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무의미해 보이는 삶의 끝자락에서 찾는 삶의 가치
[공연리뷰] 무의미해 보이는 삶의 끝자락에서 찾는 삶의 가치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1.10.19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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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프로젝트 창 최자인의 'Sibyl ; 시빌'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기억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지금의 내 나이 정도. 젊은 모습이다. 이제 몇 해만 더 있으면 내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진다. 생의 마지막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며 더이상 승산이 없어 보일 즈음 아빠를 살려달라는 기도조차 해 보지 못했다. 고통 가운데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더 달라고 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안무가가 있다. 프로젝트 창의 최자인이다. 병세가 깊어진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그녀는 하루하루 시간이 가고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없이 바라보던 요양원에서의 노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멍하니 매일 같은 모양으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무방비 상태로 죽어가는 그들에게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최자인 안무가의 눈에 그들은 죽지 못해 무의미한 시간을 형벌처럼 보내는 그리스 신화의 무녀 ‘시빌’로 보였다. 시빌을 사랑했던 아폴론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며 구애했다. 시빌은 손에 쥐고 있던 모래의 수만큼 수명을 길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결국 아폴론의 사랑은 받아주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의 수명을 길게 해주었지만 계속해서 늙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계속해서 늙어간 그녀는 점점 쪼그라들어 병에 담긴 채 동굴의 천장에 매달려 죽는 것을 소원했다고 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 죽음을 구하는 삶도 가치가 있을까?

최자인의 <Sibyl ; 시빌>이 9월 26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공연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모티브로 했다. 자신의 일생 중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괴로운 시기에 집필되었다는 이 장시는 죽음과 같은 삶 속에 나타나는 정신적 황폐함과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들이 표현되었는데 특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을 통해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시기에 새로운 생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죽어가는 현실을 비관하는 표현에 안무가의 예술적 영감이 태동한다.

작품은 그냥 보아도 상관없지만 시빌에 대한 것만이라도 사전 정보가 있다면 훨씬 감상하기 수월해진다. 수월하다는 것은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요인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움직임만으로 시빌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로그램 설명에 시빌에 대한 이야기부터 무용수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지만 ‘지구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종이 브로셔 제작을 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홍보에 이어 프로그램 안내도 전면 SNS로 진행하였다.

문제는 SNS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로비에서 만난 한 선생님은 평소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 프로그램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을 위한 약간의 출력물을 준비하여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에도 한 적이 있다. 홍보가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작품에 필요하다면 도입 부분에서 과감하게 소개를 하고 진행하는 것도 작품의 이해와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무대 앞 상수, 한 남자가 물구나무를 서서 힘써 버티고 있다. 시간이 흘러 늙어가는 것은 아무리 애쓰고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무음 속에 남자의 움직임이 이어지는 사이 사선 반대쪽에서 팽이처럼 생긴 스펀체어(커다란 팽이처럼 생긴 의자) 위에서 위태로운 모습으로 최자인이 서 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의자가 조금씩 돌아간다. 마치 시간의 굴레에 갇힌 형벌을 받는 듯 작품이 시작된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최자인은 스펀체어를 활용하여 삶의 고통, 삶의 형벌을 통한 삶의 가치를 표현한다. 딛고 서서 발을 내딛으며 계속해서 의자를 돌리거나 의자에서 내려와 손으로 의자를 돌리며 ‘아~~’ 하는 구음을 내기도 한다. 숨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녀의 구음에서 고통과 애환, 절규가 느껴진다.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의자를 돌며 점점 작아진다. 계속해서 늙어가며 쪼그라들어 결국 작은 유리병에 담겼다는 시빌을 연상시킨다. 남자 무용수가 들고 나온 수명을 상징하는 실타래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풀어지면서 죽지 않고 이어지는 삶을 표현한다. 돌고 도는 시간의 굴레 속에 갇힌 모습과 대조적으로 한 쪽에서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는 군무진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표현된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무대에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등장하여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상징하는 스펀체어와 수명을 상징하는 무대 천장에 얽혀있는 그물망과 무용수들이 들고 나온 기다란 줄.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공기(숨) 자루와 흰 종이꽃으로 장식된 농악고깔 등이 작품의 서사를 풀어낸다.

특히 작품의 중간중간 한국무용을 전공한 최자인의 장점들이 돋보였는데 죽음이라는 다소 어두운 소재를 표현함에 있어 한국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며 우리만의 정서로 죽음을 다루었다. 길쌈놀이처럼 긴 줄을 무용수들이 서로 엮어가며 하루하루 시간을 엮어가듯 생의 현장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흰색 꽃으로 장식된 농악 고깔을 쓰고 나온 군무를 통해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거대한 실타래를 머리 위로 들고 나오는 남성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의 끄트머리까지 한국적 요소를 들여온 장면들은 최자인 작품만이 가진 개성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이 장면들을 더 오래, 더 깊이 보고 싶었는데 안무가는 이런 요소보다는 지루한 삶의 반복과 역동적인 삶의 가치를 대조시키는 데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젊음 혹은 시간을 상징하는 젊은 무용수로 구성된 군무 비중이 높아지면서 작품의 중간중간 에너지를 높이고 볼거리를 제공하긴 하였지만 전통적 양식을 기반으로 하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와 상충되어 다소 흐름이 끊기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춤에 비해 과하게 연출된 음향은 주객이 전도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는데 비발디 <사계>의 ‘봄’이 너무 경쾌하여 ‘겨울’을 사용하긴 했어도 역시 전반적인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하지만 김신아와 최자인의 듀엣으로 보여준 장면은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다. 흰 분칠을 한 김신아가 공기로 가득 채운 커다란 흰 자루를 들고 진행된 듀엣의 움직임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숨을 쉬는 것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앞두고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정작 죽음이 닥쳐올 때는 두려움에 피하고 싶다. 둘의 움직임이 한참 이어지다 결국 숨을 상징하는 자루 속에 삼켜진다. 조명을 받은 흰 자루 안에서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그림자로 보이며 삶의 가치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지금 살아내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흰 자루 속 그림자처럼 흔적만 남을지라도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치열하게 성과를 이루어내는 삶이든 혹은 아무 의미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삶일지라도 말이다.

'Sibyl ; 시빌' (c)최인호
'Sibyl ; 시빌' (c)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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