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고난의 길에서 천국을 노래하다 – 오페라 ‘길 위의 천국’ 
[공연리뷰] 고난의 길에서 천국을 노래하다 – 오페라 ‘길 위의 천국’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13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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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천국' 공연 장면 중 일부 (제공=)
'길 위의 천국' 공연 장면
(사진제공=최양업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어화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 곳이 본향인고
복지로나 가자하니 모세성인 못들었고
지당으로 가자하니 아담원조 내쳤구나
부귀영화 얻었은들 몇해까지 즐기오며
빈궁재화 많다한들 몇해까지 근심하랴” - 최양업 <사향가>

올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자 김대건과 함께 유학을 떠나 두 번째 사제 서품을 받고 활동한 최양업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다. 두 신부는 천주교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분들이다. 김대건 신부가 최초의 신부이자 최초의 순교자라면, 최양업 신부는 12년 동안 전국 129개 교우촌을 다니며 선교활동을 한 분이다.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이 지난 11월 12-13일 청주예술의전당, 11월 20-21일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리고 11월 23일에는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공연되었다.  

2020년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자인 재독 작곡가 박영희가 곡을 썼다. 2005년 최양업 신부의 서한집을 읽고 오랜 시간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노년에 종교적인 작품들을 발표한다. 그 즈음에는 신의 존재나 신의 역사가 더 와 닿기 때문일까. 

박영희 음악의 특징으로는 일반 레치타티보가 아니라 가사 하나하나에 음을 붙여 작곡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또 이번 작품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최대한 절제하고 주요 장면들에서 무반주나  하나의 악기만을 사용했다. 대사와 노래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 작곡이었다. 

'길 위의 천국' 공연의 한 장면​​​​​​​(제공=최양업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길 위의 천국' 공연 장면(사진제공=최양업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무대는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감옥처럼 사람들을 옥죄는 성리학을 정자관으로, 개혁이 금지된 암울한 시대를 빙하로 표현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역사의 흐름은 계단으로 나타냈다. 

오페라지만 소리꾼 노결이가 등장해 <사향가>를 불렀고, 배우 이윤지의 해설도 특징적이었다. 해설은 판소리 같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 같은 느낌으로 작품에 녹아들었다.   

최양업 신부 역은 테너 김효종이 연기했다. 명민하고 올곧은 소리가 돋보였다. 바리톤 김종표가 최양업의 부친 최경환 역을 맡았다. 그가 고문 끝에 순교하는 장면은 대사와 음악, 연기 모두 감동적이었다. 이밖에 <바르바라의 소원>이나 <하느님께 가는 길> 역시 앞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많이 연주될 명곡으로 여겨진다. 
 

'길 위의 천국' 공연의 한 장면​​​​​​​(제공=최양업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길 위의 천국' 공연 장면(사진제공=최양업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한국천주교회의 의뢰로 제작된 오페라여서 선교적인 내용이 짙은 것은 당연해 보였다. 다만, 최양업 신부의 여러 역사적인 의의가 함께 드러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최초로 서양음악을 배운 조선인, 서양의 화성을 활용해 천주가사 19편을 노래로 만든 최양업, 한문으로 되어있는 <천주교요리문답>을 한글로 번역해 보급했고, 산간에서 농사짓는 법과 물을 정화하는 법을 연구했던 지식인 최양업의 면모도 보여주었다면, 좀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희 선생이 말했다. “최근 2년간 세상은 사람들에게 ‘서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해왔는데, 낮은 자세로 남을 껴안았던 최양업 신부의 삶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입니다.”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가며 그 길에서 천국을 찾았던 최양업 신부와 가톨릭 신자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코로나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소망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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