼굴이 안 나오니 요즘 무용가나 학생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드러나지도 않고 마냥 엎드려서 자기와의 싸움처럼 추는 춤이니 말이다. 그래도 학생들을 독려하며 열심히 해왔더니 대전 하면 <유성학춤>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 기반이 닦여서 오늘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유성학춤 (사진제공=정은혜)
유성학춤 (사진제공=정은혜)

세계무대를 상상하며 한국 분단의 아픔을 학춤으로 승화시키고 싶다

김혜라 – 작품 <날개, 학>은 어떤 포부를 갖고 만들게 되었나.

날개, 학 (사진제공=정은혜)
날개, 학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 사실 오래전부터 해외무대를 목표로 여러 구상을 해왔다. 당연히 그동안 연구한 학을 토대로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창작의 접점을 찾고자 고민을 했다. 먼저 해외에서 한국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인식하는 한국은 전쟁, DMZ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라고 들었다. 따라서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의 최대 이슈와 한국춤의 뿌리를 접목시킨 것이다. 공연예술 중장기사업 지원금이 나와서 한국의 문화유산인 학춤을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좀 더 다듬어 11월 14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폐막작으로 올리고, 팬데믹이 사라진 후 해외 무대를 겨냥하고 있다.

김혜라 – 오랜 전략이 실현된 셈인 이 작품은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한 한국창작 무용극이다. 첫 장면인 DMZ 철조망 영상에서 배회하는 원혼들과 무대에 터를 마련한 단란한 학무리가 대비되며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교차되어 인상적이었다. 이 철원지역이 실제 학이 서식한 곳으로 알고 있다.

정은혜 - DMZ가 학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작품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 왔다. 기사를 통해 철원의 DMZ 철새평화타운에서 상처를 치료 받았던 학 한 쌍을 자연으로 방사했으나 수컷만 날아가고 암컷은 날개 부상으로 날지 못했다는 얘기를 읽었다. 5개월 후인 2020년 11월 수컷이 북한을 거쳐 암컷을 찾아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수컷의 등에 부착했던 GPS(위치추적장치)를 확인해 보니 1천km가 넘는 길이었다고 한다. 감동적이었다. 이 DMZ는 한반도 분단의 현장이자 냉전의 기록으로 아직도 전사자 유골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대전차방벽과 탄피들이 회수되고 있다. 70년 동안 원혼들이 묻혀있는 곳, 바로 그 위가 지상의 낙원, 학들의 서식지라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냉전의 현장이자 생태의 보고라는 이율배반적 실제 공간에서 전쟁의 상흔과 아픔, 그리고 희망을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

김혜라 – 학의 생태성과 상징성이 녹아든 학춤을 기반으로 분단의 문제를 환기시키려 한 주제의식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본다. 여기에 영상이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였고, 변주된 학춤은 정서변화를 극적으로 묘사하였다. 몇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수컷과 암컷이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바이올린과 첼로 이중주는 감정을 고조시켰으며, 마지막 장면인 학의 몸짓도 발레에서의 백조와는 다른 한국적인 미감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은혜 - 두 학의 교감을 라이브 연주로 춤추는 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명장면인 것 같다. 엄마 새가 새끼를 탄생시켰으나 6.25 전쟁으로 아기 학이 날개에 상처를 입었고 남자 학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시베리아로 떠나야 하지만 여자 학은 갈 수가 없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남자 학의 아픔도 제가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다.

사실 이 공연이 올라간 것이 기적이다. 단원들이 모이기도 힘들었다. 팬데믹으로 인원제한이 있어서 단원들 몇 명씩 부분적으로 모이고, 마스크를 쓰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연습을 했다.

관객과의 소통을 고민하며 해답을 찾은 작품의 탄생

김혜라 – 보통 작품을 창작할 때 관객과의 소통 측면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가? 아니면 작품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가?

정은혜 - 저는 예전부터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안하고 살았다. 사실은 처음 대전에 왔을 때 충청도 사람들의 ‘반응 없는 반응’이 이상했다. 저는 전라도 출신이고 어릴 때부터 춤추면 “잘한다” 하는 반응을 듣고 춰왔는데 여기는 반응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관객의 심리를 살피게 되었다. 그들의 관심을 끌어낼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 끝에 성공한 작품이 <미얄>(2003)이다. 이 <미얄>의 핵심은 ‘재미와 해학‘이다.

미얄, 2003. (사진제공=정은혜)
미얄, 2003. (사진제공=정은혜)

이 작품이 히트를 쳐서 국립무용단에 초청을 받았다(2005년). 첫 길놀이 혼례장면에서 함잡이들이 객석에서 무대로 뛰어 올라가니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며 신명이 터졌다. 미얄이 상여 위로 탈을 던지고 마지막 영원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길을 묘사하는 극적 마무리까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이후 여러 콩쿠르에서 미얄을 소재로 경연용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극적인 것을 잘하고 좋아한다. 나만의 예술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맥을 잡아서 작품에 반영하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을 버리지 않고 고수하는 것이다.

김혜라 – 여러 작업을 시도하며 얻어진 경험으로 대중적 소통과 전통적 가치를 구현해 내는 절충된 작품을 만드신 것 같다.

정은혜 - 제 기질이 끼가 동하면 까불까불하며 풍자적인 안무를 잘 짜는 편이다. 이런 흥과 끼를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 극적인 묘사를 할 때 다채로운 성격을 다룰 수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현대적 표현에 비중을 둔 작업(<기다림> <나홀로 아리랑> 등 다수)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기다림 (사진제공=정은혜)
기다림 (사진제공=정은혜)
대무의 고찰 (사진제공=정은혜)
대무의 고찰 (사진제공=정은혜)
나홀로 아리랑 (사진제공=정은혜)
나홀로 아리랑 (사진제공=정은혜)

컨템포러리 한국춤이란 무엇인지, 그 방향성을 잡을 시점

김혜라 – 한국춤 창작자들 대부분이 한국적인 소재로 현대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은 하지만 작품에서 발견되는 문법은 비슷비슷하다. ’컨템포러리‘가 무엇인지 무용가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을 당당하게 춤 수련 못지않게 연구하고 피력해야 한다. 정 감독이 말씀하시듯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것, 전통을 오히려 깊숙하게 연구하는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서구인이 한국창작춤을 민속춤 정도로만 여기는 무지를 일깨우는 가장 강력한 컨템포러리성을 획득하는 하나의 방법일 지도 모르겠다.

정은혜 - 무용에 구체적인 스토리가 들어가면 촌스럽다고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와 통하고 자기색이 드러나면 좋다고 본다. 서양식 현대무용을 접목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요즈음은 추상적으로나 현대적인 것으로 춤을 짜는 것이 트렌드이지만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용극적 요소를 포용한 춤을 계속 할 거다. 혹자는 촌스럽고 올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김혜라 – 그렇다. 내용이 현대적인 정서로도 공감되며, 춤으로만 느낄 수 있는 미적 요소와 세련된 공연물로서 소통 가능하냐가 문제이다. 아이러니는 성공적인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춤에 내재한 역사와 철학을 무용가 스스로 증명할 만큼 깊숙하게 알고 있는가? 또한 외국인과 우리를 설득할 만한 요즘의 공연 소통방식 언어에 대해 무용가들이 얼마나 연구하고 있나? 단순히 그간 추어온(습득한) 전통춤에 현대무용 동작과 적당한 연출 협업으로 결합하는 1차적인 방법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요즘 넷플렉스에서 방영한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이유를 보자.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의 놀이문화(달고나, 구슬치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등)가 외국인의 눈에는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그러나 단지 아시아 또는 한국 놀이문화의 낯선 호기심을 넘어 전체 드라마 주제가 세계인의 관심사인 ’돈‘을 둘러싼 인간본성의 욕망과 실체, 이타적인 인간애의 승리(이정재)가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젊은이들의 놀이문화인 게임의 요소가 반영된 구도의 전개와 긴장감, 그리고 감각적인 영상기법의 합이 찰떡으로 맞아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발레, 현대오페라, 뮤지컬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클래식 원본 뼈대는 유지하되 우리의 문제가 반영된 내용과 감성을 자극하는 형식으로 해석해낸 성공적인 사례가 무궁무진하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한국창작춤 안무가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날개, 학 (사진제공=정은혜)

인터뷰 내내 자신의 춤 세계를 확신 있게 설파하는 정은혜 감독의 모습에서 숙련된 예술가의 관록과 순수한 소녀 같은 밝음이 느껴졌다. 40년간 전통 학춤을 연구하고 정은혜화시킨 집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일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통일의 염원을 학춤의 현대적 변주로 풀어낸 작품 <날개, 학>은 지난 9월 26일 대전연정국악원 대극장 초연 이후 보완작업을 거쳐 서울세계무용축제(SIDdance, 시댄스) 폐막공연(11월 1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으로 올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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