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사람을 좋아하고, 내일과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오늘과 사람을 좋아하고, 내일과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1.11.29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가 최진영과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유쾌한 대담
“사랑에 대해 쓰면 사랑을 비웃을 수 없게 돼” “내년에는 꼭 음반 낼 것”
소소살롱(제공=예술의 전당)
소소살롱(제공=예술의 전당)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11월 27일(토) 오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문학 팟캐스트 ‘문장의 소리’와 예술가들의 소소하고 소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 ‘소소살롱’이 협업한 대담회가 열렸다. 호스트로 소설가이자 ‘문장의 소리’ 진행자인 최진영, 게스트로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출연했다.

강아솔은 ‘문장의 소리’ 로고 송을 직접 작업했는데, 평소 문학을 워낙 좋아해 로고 송 작업의 기회를 ‘문학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온전히 한 프로그램을 위해 가사와 멜로디를 쓴 것은 처음”이라며 “작업을 해 보니 어렵고 부담이 큰 일이었다”고 말했다. 로고 송의 가사는 계절별로 조금씩 다른데, 이날 강아솔은 겨울 버전을 기타 연주와 함께 시연했다.

PART1. 혼자인 날들 – 한 개인으로서 각자의 이야기

최진영: 코로나로 인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셨을 것 같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다.

강아솔: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진행이 되어도 도중에 취소될까 걱정스러웠고, 공연이 연기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또 공연 중에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함성을 지르는 것이 불가능해서 예전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강아솔은 혼자인 시간을 좋아하고 혼잣말도 자주 한다고 했다. 주로 어떤 혼잣말을 하느냐는 질문에 강아솔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상상으로 많이 데려온다. 민망하지만, 산책하다가 ‘최진영’이라는 인물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말을 걸고, 제 매력을 어필하고, 유머도 던져본다”고 말했다. 이에 최진영은 “저도 혼잣말을 많이 하는데, 주로 ‘그때 그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와 같은 항변을 한다”고 했다.

강아솔은 과거 3집 앨범을 낼 때 어떤 사람을 너무 미워해서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니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고. 강아솔은 그런 자신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모국어가 들리지 않고, ‘배고파요’ 같은 말밖에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여행을 했다고 한다. 눈을 좋아해 일본 삿포로에 가서 등산을 하고 단순한 말만 하며 지내다 보니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최진영은 강아솔과 비슷한 마음으로 절에 자주 간다고 했다. 천주교가 모태 신앙이지만, 조용히 절에 가 108배도 한다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괴로우니까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강아솔은 “저도 모태 신앙인데, 경박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상형은 부처님 얼굴이다” “역시 저는 작가님과 통하는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최진영은 단편 소설 <어느 날(feat. 돌멩이)> 일부를 낭독했다. <어느 날(feat. 돌멩이)>에는 지구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일시불로 결제한 카드 값을 할부로 바꾸어 달라고 카드사에 요청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최진영은 이 소설을 쓸 당시 건강 상태나 경제적 상황 등 주인공과 처지가 비슷했다고 한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 자신이 쓴 글에 자신이 위로 받은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이어 강아솔은 <섬>을 노래했는데, 이를 감상한 최진영이 “노래가 너무 좋아 울 뻔했다”며 서로 손을 잡기도 했다.

최진영
최진영

PART2. 매일의 고백 - ‘창작’을 중심으로 한 서로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장의 소리’의 단골 질문이다. 최진영이 좋아하는 것은 ‘오늘’이며 싫어하는 것은 ‘내일’이다. 하기 싫은 일을 생각하면 잠들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데, 정작 아침이 되고 오늘의 일이 되면 덤덤해진다고. 학창 시절 시험이나 운동회 전날에도 그랬다고 한다. 운동회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막상 당일이 되면 열심히 뛰었다고.

강아솔이 좋아하는 것은 ‘사람’,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사람을 아주 미워한 경험이 있어도 또 좋아하게 되고,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사주에 관심이 있는데, 자신의 사주에 ‘정정정’이 있다고 밝혔다. ‘정직, 정직, 정직’.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걸 먹는 것을 보는 게 좋고, 풍경 사진을 찍는 그 사람의 모습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에 최진영은 “저는 제가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제가 풍경 사진 찍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이날로 두 번째 만남이었던 그들은 환상의 파트너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노래를 만들 때 자주 하는 고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강아솔은 선율, 가사, 연주의 균형이 좋은 게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라고. 노랫말을 쓸 때 어떻게 해야 적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했다. 똑같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고민하기 전의 ‘사랑’과 고민하고 난 뒤의 ‘사랑’은 다르다고. ‘왜 이 단어여야 하느냐’에 대한 자기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아솔: 작가님은 2006년에 등단하셨지만 그전부터 글을 쓰지 않으셨느냐.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셨는지, 영감의 원천이 궁금하다.

최진영: 30대 중반까지는 이유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써졌는데, 오래 쓰다 보니 왜 쓰고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해졌다. 현실적으로는 이게 저의 일이고 생활이니까, 내면적으로는 한 편의 소설을 쓰며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해서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의 ‘이제야’는 친족 성폭력을 경험한 인물이다. 이 인물의 삶에 대해 몇 달 동안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럼 이전처럼 살 수는 없게 된다. 내가 쓴 문장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에 대해 쓰면, 사랑을 비웃을 수 없게 된다.

강아솔: 맞다. 저는 제가 음악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많은 걸 외면하고 등 돌리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게 십자가가 생기기도 한다. <그대에게>에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라는 가사를 썼는데, 이게 저의 십자가가 되었다. 대단한 사람, 금은보화 같은 것을 좋아하면 안 될 것 같다. (웃음)

이어지는 최진영의 두 번째 낭독은 <해가 지는 곳으로>의 일부였다.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것이고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라는 내용의 구절을, 누군가 좀 더 잘 살았으면 해서,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사랑하고 응원하며 살았으면 해서 골랐다고 최진영은 고백했다. 강아솔은 <그대에게>를 불렀는데, <그대에게>를 작업할 당시 자신이 노래를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26세 작곡가 지망생이던 그가 취업이 안 돼 우울해하는 친구들에게 ‘생색을 내며’ 위로해주기 위해 만든 곡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발표까지 하게 되었다고.

최진영은 ‘내 이야기를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무언가’가 글이 되었다고 한다. 또 그는 ‘음치에 재능이 있다’고 밝혔다. 노래를 부를 때 모든 음이 묘하게 어긋나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고.

강아솔
강아솔

PART3. 누군가의 곁으로 – 독자 또는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최진영은 글을 쓰다 보면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특히 책이 나온 후에 그렇다고 했다. 독자의 반응을 보고 들으면 혼자 고군분투한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독서라는 것이 시간을 들여서 한 권을 읽는 작업이잖아요. 내밀하면서 적극적, 능동적이고요.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주시고 리뷰를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해요. 특히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나 ‘제 이야기 같다’는 후기들을 보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아솔은 음악은 창작할 때부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음원이 나오면 50, 60%만 완성된 것이고, 누군가가 들어 줄 때 비로소 100%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그는 얼마 전 자신에게 양말을 선물해 준 팬과 오직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가입한 팬, 오래 전부터 자신의 음악을 들었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팬 등의 이야기를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저는 제 음악이 조금 쑥스러웠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갔을 텐데, 제가 그 음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을 하면 실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낭독은 <이제야 언니에게>의 끝부분이었다. 최진영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도 잘 살아가는 인물을, 손잡고 일어나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강아솔은 이어 <그래도 우리>를 부른 후, 최진영의 글을 읽으면 가슴에 손이 올라간다고 고백했다. 마음이 넘치니까 힘이 들어서 쉬었다가 읽기도 한다고.

관객이 직접 쓴 질문에 대답하는 Q&A 시간에도 여러 질문이 있었다. ‘문장의 소리’를 진행하며 많은 작품을 읽느냐는 질문에 최진영은 “저는 독서량이 적은 편이다. 유년기, 청소년기에 읽은 책이 <어린 왕자>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두 권뿐이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간 후부터였다. ‘문장의 소리’ 진행을 위해 신간을 많이 읽는데, ‘문장의 소리’가 아니었더라면 읽지 않았을 책도 보게 되고, 젊은 작가들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고, 시를 읽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고 답했다. 최진영은 내년 2월까지 ‘문장의 소리’를 진행하는데, 그 후로는 자신의 글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계획에 대한 질문에 최진영은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 계획이다. 하늘, 나무, 흙을 보며 글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고 강아솔은 “‘음반을 내겠다’는 말이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게 되도록 정말로 음반을 내겠다”고 답했다.

<이제야 언니에게>의 ‘제야’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최진영은 자신도 제야에게 말을 많이 걸고, 제야도 자신에게 말을 많이 걸고, 공원을 뛰기도 하고, 눈이 내리면 그것을 보기도 하고, 사람과 만나 대화도 하고, 가끔 넷플릭스도 보며 우리처럼 살고 있다고 답했다.

강아솔은 내년이면 데뷔 10년차인데, 기념일을 잘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절을 빌려 브런치쇼를 하고 싶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강아솔은 앙코르 곡으로 루시드폴의 <오, 사랑>을 불렀다. <오, 사랑>은 강아솔이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연주를 해 보고 싶다고 느꼈던 곡이라고 말했다. 최진영과 강아솔은 외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며, 귀한 토요일 오후를 내어주신 관객들께 감사하다고 오랫동안 인사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