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용계 최초 5시간 30분 공연기록 세운 금배섭
[인터뷰] 무용계 최초 5시간 30분 공연기록 세운 금배섭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1.11.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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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의 연작솔로 작품 <오>

홀로 버틴 사람들을 향한 금배섭의 올곧은 시선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판소리 완판 공연은 적잖게 있으나 무용계에서 홀로 5시간 30분(휴식 1시간 포함) 동안 공연한 사례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춤판야무의 금배섭 안무가가 솔로연작인 <오>(10월8-1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를 야심차게 선보이며 일을 낸 것이다. 단지 긴 시간 공연이란 화제성만이 아니라, 작품 <오>에서 보인 금배섭식의 신선한 연출이 그간 무용계에서 접근했던 방식과는 차별점이 있다.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섬'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섬'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무엇보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금배섭의 창작적 이정표였던 다섯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보며 그만의 안무관을 이해하는 데 용이하였다. 다섯 작품 모두 ‘홀로 버티다 사라지는 사람들’이란 주제에 천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역에서 1인 시위하는 사람을 관찰하였고, 탈북민에게 관심을 가졌고, 구조대원(세월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주여성의 고립된 삶을 바라보았고, 군중의 집단성에 희생당하는 개인까지 오랜 기간 금배섭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올곧은 시선은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큐멘터리식 현실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의 삶이 작품의 동기가 되고 농후하게 깔려 있지만 사실적 재현이 아닌 안무는 오히려 그들의 존재성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작품 <오>에서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내적 갈등과 고독감, 나만 알고 있는 슬픔의 서사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사실(현실)을 무대로 옮기며 적절하게 객관화시킨 작품이기에 <오>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공감과 사회적 환기로 귀결되며 금배섭의 작가정신을 보게 된다.

공연은 <?>(2020), <니가 사람이냐>(2017), <미친놈 널뛰기>(2014), 중간휴식 후 <섬>(2017), <포옹>(2018) 순으로 전개된다. 작품 주제에 비해 전체 분위기가 무겁거나 우울하지만은 않다. 무대에서 사용되는 사물(오브제)의 활용은 아이디어가 기발해서 재미나다. 허나 재밌지만 애처롭다. 일상적인 몸짓과 동작의 연결은 미화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아 자연스럽다. 사물과 움직임의 유의미한 관계설정, 반복적인 행위로 작품의 극적 고리를 연결해 가는 그의 퍼포먼스는 삶의 현장이자 노동의 현장이며, 그만의 ‘능동적인 사회적 실천의 춤’이다. 감정이 배제된, 무심하게 그려내는 우리 이웃의 서글픔은 그래서 더욱 자기 성장에만 집중한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한 작품이 끝나면서 남겨지는 소품들(<?>에서 그림액자, <니가 사람이냐> 천장에 걸린 모빌, <미친놈 널뛰기> 천장에 달린 보자기, <섬>의 나무막대 더미)이 천장에 전시될수록 그가 던진 메시지는 잔향으로 남는다. 5시간 30분의 시간이라고 체감하지 못할 만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공연이었고, 왜소한 몸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금배섭의 지구력도 대단했다.

8년간 발표했던 다섯 작품을 한 무대로 복기시켜 가름하고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려는 것일까? 금배섭을 직접 만나(10월 21일 약수동 카페) 창작의 동력이 되는 관심사와 춤을 시작하게 된 배경까지 낱낱이 들어 보았다.

김혜라 - 자기 소개 부탁한다.

금배섭 - 저는 춤판야무에서 활동하고 있는 금배섭이다. 제 아내이자 춤판야무의 드라마터그를 맡고 있는 김풍년씨도 춤판야무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 무용수들은 작업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2009년 춤판야무를 만들기 전에는 세종대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작업했고 툇마루무용단에서도 활동했었다.

툇마루무용단 고유의 색깔이 있는데 금배섭씨는 전혀 그 단체 출신 같지 않다.

- 제가 대학을 늦게 가서 어린 동기들과 작업하며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조금 다른 색깔로 가보자고 말이다.

무용계 입문 내지는 처음 작업한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

'붉은 심장' 공연사진 (제공=춤판야무)
'붉은 심장' 공연사진 (제공=춤판야무)

- 2007년 모다페 ‘스파크 플레이스’에서 처음 <부전자전>을 올렸고, 2008년 ‘드림앤비전 페스티벌’에서 <붉은 심장>(포스트극장)을 했다. 단체 창단 후 첫 작품으로 <그 때 그 여자>(2009), <거미 연대기>(2010> 그리고 2011년에 아르코 차세대 안무가로 선발되었다. 그 즈음부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보이는 것에 대하여>(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로 2012년 한팩(HanPAC, 현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었다.

작품 <오>는 세상에서 홀로 버티는 벼랑 끝 사람들을 8년간 관찰한 결과물

그렇다면 작품 <오>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선보였던 작품을 선별해서 발표한 것이겠다. 무슨 계기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나.
- 이 작업들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일상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 2013년 당시 제가 서울역에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거기서 1인 시위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시위하는 사람이 무엇을 외치는지도 궁금했지만 동시에 제 정신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제가 그곳을 일 년 정도 다녔는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1인 시위자는 서 있었고 물 하나만 들고 계속 얘기하고 있더라. 그때 저렇게 홀로 버티는 사람들, 사회에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또 어느 봄날 민속촌을 갔는데 그날이 휴일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과 널뛰기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래서 널뛰기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실들이 작품(<미친놈 널뛰기>)으로 연결된다.

솔로 연작이다. 솔로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 제가 좀 단순해서 홀로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니 혼자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미친놈 널뛰기>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이 한 작품으로만 홀로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환경과 벼랑 끝에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대하소설처럼 이들의 이야기를 작품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방법으로 홀로 견디는 사람들을 찾아보며 10부작으로 계획했는데 이번 다섯 작품으로만 완성되었다.

8년간 다섯 작품이니 지속적으로 그들의 힘겨운 삶을 지켜본 셈이다.
- 그렇다. 물론 중간중간에 군무도 하고 연극 쪽 일도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살아왔다. 다섯 작품에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녹아 있다. 2020년에 발표했던 <?>는 이주여성에 관한 건데 원래는 고려인이 횡단열차에서 버려지는 사실도 녹아든 이야기다. 러시아 벌판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할머니를 우리는 치매 노인으로 치부한 상황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이야기로 작업을 했다.

앞으로 솔로연작 시리즈는 계속할건가.
- 그래도 이 정도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다섯 작품을 모아 공연을 올리니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전공을 바꿔 무용과에 도전

춤을 늦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제가 경희대 체육학과에 다녔다.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를 하며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극단 미추에 있는 연극학교에 들어갔다. 1년 과정의 연극학교는 실기 프로그램 위주였는데 그 때 처음 한국무용, 현대무용, 탈춤, 장구, 판소리, 연기를 매일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웠다.

늦은 나이에 춤수업을 받은 셈인데 어떻게 현대무용을 전공하게 되었나.
- 당시 LG아트센터에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제가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공연 인터미션 때 다섯 개비를 연속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공연의 흥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젊음을 되돌릴 수 없을까? 어떻게 하면 무용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지냈다. 주변에서는 너무 늦었다고 했지만 최용진 연기 선생님이 무용을 해보라고 권유해 주셨고 마침 세종대에 편입 공고가 나와 지원하게 되었다.

몇 학년 때 편입했고 안무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 3학년 때이다. 2년 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 가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체육을 할 때 쓰는 근육과는 완전히 달라서 주변 동기들한테 물어보며 했다. 세종대는 남자 선배들도 워낙 많고 특히 정명지. 홍혜전, 김형남, 노정식, 이영찬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안무는 4학년 때 학교에서 창작발표회를 하는데 정명지 선생님이 저한테 권유를 했고 처음 안무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춤추는 것도 좋지만 안무가 더 흥미롭다.

제가 보기에 모든 작품에서 연출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 움직임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소품과의 연계성도 남다르게 보였다. 무용의 연출방식과도 다르고 연극적인 접근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해야 할까. 아내 김풍년 연출가의 영향인가.
- 제가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마당놀이하시는 손진책 선생님 작품에 꽤 출연을 했다. 그때 연출하는 방식을 많이 봤다. 그러면서 다양한 극단에서 더 많은 연출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극단 동에서 연출을 하시는 강량원 선생님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님과도 작업을 많이 했고 젊은 연출가들과 자연스럽게 작업을 많이 했으니 제 안무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다.

연극과 무용의 경계에 있는 퍼포먼스 작업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다시 <오>로 돌아가자. 각 작품마다 중요 장면과 의도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작품 <?>에서 퍼포머(금배섭)가 한 평도 안 되는 테이블 공간에서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고자 번호판을 박고, 아크릴 박스 안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형형색색의 새 그림을 그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을 외면하고 하대하며 나와 무관한 듯 그들을 전시된 삶으로 치부하는 시선으로 보였다.
- 맞다. 전시된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 아크릴 박스는 보석 상자를 상징한다. 이주여성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이다. 실제 개발도상국에서 온 여성들을 결혼상품으로 팔듯 상품처럼 나열한다. 나이, 인적사항, 몸매에 따라 노골적으로 값을 매기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갇힌 공간에서 인간은 극단에 몰리게 되고 우리는 개밥 주듯이 식판을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대한다. 우리가 미술치료를 할 때 그림을 보면 그린 이의 상처가 나오게 된다. 거기에 착안해 궁지에 몰린 이주여성의 심리상태를 표현했고, 그것이 천사일 수도 있고 새일 수도 있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금배섭의 무용과 연출은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넘나든다. 오브제라고 하는 사물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이 꽤나 움직임과 동등하게 보였다. 특히 <니가 사람이냐?>에서 김석주 배우가 천장에 달린 모빌 쇠갈고리에 마치 자신이 고기같이 걸리듯 꿰어지는 과정이 인상적이고 신선했다. 군중 속에서 낙인찍힌 사람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가는 무기력한 상황을 안무가는 연출한 것 같다.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니가 사람이냐?'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니가 사람이냐?'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 <니가 사람이냐?>는 2017년에 만들었는데 이번 공연에서 거의 다 수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약간 작품에 개념이 들어가야 무용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틀과 생각이 바뀌니 당시에 짠 작품이 너무 재미없었던 거다. 그래서 굳이 개념과 의미는 들어내고 오브제를 이용해 새롭게 짠 것이다. <니가 사람이냐?>는 군중이 그에게 했던 손짓 하나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가?란 의미로 라텍스 장갑을 사용했다. 그의 기억 속에 그들의 손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사용했다. 갈고리는 그를 상처내고 그의 일부분을 걸어 놓는 의미로 사용했다. 결국 그 갈고리는 그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는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된 셈이다. 예를 들면, 얼굴에 상처가 나면 그 상처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좀 더 굵고 흉측하게 바뀌는 것처럼.

<미친놈 널뛰기>에서 퍼포머는 무슨 사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미친놈처럼 널을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 서울역에서 1인 시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인 시위하는 사람의 일상이 매일 같이 반복되니까 그 경로를 단순화시켜서 등퇴장을 계속한 거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 스스로 신이 되기 전에는 억울함을 토로하기 불가능함을 작품화한 것이다. 결국 내가 보기에는 그는 신이 되고자 하는 외침으로 보였고 성경구절도 막 따라해 보고 염도 해보고 한 거다. 이 작품은 당시 경연에도 나가야 해서 작품에 무용다운 동작이 재공연을 하면서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초연의 느낌을 살려 단순하고 거칠게 만들었다.

- 이 작품에 사용된 음악이 신중현의 <나는 너를 사랑해>이다. 근데 가사를 거꾸로 부르더라. ‘사랑해’를 ‘해랑사’로, 나는 ‘너를 좋아해’도 ‘해아좋’ 식으로 반복하니 무슨 염을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해석하기로는 ‘나는 너를 좋아해’가 반대로 ‘나는 너를 싫어해’로 들리며 모든 게 반대로 이해가 되었다. 1인 시위하는 그 사람이 이런 심정일까 생각했다. “나는 너희 같은 부류의 사람을 싫어해. 하지만 나는 너희 같은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안 돼! 그러기에 너희들을 사랑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을법한 심정이라 생각했다. 염하는 느낌 또한 가사와 상반된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면 무언가 생성되고 발생할 것 같은데 음악을 염하는 분위기로 하니 무언가 소멸되고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니가 사람이냐?'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미친놈 널뛰기'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섬>에서는 나무 막대기로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 주요 퍼포먼스였다.
- 이것은 탈북민 이야기다. 제가 예전에 거여동에 살 때 그 동네에 탈북민이 모여 살았다. 그때부터 관심 있게 봤고 작품구상을 위해 탈북민 다큐를 보게 되었다.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 하는 탈북민의 삶을 찍은 것이다. 기자가 인터뷰에서 그들에게 당연히 한국으로 갈 거냐고 질문을 했더니 탈북민은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같은 민족한테 업신여김 당하는 것보다 모르는 미국 사람한테 천대 받는 길을 택하겠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그래서 북한을 벗어나서도 어디가든 또 자신만의 고립된 섬을 만들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작품 제목을 <섬>으로 했다.

- 또 제가 슈테판 츠바이크이 <체스 이야기>를 읽었는데, 주인공은 홀로 고독감을 견뎌내기 위해 체스를 둔다. 그는 자신을 둘로 분리한다. 체스를 두면 자신이 반대편에서 두었던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정확이 자신을 둘로 나누어 삶을 살아간다. 그래야만 고독감을 견딜 수 있기에. 계속 자기를 분리해서 자기만의 쉴 공간을 만들곤 하는 주인공의 심리도 작품에 반영되었다. 결국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자아를 분리시켜서 살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 외롭고 고독해서 견딜 수 없음을 얘기하고자 했다.

안무가는 탈북민의 고독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섬>을 보며 정신이 황폐화된 사람들의 상황으로도 해석되었고,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불안함, 암울하고 고독한 정서로도 읽혔다. 예술이 현실과 사실을 다룰 때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은유, 상징, 직설, 대비 혹은 안무가만의 방식과 의식이 객관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있는 사실 그대로 보이면 관객은 주입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건 컨템포러리 예술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금배섭씨의 작업은 안무가의 의도 외에 관객 나름의 생각을 투영시켜 해석할 ‘심리적 공간’이 있는 점에서 좋은 작업이라고 본다. <포옹>의 배경이 궁금하다.
- <포옹>은 세월호에 관련된 것이다. 당시 누구나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산티아고를 갔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세월호 작업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그냥 세월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하면 너무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아서 다른 희생자인 당시 자살한 구조대원 김관홍씨 얘기로 시작했다. 이후 이 얘기가 발전되어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주검을 안은 순간의 시점에 있는 사람은 어떨 것인가’로 작품을 시작했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은 죽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을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고, 이런 일이 머릿속에서 계속 뒤엉키며 그는 현실에 발만 붙어있지 정신은 다른 시공간을 배회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 죽은 이의 존재성과 산 자의 존재성 같은 것들이 섞여 있다. 작품 속 인물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죽는 걸 봤는데 어느 영상에서 본 소의 죽음과 겹치고, 그 소는 자신이 어렸을 때 시골에서 봤던 할아버지의 소와 겹치고, 그 소가 새끼를 낳고, 소의 탄생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탄생과 겹치고... 이 사람의 기억 속에 소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제공=금배섭)
산티아고 순례길 (제공=금배섭)

<포옹>에서 종소리가 나며 죽음을 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아직 죽은 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심정인가 했다.
- 종소리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소리이다. 그는 이 종소리로 현실을 인지하기도 하고 현실을 잊기도 한다. 이 종소리는 그가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소의 목에 걸려있는 워낭이기도 하다. 또 매번 그를 어딘가(현실, 과거, 상상)로 인도하는 매개체다.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포옹'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중 '포옹' ⓒ박태준 (제공=춤판야무)

작품에 여백을 두고 분리의 창작개념을 지향

작품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금배섭의 창작방법론은 무엇인가
- 저는 창작에서 은유라는 방식이 재미가 없다. 무엇이 무엇을 의미하는 식의 머리를 쓰는 방식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생각은 하지만 가슴과 감각으로 와 닿는 것. 그 다음 다시 머리로 생각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뭔지 모를 낯선 느낌의 이미지나 감각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흡수될 수 있게 풀고자 한다. 만일 힘든 표현을 한다면 이걸 은유해서 표현하기보다 그 정도의 힘든 일을 무대에서 한다. 무대에서 자꾸 수행하듯 하니까 사람들이 무대에서 노동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 또 저의 창작방법론은 분리의 창작개념이라 말하고 싶다. 장면과 장르를 분리시켜 거리를 두면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제 작품에 반복과 정지를 써가며 여백을 두어 관객의 생각이나 경험이 들어올 수 있게 열어 놓는다. 이렇게 관객의 참여가 이뤄진다면 작품과 관객의 생활이 동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저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예전 TV프로에 ‘체험 삶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작업의 모티브가 된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변하여 춤을 추고 일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연극 안무작업을 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제 작업시간이 부족했다. 일을 줄이고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솔로작업도 거의 자비로 하다가 네 번째부터 지원금을 받았었다. 그 때 후배들이 어떻게 솔로로 길게 하느냐고 묻곤 했다. 제가 할 일 없고 시간 많고 돈 없으면 솔로하기 적기라고 했다. 내 시간을 가지려 한다.

- 작품 <오>를 마치고 저만이 아니라 제작진 모두 성취감을 갖게 되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기획을 통해 안무가 금배섭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다함께 공평하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역설한 <오> 솔로연작이 환기하는 바는 적지 않다.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수줍게 웃으며 하는 말 속에 그늘진 사회를 탐색하고자 하는 열의가 보였다. 개성 충만한 금배섭 안무가의 “할 일 없고 돈 없고 시간 많으면 솔로 작업하기 적기”라는 말도 예사롭지 않아 다음 작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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