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코로나 서사로 국민을 위로하는 청주시립무용단의 ‘코스모스’
[공연리뷰] 코로나 서사로 국민을 위로하는 청주시립무용단의 ‘코스모스’
  • 남정숙 문화기획자
  • 승인 2021.11.08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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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더프리뷰=서울] 남정숙 문화예술평론가 = 2021년 시댄스(SIDance)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시댄스는 1998년에 시작된 전 세계 무용가들의 축제로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정식명칭이다. 올해는 14개국 97개 팀 77편(영상 포함)의 작품이 5개 극장(대학로예술극장,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강대학교 메리홀, 문화비축기지, 신촌문화발전소)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 공연단 초청이 대부분 취소되었고 띄어앉기로 인해 공연장의 객석 수도 줄어든 상황에서 오히려 참가 작품수는 시댄스 24년 역사상 최다(물론 영상을 포함해서이지만)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어쨌든 관객으로서는 극장에서 벌어지는 실연 공연을 볼 수 있고, 다채로운 무용영상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즐겁다.

올해 시댄스 특집 프로그램으로는 △지역무용 특별초청 △베네룩스 포커스를 준비했으며, 코로나로 단절됐던 해외작품의 대면공연도 재개한다. 특히 지역무용 특별초청은 주로 지역 문예회관에서 서울팀을 초청해 공연하던 대부분의 사례에 비해 서울에서 공연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우수한 지역 무용팀들을 서울로 초청, 대형무대에서 세계적인 명성의 외국 팀들과 대등한 공연 기회를 갖게 하고 무용을 매개로 문화교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지역 팀 중 필자가 첫 번째로 감상한 청주시립무용단의 <코스모스(Cosmos)>는 ‘Covid Stop Morbid Stop’이라는 의미를 담은 약자로, 코로나 재난 시대의 혼란과 고통–코로나 재난을 피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에 대한 살풀이–단비가 내려 다시 새로운 싹이 트고 희망을 표현하는 3단계 정도의 코로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일단 청주시립무용단의 김진미 예술감독은 연출가이자 안무가이면서 드라마투르그로서 무용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 드라마를 보는 듯 쉽고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이 현실보다 더 감성을 울리니 코로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이 더 절절하게 아파오고, 코로나 환란을 기록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려 애쓰고 노력하는 것도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 코로나 서사를 만든 청주시립무용단의 성실함에 감사를 보내고 싶다.

청주시립무용단 <코스모스>의 특징은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무용과 적절히 섞어서 세련된 한국무용 작품을 창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두 가지 장치가 눈에 띄었는데 첫 번째는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였다. 융복합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통적 기제와 현대적 기제를 적절히 배치하고 연마해서 전통과 현대가 한 무대에 있더라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리도록 했다. 예를 들면 코로나 이전을 표현하는 현대무용 부분에서는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재난상황은 3차원적인 9개의 대형 액자를 입체적으로 무대에 설치하고 무용수들을 대형액자 틀 안에서만 춤추게 한다. 안무는 아프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기괴한 몸짓으로 창작되어 바이러스를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액자 틀 안에서 괴로워하다가 홀로 죽어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방역하는 마임이스트들은 아무 표정 없이 기계적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에서 9개의 대형 액자는 관객과 출연자들을 구분 짓는 경계이자, 대형 TV 같은 역할을 한다. 액자 틀이 있으므로 관객들에게 어둠 속에서 무용공연이 아니라 마치 대형 TV 속에서 방영되는 재난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며 젊은 무용수들이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내 이웃이나 내 가족의 일처럼 무용수들의 고통이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게 한다. 로라 멀비의 관음론(觀淫論)적 시선과는 좀 다르지만, 이는 마치 무대에 입체적인 대형 액자를 설치함으로써 관객들이 기존의 무용이라는 기능적 접근을 넘어 관객주체적 입장에서 대형 TV 속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아티스트들을 바라보게 하는 장치가 되고, 이는 코로나 서사라는 전체 구성과 어우러져서 배우들이 느끼는 고통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며 공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게 한다.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이에 비해 치유의 과정은 전통무용으로 표현된다. 영상을 무대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혼을 달래는 살풀이와 퓨전 전통무용수들에게 태양∙탄생∙밝음을 상징하는 쇠, 꽹과리를 들고 원을 돌며 해원의 춤을 추게 하므로 관객들은 DNA 속에 새겨진 그대로 진쇠군무에서 벽사진경같은 위로와 안정감을 얻게 된다. 현대무용적 기제와 전통무용적 기제가 대비되면서 맛깔나다.

두 번째는 긴장과 이완의 완급조절 능력이다. 무용이 마치 드라마같이 느껴지는 것은 춤 공연을 기능적인 제시가 아니라 관객들의 감성의 흐름을 고려한 선수 배치와 시간 계산까지 고려한 친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코스모스>에는 시립무용단원들의 독무와 군무도 있지만 박재희, 양길순 명인의 독무, 이태건 마임이스트의 마임도 나온다. 또 음역이 다른 가야금, 피리, 태평소 등으로 구성된 정악과 드럼과 바이올린, 피아노 등이 사용되고 전통음악과 함께 재즈 분위기의 현대음악도 나오고 현대음악에 구음이 나오기도 한다. 여차하면 혼란스럽기 십상이지만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조화를 이루어서 서사적 감상을 도왔다. 이는 모두 연습과 연마를 통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음역이 다른 가야금, 피리, 태평소와 구음이 드럼과 바이올린, 피아노 등과 함께 연주되고 춤과 맞춰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연습량이 많았을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코스모스’ 공연장면 (c)고흥균(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코로나 재난을 표현한 앞부분의 현대무용과 재난극복과 희망을 표현한 진쇠춤류의 퓨전 전통군무춤은 김진미 감독의 안무와 연출로 창작무용을 보는 맛이 살아 있는 반면에, 꼭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두 명인의 춤이 들어간 브리지 부분은 구성상 연결이 좀 부자연스러웠고 시간 배치도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퓨전 진쇠군무 부분은 세련된 의상과 칼 군무로 신선하고 멋지긴 했으나 시립무용단원들이 가지고 나온 꽹과리가 단지 소품이나 액세서리로 사용될 뿐, 동시에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도 추는 우리 전통춤의 특징을 살려 악기로 사용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웠다.

솔직히 아쉬움보다는 두려움이다. 김진미 감독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혹시 전통무용의 핵심을 놓친 채 <향연>이나 <묵향>류의 스타일리쉬함만을 추구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자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김진미 예술감독이 <코스모스> 공연을 계기로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과 조화를 이루되 직지에 담긴 창조와 정보를 공유하자는 평등과 애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청주시립무용단의 독창적이고 특성화된 예술을 활짝 피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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