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지속과 심화의 춤기획전 ‘소고小鼓 놀음 2’
[공연리뷰] 지속과 심화의 춤기획전 ‘소고小鼓 놀음 2’
  • 더프리뷰
  • 승인 2021.10.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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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진주삼천포농악 채상소고' (c)정동주

[더프리뷰=서울] 김기화 무용평론가 = 전국의 내로라하는 소고(小鼓) 놀이꾼들이 한국문화의집 코우스(KOUS)에 모였다. 2021년 9월 16일 김영희춤연구소의 전통춤 기획시리즈 일곱 번째 마당에 한바탕 소고 놀음판이 벌어졌다. 일명 <소고小鼓 놀음 2>. 소고 놀음으로는 두 번째 벌린 판이다.

그동안 김영희춤연구소는 우리 전통춤이 갖는 면면을 문화사적으로 되짚어보는 춤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춤계에서 인식하는 무대화된 전통춤이라는 고정된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전통춤 기획시리즈는 의례, 놀이, 무예 등 다양한 전통문화로 전승돼온 춤들의 각기 다른 일면을 한 무대에 올려왔다. 특정되거나 한정된 춤의 인식을 문화적 사유로 회귀하여 바라보자는 기획 의지는 무척 의미 있는 행보였다.

특히 기획전에서 지향해온 지속과 심화의 기획 전략은 성과의 측면에서 가히 성공적이었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검무를 주제로 한 네 차례의 <검무전(劍舞展)> 시리즈 공연과 세 차례의 검무 심포지엄은 검무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종횡으로 교차하여 바라본 기획이었다. 검무 분야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집화하고 공연함으로써 문화 콘텐츠로서 검무의 무궁한 가능성을 인식하게 하는 사고전환의 장이었다.

지난해 시작된 <소고 놀음>도 전국의 소고 놀음을 놀이의 방식과 유형별로 집화하여 공연함으로써 춤계에 소고춤 콘텐츠 개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기대된다. 이번 공연은 농악놀이, 경서도의 선소리, 기방춤, 탈놀이, 신전통춤으로 연행되는 소고 놀음을 집화하여 공연함으로써 예술 표현의 다양성을 한 자리에서 향유하는 즐거움을 제공하였다.

첫 번째 소고놀음 <고깔소고 五色>은 중견 춤꾼인 윤명화, 김경진, 권명주, 박혜진, 황규선이 연행에 참여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전북무형문화재 고창농악의 소고놀이를 전승해온 김영희의 재구성 안무작품이다. 농악에서 연행되는 즉흥성이 강한 소고놀이에 춤사위를 정리하고 일련의 순서와 구성미(構成美)를 부가(附加)하여 무대 춤으로 양식화(樣式化)하였다. <고깔소고 五色>은 무대를 위한 정형성을 추구하면서도 사이사이 마당놀이의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허튼춤을 안배하는 구조로 연행자의 개성을 살리고 놀이의 흥과 멋을 확장하고 있었다.

'고깔소고 五色' (c)정동주

두 번째 작품 <통영오광대 문둥북춤>은 통영오광대놀이 전승교육사인 이강용이 연행하였다. 영오광대는 경남지역의 다른 놀이보다 동작의 연결이 유연하고 춤사위가 다채롭다. 따라서 춤의 완급과 강약이 명확한 구성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강용은 문둥이의 애환을 구부러진 손가락과 왜곡된 몸짓으로 녹여 문둥북을 타주하면서 질곡 있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며 흥을 올려 억눌린 신체의 경계를 넘어선 신명으로 문둥이가 아닌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표출해내고 있다. 농악의 소고놀이가 가락을 쌓아 신명을 불러일으킨다면 통영오광대의 문둥북춤과 같은 탈놀이에서는 소고놀이가 배역(配役)의 내적 갈등을 전환하는 매개가 되어 정서를 환기하고는 한다.

이강용, '통영오광대 문둥북춤' (c)정동주

특별초대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 구재연(고창농악보존회 회장)의 <고창농악 설장구>는 판을 한층 달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하였다. 이 설장구는 영무장농악의 장구 명인 김만식에서 황규언으로 이어진 사사 계보로 전승되었으며, 판굿 구정놀이의 백미이다. 구재연의 설장구놀이는 힘의 강약이 명확하여 가락의 기교가 탄탄하며 그 소리가 웅장하여 무반주(無伴奏)에 놀이를 이끌어감에도 조금의 막힘도 없었다. 탄탄한 가락과 어우러진 보법의 흐름도 대지의 기운을 다스리듯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어 윗놀음과 아랫놀음에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구재연, '고창농악 설장구' (c)정동주

네 번째 <권명화류 소고춤>은 추현주(대구 살풀이 이수자)가 연행하였다. 권명화류 소고춤은 대구무형문화재 살풀이 보유자 권명화의 안무작품이다. 권명화의 춤은 절제된 발디딤과 대구 특유의 질박한 몸짓이 어우러져 역동적인 흐름을 보인다. 추현주는 초반부 절제된 정적(靜的) 흐름을 단아하게 이끌고 가다가 후반부 점차 고조되며 강한 엇박과 유연한 가락을 맞물려 장단을 맺었다. 추현주는 이 소고춤의 고유한 공간 특성을 명확하게 해석하며 상하좌우를 명확한 강유(剛柔)의 기법으로 솜씨 좋게 표현하였다.

추현주, '권명화류 소고춤' (c)정동주

<서도소리 놀량>은 소고놀이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 편성이었다. 서도소리 이수자인 김유리와 봉산탈춤보존회의 탈꾼들이 출연하여 선보인 봉산탈춤 3과장인 사당 과장의 놀량은 통절형식의 노랫가락에 소고 가락을 얹어 연행하는 선후창(先後唱) 방식의 선소리이다. 오방색의 더거리를 걸쳐 입고 탈을 벗어 머리에 얹은 거사는 소고를 두드리며, 선소리꾼의 소리에 화답한다. 이러한 조합은 소고춤의 극적인 모티브를 확장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듯하다.

김유리, '서도소리 놀량' (c)정동우
김유리, '서도소리 놀량' (c)정동주

여섯 번째 임성준(고창농악 이수자)의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성과 역동성이 일품이었다. 과거 황재기 명인의 고깔소고춤이 그러하였다. 동작의 다양성보다는 춤사위를 뿜어내는 기세에서 순간 멈출 듯한 고공의 역동적인 기세가 좌중을 사로잡았었다. 임성준의 소고춤은 바로 담백함과 역동성에서 고깔 소고춤의 멋을 잘 드러내었다. 가락 사이사이 내뿜는 흐드러진 듯 유형화된 소고의 놀림은 순간적인 멈춤으로 한층 멋을 내뿜었다.

임성준,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c)정동주

일곱 번째 무대에는 김부경(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의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이 올려졌다. 교방에서 놀던 소고놀음을 보여주려는 기획자 김영희의 의도가 읽히는 프로그램이다. 김부경은 김수악-김경란으로 이어지는 계보 특성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묵직한 무게감과 가벼운 상체 및 손목 놀림은 영남교방의 춤 매무새를 표현하기에 적절하였다. 탄탄한 춤집을 바탕으로 김부경은 후반부의 소고 놀음도 섬세함과 절제된 가락으로 여미를 살리며 예기(藝妓)의 자유로운 심상을 표현하였다.

김부경,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 (c)정동주

마지막 무대인 <진주삼천포농악 채상소고>는 이 기획공연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명인 김선옥(진주삼천포농악 예능보유자)은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채상놀음은 일품이었다. 채상의 놀림은 강(剛)에서 유(柔)를 발견하게 하고, 또한 유(柔)에서 강(剛)을 발견하게 한다. 채상의 궤적(軌跡)을 통한 강유(剛柔)의 조화는 시간의 멈춤과 흐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재예(才藝)였다. 이 흐름의 유연함을 짚어내는 소고의 타법과 가락의 절주는 순간적인 멋에 동화되게 하였다. 노장의 연행은 오랜 시간 묵은 전문 잽이의 행보와 그 노고를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무대는 현장 연주를 통해 놀이판의 흥을 더욱 달구고 즉흥적인 역동성으로 연행자와 관객의 일체감을 강화하였다. 사이사이 전통춤 이론가이자 이 공연을 기획한 김영희의 능숙한 해설로 소고놀음의 고유성과 보편성을 이해하며 관극의 재미를 더하였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편성은 공연 전반에 걸쳐 풍성한 표현력을 유지하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소고놀음에 대한 놀이꾼들의 각기 다른 미의식은 탄탄한 기량과 더불어 공연을 성공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김영희춤연구소의 이번 기획전은 풍성한 소고놀이의 표현으로 소고춤의 인식을 넓혀 전통춤의 전승과 계승에 필요한 담론을 구성하는 데 적지 않은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여 아쉬움으로 남는다. 2022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관객과의 공유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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