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럽 무용교육의 거목 아트 하우헤 별세
[단독] 유럽 무용교육의 거목 아트 하우헤 별세
  • 배소연 기자
  • 승인 2021.11.01 1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DDC 교장, 파격적인 교육 시스템 도입
“진정한 예술교육이란 예술가들이 자기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
(c) 아트후헤
아트 하우헤의 생전 모습(c) www.ahk.nl

[더프리뷰=서울] 배소연 기자 = 유럽 실험무용의 산실로 불리는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의 설립자이자 교장이었던 아트 하우헤(Aat Hougée, 1945년생)가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짧은 투병 끝에 지난 10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러시아 안무가인 올가 포나(Olga Pona)와 딸 주나 하우헤(Djuna Hougée)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인 아트 하우헤는 혁신적인 자세, 용감성과 개방성, 춤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전 세계 수많은 무용예술가와 교육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암스테르담의 오플라이딩 모던댄스(Opleiding Moderne Dans, 모던댄스연구소)에서 행정 담당으로 일한 것이 무용교육과의 첫 인연이었다. 오플라이딩 모던댄스는 이후 School for New Dance Development(SNDO), Center for New Dance Development(CNDO)로 차례로 개명된다. 

하우헤는 CNDO를 아른험으로 옮기고 이름도 EDDC로 고치면서 사실상 새로이 창설하는 수준으로 크게 변화시켰다. 후헤는 2000년대 초반 EDDC를 흘리프 스바바르스도티르(Hlif Svávarsdottir)가 이끌던 아르테즈 댄스아카데미(ArtEZ Dance Academy)와 합병시키면서 은퇴했다. 현재 명칭은 아르테즈 예술대학교(ArtEZ University of Arts)이다.

아트 하우헤는 EDDC 교장으로 2002년까지 재직했으며, 특히 메리 오도넬 풀커슨(Mary O’Donnell Fulkerson, 1946-2020)같은 뛰어난 교육자들을 영입해 함께 일했다. 은퇴한 이후에는 러시아로 거주지를 옮겨 첼랴빈스크는 물론 시베리아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무용교육자 에바 카르자그(Eva Karczag)는 “아트 하우헤는 수많은 예술가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폴린 드 그루트(Pauline de Groot)를 시작으로 암스테르담의 얍 플리에(Jaap Flier), 아른험의 메리 오도넬 풀커슨, 리사 크라우스(Lisa Kraus)와 함께 일하면서, 실험적인 무용학과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비전은 한 마디로 제도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것이었다. 

예술가나 강사들에게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열정 넘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하라고 주문했다. 즉, 스튜디오에서는 기존의 커리큘럼에 학생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질적인 현재 관심사를 중심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 극장, 복도, 다양한 실내외 공간 등에서 작업이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도자와 학생들은 창조의 추진력을 길러 나갈 수 있었다. 학생들이 밤낮으로 자신의 꿈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아트 하우헤는 단순히 관리자가 아닌,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혁신적이고 의지가 강한 공연예술가, 음악가, 디자이너, 비디오 아티스트, 사상가 등을 볼 줄 아는 예리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든 포스트-저드슨의 표현양식(the post Judson idiom)으로 일하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불경기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프리랜스 예술가들에게는 강의를 맡겨  수입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아트 하우헤는 또 그가 만들어놓은 구조를 통해 즉흥의 정신을 받아들였다. EDDC 초기 시절에는 메리와 함께 영국의 다팅턴 칼리지(Dartington College)의 영감을 받았고 이후에는 미국 베닝턴 칼리지(Bennington College) 출신인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 리사 넬슨(Lisa Nelson), 리처드 케리(Richard Kerry)를 포함한 다수의 객원교수를 영입해 이런 경향을 더욱 확산시켰다. 그는 2주에서 6주 단위로 일련의 워크숍을 운영했으며, 아침에는 2시간으로 구성된 전통적 테크닉을 배우는 수업을 실시했다. 학생과 지도자 사이의 끊임없는 조율을 통해 구성된 이 커리큘럼은 어려움과 기쁨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전에 회고한 바 있다. 

이러한 관행, 호기심, 통찰력은 수많은 졸업생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아트 하우헤의 지도하에 가르치거나 공부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자신이 실현했던 놀라운 현상의 움직임을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는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트 하우헤는 지난 2002년 부인 올가 포나의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공연 당시 동반 내한, 국내 기자 및 평론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으며, 201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열린 오픈룩 페스티벌 한국특집에 소개된 공연들을 관람한 뒤에는 “서양 스타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문화를 바탕으로 만든 보기드문 수작(秀作)”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더프리뷰 2019년 8월 22일자 참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