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 루프, <고독한 플레이어 蠱毒한 PLAYER> 개최
대안공간 루프, <고독한 플레이어 蠱毒한 PLAYER> 개최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1.12.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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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대안공간 루프는 2021년 12월 31일부터 2022년 2월 6일까지 <고독한 플레이어 蠱毒 한 PLAYER>를 개최한다.

<고독한 플레이어>는 5인의 협력 큐레이터가 아티스트를 선발하는 방식과 과정을 실험하는 프로젝트다. 고독(蠱毒)이란, 항아리에 독이 있는 작은 동물들을 함께 넣어두면 자연스레 서로 싸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한 마리에게 모든 독기가 응축된다는 고대 주술이다. 전시는 고독(蠱毒)의 방법으로 고독(孤獨)한 예술 플레이어를 발굴 하고자 한다.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을 게임의 알고리즘으로 디자인하여, 피할 수 없는 경쟁을 놀이의 방식으로 치환한다. 그리고 선정의 과정을 구조적으로 투명하게 갖추고자 한다.

염인화 x 권희수 - <레이무숨 목욕탕 (Leymusoom Mogyogtang)>
영상작 <레이무숨 목욕탕 (Leymusoom Mogyogtang)>(2019)을 관통하여, 권희수 창시자가 그리는 레이무숨-적 시공간으로 인도된다. 그곳에선 사회상으로부터 ‘탈피’한 신체-이미지들이 3D 디지털로 영속화된다. 수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몸을 타고 내려온 다듬이질 소리가 <레이무숨 목욕탕>의 루프 속에서 끊임없이 반향하듯 지금, 여기의 시공간축을 가로질러, 여성적 경험으로 직조된 관계망을 증폭한다. 이 목욕탕에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어머니가, 할머니가, 스스로를, 서로를, 우리를 보듬고, 보살피고, 아끼고, 가꾸며, 레이무숨-적 신체-이미지로 개종(改種)한다. 그리고 개종(改宗)한다. 레이무숨은 여전히 거대 종교로서 작동하는 가부장제의 잔여물을 벗겨내고 씻어낸다. <레이무숨 목욕탕> 속 다듬이질의 무위적 리듬감과 퍼포먼스성. 세신한 피부를 따라 미끄럽게 흐르는 물질들과 그 촉감. 이 목욕탕에서 여성들이 구축하는 신체-이미지와 행위들은 어떻게 감각될까.

'레이무숨 목욕탕Leymusoom Mogyogtang', 싱글 채널 비디오, 4분, 2019
'레이무숨 목욕탕Leymusoom Mogyogtang', 싱글 채널 비디오, 4분, 2019

오주영 x 민트박 - <공기의 형태학 (Morphology of the Aerial)>
작품은 소리에 매 순간 공기의 흐름을 반영시키고 연기를 일으켜 그 흐름을 보여준다. 구현되는 메시지 사이에는 수많은 구성 요소와 기술이 자리 잡고 있으나 결국은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품은 기체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변화를 통해 그 실체를 소리로 전달하고, 감상자의 감정과 공간의 지각력에 변화를 만든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 실핏줄 같은 한 줌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쉽게 으스러져 다시 형태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이 공기 조각은 인간의 죽음을 향한 제스처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코로나로 촉발된 환경적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포맷변환]민트박, 공기의 형태학Morphology of the Aerial, 싱글 채널 비디오, 9분 6초, 2021
'공기의 형태학Morphology of the Aerial', 싱글 채널 비디오, 9분 6초, 2021

이선미 x 망무 - <재료 (Ingredients)>
배달 어플 사용자들을 인터뷰하며 자료를 조사했다. 업체들은 알람 소리와 손님의 부당한 요구, 주변 상가와의 경쟁, 플라스틱 쓰레기에 피로를 호소/배달 종사자는 시간제한으로 인한 안전 불감증/사용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과도한 배달비, 플라스틱 쓰레기에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작품은 그중 공통적으로 피로하다고 느끼는 쓰레기에 집중한다. 배달 어플을 사용한 뒤에 나오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잘게 잘라 레진과 섞어서 나무판 위에 부어 굳힌다. 플라스틱과 비닐은 색이 모두 달라서 층층이 쌓인 지층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지구의 지층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이후의 지층은 플라스틱과 쓰레기로 만들어질 것이다.

'망무', 재료 Ingredients 1,3, 46x54cm, 캔버스에 식재료와 에폭시, 2019
'망무', 재료 Ingredients 1,3, 46x54cm, 캔버스에 식재료와 에폭시, 2019

이선미 x 민구홍 매뉴팩처링 - <장영혜중공업 귀중> 2판
2015년 늦여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 <회사 소개>를 통해 느닷없이 등장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 민구홍의 근무지를 숙주 삼아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홀로 또는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협업하며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를 포함해 회사의 기술을 거친 수많은 웹사이트 또한 그 실천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포맷변환]민구홍 매뉴팩처링, 「장영혜중공업 귀중」 2판, 넷아트, 가변크기, 답장을 받을 때까지 반복, 2021
'장영혜중공업 귀중' 2판, 넷아트, 가변크기, 답장을 받을 때까지 반복, 2021

2020년 12월 31일,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얼결에 설립 5주년을 맞아 아트선재센터에서 <장영혜중공업 귀중>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작품은 회사의 제품이자 기본적인 웹 기술을 활용한 편지로, 장영혜중공업을 향한 존경, 사랑, 질문, 그리고 부탁 한 가지가 담겨 있다. 진솔함이 부족했던 탓일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답장은 받지 못했다.

아쉬움의 시간을 견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다시 한번 장영혜중공업에 편지를 보낸다. 이번에는 업데이트된 진솔함과 전염병 탓에 외출을 삼간다는 장영혜중공업을 위해 푹신한 전용 소파, 헤드폰, 손 소독제까지 마련된다.

장진택 x 정성진 - <미래를 향한 유대의 신호탄>
3D프린팅으로 복원된 헤라클레스와 창작의 주체를 담은 라이프 캐스팅,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형상을 하고 있다. 현대에서 지난 역사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지금의 시공간 속에서 디지털의 인식 체계와 맞물려 재조합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이들의 표면을 다듬고 이질적인 것들과 합성해 나가며 제작한 조각을 통해 지난 시간과의 공존과 갱신을 실험한다.

'미래를 향한 유대의 신호탄', 복합매체
'미래를 향한 유대의 신호탄', 복합매체

조현대 x 인세인박 - <심사위원 Y Jury Y>
이번 프로젝트는 심사의 당락을 결정짓는 사람, 즉 심사위원의 개인 계정에 방문하여 그들의 일상을 ‘심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심사’의 대상이 된 그들 중 대다수는 계정이 없었고 계정이 존재하는 이들의 피드 대부분은 전시의 작품 사진이나 혹은 본인이 기획한 전시 풍경이나 전시 홍보 포스터였다. 드물게 업로드 한 일상의 이미지만으로는 그들의 취향을 알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은 오롯이 순간적인 취향으로 선택된 것들이었고, 어쩌면 제출한 기획서나 포트폴리오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을지 모른다. 선택(심사)을 받는 이와 선택(심사)을 하는 이의 역할 바꾸기의 과정은 공모제도라는 시스템의 문제를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심사위원 Y Jury Y, 디지털 프린트, 59.4x75cm, 2021
'심사위원 Y Jury Y', 디지털 프린트, 59.4x75cm, 2021

조현대 x 현다혜 - <나의羅衣 3, 9>
羅衣. 그물 나, 옷 의. 기억은 식물의 잎이 마디마디 방향을 달리하여 하나씩 어긋나는 모양새다. 그 모양이 흔쾌히 표류한다. 이야기는 5년 전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가게 된 할머니에게서 시작된다. 응시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보았다. 어쩌면 좀 더 가볍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은 비중이나 가치, 책임이 적고 죄 따위가 없다. 언제나 기억의 모양은 들기 좋을 정도로 가볍다. 다시 응시한다. 당신은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늙음과 죽음, 질병 사이에서 가볍게 표류한다. 망각은 자연스럽게 치열한 삶을 잘도 비껴간다.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다. 그 모양이 아이러니하게 경쾌하다.

'나의羅衣 3, 9', 피그먼트 프린트, 35×42cm, 2018
'나의羅衣 3, 9', 피그먼트 프린트, 35×42cm, 2018

전시는 서교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루프에서 진행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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