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삶의 축제로 온 백제문화제, 무령대왕 사마주연의 장엄축제
[축제리뷰] 삶의 축제로 온 백제문화제, 무령대왕 사마주연의 장엄축제
  • 김태균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14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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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타지아 '공산성 달 밝은 밤'
'공산성 달 밝은 밤' 공연장면
'공산성 달 밝은 밤' 공연장면

[더프리뷰=서울] 김태균 음악평론가 = 창작(創作)은 고통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인내의 과정이다. 수많은 사람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이 어우러지며 감동의 대서사시가 만들어진다. 물흐르듯 피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그런 피의 파동같은 소리가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 판은 그런 것이다.

몸이 안 좋아 열흘 이상 누워 있다가 뭔지 모를 숙제가 하나 있어, 몸을 가누고 감상평을 쓴다. 지난 10월 2일 막을 내린 백제 판타지아 <공산성 달 밝은 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이 공연의 준비과정을 보았다. 본 공연 전에 억수같은 비가 내렸지만 비 사이사이 주춤한 틈을 타서 새벽까지 전 출연진이 하나의 대오를 이탈하지 않고, 비를 벗삼아 스스로 감동하듯 백제문화제, 축제를 만들어갔다.

"태초에 암흑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던 한줄기 강물, 모진 바람 먼지를 재우고 만 생명 길러내는 어미 품 고마나루~. 무령등불 다시 켜는 날 여기는 바다 푸르른 고마나루~"

전 출연진이 비 맞으며 무령대왕을 맞이하는 '무령등불 다시 켜는 날' 장면은 그야말로 눈물의 감동이었다. 전문 배우도 아닌 구순의 할머니가 굽은 등으로 무령대왕을 맞이하러 등불을 들고 연습에 임하는 장면을 보며 이것이 바로 축제고, 바로 삶의 축제가 주는 감동이었다. 그동안 내가 본 축제판에 비해 보면 이 판은 축제의 주인으로 무령대왕이 오고, 그리고 공주인들이 노래를 하며 무령대왕을 모시고 같이 찬미하고 보내는 회향(回向)하는 향연을 만들었다. 아직도 그 감동의 물결이 생생하다. 의심스러우면 공연에 참가한 시민배우들에게 물어 볼 일이다.

박성환 글, 나실인 작곡의 2021년 백제문화제 주제공연 <웅진 판타지아-공산성 실경극 공산성 닭 밝은 밤>은 공주 고마나루의 토착부족 여전사 고마와 젊은 사마 무령대왕의 사랑과 이별, 수난과 대백제 건국을 노래한 무령대왕 건국 서사시이다. 생경하면서도 살아 있는 글을 잡아내는 나실인의 작곡을 보며 감탄했다. 탄탄한 해상력을 기반으로 소위 섬세한 표현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곡이나 음화(音話)적 표현, 예로 '토신의 소리'나 '한성이 무너진다' '검은바다'에서의 작곡기법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박성환의 아름다운 테마시를 엮은 사마 무령대왕과 고마가 듀오로 부르는사랑의 아리아 '바람 같은 사랑아 강물 같은 그대여'는 그야말로 공산성 달밤의 압권이었다. 그리고 공산성의 아름다운 정경을 피어나게 한 '벚꽃 핀 공원'이나 '피었네 피었네'를 보라. 공주 시민들이 공산성 오름길과 성벽에서 꽃을 들고 같이 춤추며 노래하는 장면은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서장에서 배를 타고 등장하는 공주인 이걸재의 공주 아리랑의 읊조림은 새로운 감동으로 왔다. 공주 소리는 물음과 되새김의 메나리조의 원형이란 사실이다. 군말이 없고 예로 시나위조의 현란한 치장보다는 안으로 되삭이며 읊는 애수의 아리랑이었다. 그리고 종장 '오시네 오시네'의 회향굿에서 전 출연진이 함께한 공주지경다지기는 지역축제의 모범이었다.

이 공연의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한국성이었다. 백제의 온화한 미소가 살아왔다. 말하듯 우리말이 글로, 그리고 그 글이 고리타분한 전통기법이 아닌 살아있는 쉬운 한국적인 선율과 리듬으로 춤으로 살아나며, 백제의 삶과 문화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모든 출연진도 이를 체감하는 듯했다.

북측의 10만명이 넘는 지역주민이 출연한 <아리랑> 공연을 본 적 있다(눈덩이처럼 공산성 축제가 커질 수 있다). 그리고 8.15 남북공연을 추진한 적도 있고, 가극 <금강>의 북측 공연 추진도 보았고, 2003년 국립극장 <겨레의 노래뎐>에 고 박흥남 선생 일행을 모셔 <부여산유화가>의 집채만한 노래판을 국악관현악 무대로 만든 적도 있었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즉 한국적인 민족가극에 대한 미완의 과제였다.

창작실경극 <공산성 달밝은 밤>은 분명 민족가극으로서 북측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정체성을 갖는 창작가극으로 전망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과감히 전망해본다. 실제 추진을 할 생각이다.

'공선상 달 밝은 밤' 전 출연진
'공선상 달 밝은 밤' 전 출연진

그리고 백제문화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 것이다 생각한다. 축제에 무령대왕이 주연으로 왔다. 그리고 해마다 백제문화제 때가 되면 백제의 공주인들은 무령왕을 모시는 등불을 만들어 공산성을 밝힐 것이다. 일본의 마쯔리를 준비하는 옛 백제의 문화 잔존을, 오늘 우리가 다시 역으로 삶의 문화, 그리고 삶의 축제로 만들 것이다. 백제문화제의 무령대왕을 주체로 세운 뜻과 의지가 그간 이벤트로 전락하고 허장성세 불놀이와 퍼레이드를 하며 쫒겨난 백제의 삶과 주인공들이 다시 살아오게 할 것이다.

대백제의 꿈과 희망은 무엇인가, 수 천 년 은인자중한 미소로 달밤에 홀로 춤추는 백제인 미마지를 생각해 본다.

김태균은 음악평론가이자 전 국립극장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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