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인천시립무용단 창단40주년 기념공연 ‘만찬 진, 오귀’
[공연리뷰] 인천시립무용단 창단40주년 기념공연 ‘만찬 진, 오귀’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1.12.3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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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더프리뷰=인천] 김미영 무용평론가 = 지난 11월 26-27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가 공연되었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인천시립무용단의 연중 축하 프로그램의 피날레를 장식한 이번 공연은 윤성주 현 예술감독의 2017년 부임 첫 공연이기도 하다. 인천시립무용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전통에 기반한 창작작품을 선보인 것이었는데 무엇보다 우리의 굿을 소재로 하면서 안무적 상상력이 더해져 인천시립무용단의 새 시대를 선포했던 작품이었다. 

인간의 죽음을 고통과 슬픔의 사건으로 한정짓기 보다는 인간과 늘 함께하는 신의 존재와 그들 앞에 지금의 삶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차려진 만찬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즐겁게 살아가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조금 더 힘을 내보라고 격려한다. 코로나가 덮친 일상을 살아내는 시민들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위로하고픈 안무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작품은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로비에서 무대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관객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관객을 맞아주기도 하면서 시작된다. 로비에서부터 들어온 무용수들이 객석에 앉은 관객들 사이로 누군가를 찾는 듯 돌아다닌다. 이내 무대 위의 여인 앞에 서서 소환부에 적힌 망자의 명단을 펼쳐 보여주며 작품이 시작된다. 이승에서 죽음을 맞아 저승으로 가는 길목을 표현한 다층으로 제작된 계단식 세트는 초연 때보다는 미니멀하게 표현되었다. 세트의 등장으로 무대는 이승과 저승으로의 공간이 분할되는 동시에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신들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진오귀굿’은 망자가 가진 이승에서의 한을 풀어주어 저승으로 잘 보내주기 위해 살아있는 가족이 해주는 굿이다. 죽음을 소재로 하는 만큼 유쾌한 주제는 아니지만 무용수들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해학을 더하고 망자와 산자가 각각 바라보는 시선, 신명을 더한 춤의 만찬, 이들을 보고 있는 신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무대는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다. 작품은 죽음의 순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살아있는 삶의 시간에 더욱 가치를 부여한다.

망자와 산자가 서로 연결된 줄을 놓치며 이제는 각각 다른 공간에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 신들에게 바치는 춤의 만찬이 시작된다. 춤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망자는 무대세트의 꼭대기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다. 막바지에 이르러 쓰러지는 망자를 위해 왕무녀와 박수무당이 무대에 펼쳐진 흰 천들을 가르며 지나가 쪼개진 긴 천들이 엮어져 길쌈놀이의 모습으로 신명을 더한다. 이승에서의 한이 흰 천이 갈라지는 것처럼, 흰 천이 엮였다 다시 풀리는 것처럼 풀어지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염원이 담긴다. 마지막까지 높이 올라가는 망자를 바라보는 산자의 모습은 죽은 자를 위한 굿이었지만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공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40년이 그러했다.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춤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예술의 가치를 삶 속에 적용시키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들의 노력은 지난 발자취에 담겨 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정체성과 향후 나아갈 방향은 이들의 지난 길을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창단공연 <굴레야 굴레야>에서부터 시작된 첫 번째 이들의 역할은 전통의 계승이다. 전통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보존의 가치가 있다. 따라서 한국무용단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단체로서 한국무용 전통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의 모습을 고수할 수만은 없다. 칸트는 자율성과 독창성, 창의성이 예술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전의 것을 보존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예술이 아닌 목적을 가진 행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보존하는 것을 넘어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인 춤을 생산해내야 한다. 초대 이영희, 제2대 이청자 예술감독에서 시작된 창작작업은 한명옥 예술감독에 이르러서 규모를 갖추며 시도되어 왔고 이후 김윤수 예술감독에 의해 보다 현대적인 작업으로 확장되어 지금은 안정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 한국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작업에서 더 나아가 현대적인 작품으로의 안정화는 이들의 춤이 지금의 시대적 감성과 현실을 뒷받침하는 창작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대를 담지 못한다면 지역무용단으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없다. 

동시대를 표현하는 춤을 통해 시민들과 호흡해야 하는 것은 지역무용단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홍경희 감독의 친(親)시민 프로젝트로 시작된 ‘춤추는 도시 인천’은 손인영 감독을 거쳐 현재 양적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최근 예술의 동향은 눈으로 바라만 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다. 시민 프로젝트는 예술이 무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단체와 자주 만나고 함께 이루어나가는 예술작업으로서의 예술활동과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직접 예술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예술가를 키워낼 수 있다면 좋은 순환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인천지역이 지닌 예술적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계속되어야 한다. 칠성제석춤, 성주풀이춤, 나나니춤에 대해 연구하며 구체화한 작업들이 그치지 않고 발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들이 자연스럽게 작품 소재의 발굴과 움직임 개발로 이어져 한국 춤의 미학적 한계, 움직임의 제약에서 벗어나 시대의 다양한 문제, 사회에 대한 이슈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레퍼토리화를 기대한다. 적지 않은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단 몇 회의 공연 후 사라져 버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매일 만나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는 무용단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들의 연륜과 연습시간이 만들어내는 군무장면들은 그들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재공연이 이루어지며 작품은 완성도를 높여간다. 실례로 한 국립단체가 같은 작품으로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무대를 반복한 후 다시 서울의 큰 공연장에 섰을 때 초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숙련도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공연 장면 ⓒ옥상훈

인천시립무용단의 이번 40주년 기념 공연 역시 재공연을 하면서 단원들의 기량은 더욱 높아지고 연기력도 더해졌다. 함께하는 호흡은 말할 것도 없다. 무용단의 사정상 레퍼토리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는 있다. 이들의 작품이 홈그라운드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보여준 타지역단체와의 협업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좋은 작품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사장되어 버리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다. 

인천시립무용단의 40주년이 이제 41주년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지금껏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지역무용단으로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와 선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로 한국의 춤을 선도할까? 기본에 충실한 자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고 많은 것을 경험한 자가 창의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들의 지나온 40년을 뒤돌아보며 이들의 내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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