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2] 위기의 부산 무용계, 대체 소는 누가 키워야 할까?
[낭만논객의 춤시선-2] 위기의 부산 무용계, 대체 소는 누가 키워야 할까?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06.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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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회 <부산국제무용제>, <야류별곡>을 지켜보며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경북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한 필자에게 부산은 주말 아침이면 완행열차를 타고 이모, 고모댁에 한 달이 멀다하고 자주 방문을 할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수 십 년간 청소년 특유의 어른 흉내내기 감성을 낭만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정신적 사치를 탐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도 부산 출신 대학 동창과 막역하게 지내며 오히려 고향집보다도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의 기획 홍보 담당자로서 본격적인 무용계 입성을 하고 난 후 <국립극장 소식>지 편집과 전국시.도립무용단무용제, 그리고 야외무대인 국립극장 문화광장의 무용장르 기획을 맡으며 다채로운 외부 무용가들과의 교류는 물론 1987년에는 '매초토' 모임의 막내로서 소소한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직업인 생활을 8년간 지속하는 동안에도 부산과의 인연은 지속되었으니 다른 도시보다도 더욱 애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부산 지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무용예술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경성대 무용학과에서 주최하는 광안리 해변을 중심으로 한 '부산여름무용축제'를 비롯, 그 시절 해외유학을 마친 젊은 교수들이 대거 부산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며 제 2의 춤의 도시가 되어갔다. ‘현대무용단 줌’ ‘춤패 배김새’ ‘한국춤 짓 무용단’ ‘정귀인 현대무용단’ ‘동아 발레 앙상블’ ‘현대무용단 자유’ 등 부산의 무용단체들은 저마다 닮은 듯 결이 다른 이색적 춤 풍경을 펼쳐 보여 주기 충분했다. 그래서 여름휴가 시즌이면 어김없이 부산 경성대 무용학과가 마련하는 부산여름무용축제를 찾아 부산.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단체들과 가까워졌다. 향후, 한동안 부산 지역에 소재한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 그리고 부산예대, 인근 창원대, 진주 경상대, 대구.경북 지역의 대학 무용과에 이르기까지 영남 지역 동문단체들의 저마다 다양한 활동들이 서울 소재의 동문단체들 수준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에너지 넘치는 경상도 지역 특유의 흥과 신명으로 무장한 공연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느 시절부터 들려온 부산의 무용계 침체 소식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밀레니엄 시대가 본격 펼쳐질 즈음을 기점으로 부산 무용계의 동력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역 무용계 인재들이 하나 둘씩 서울 지역으로의 진출 혹은 서울 소재 대학,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지며 생태계가 위협을 받은 것이다. 급기야 역사가 오래된 동아대, 경성대, 신라대, 부산예술대 등 무용학과의 폐지가 너무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부산 무용계의 축이 흔들리더니 심지어 예술학교(중.고교) 미달사태 소식과 함께 이른바 영남춤은 ‘위기의 시대’를 맞는다.

특히 부산 지역을 대표하던 교수들의 서울 이직이 준 여파도 한 축을 담당한 결과로 상당 부분 인정되는 분위기이다. 여전히 지역 원로 무용가들의 활동 아래 전국 시립무용단 중 가장 먼저 창단된 부산시립무용단의 활동 역시 춤의 도시 부산의 명성과는 걸맞지 않은 공연예산 부족과 단원 고령화, 노조 활동 등 직업무용단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부산 무용을 위축시킨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부산국제무용제 스냅사진 (사진제공=장승헌)
부산국제무용제 포스터 (사진제공=장승헌)

이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6월 3일부터 5일까지 제 18회 부산국제무용제(BIDF)가 열려 부산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과 해운대 야외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부산 시내 공간에서 야외공연들이 진행된 것이다. 한국무용가 신은주 축제운영위원장 취임 이후 첫 축제 집행에 대한 응원과 격려 그리고 소박한 지역 춤축제의 선배 기획자로서 그간의 현장경험과 시행착오들을 나름 조언해 주고 싶은 마음에 행장을 꾸렸다.

사흘간 국내외 10여 개국의 66개 작품으로 구성된 축제를 몇몇 무용계 지인들과 함께 조심스레 지켜보았다. 때로는 객석에서 때로는 적극 참여까지 자처하기도 했다. 6월 3일(금) 오후 7시 먼저 지역 대표 무형문화재 동래학춤(예능보유자 이성훈)의 군무로 개막식의 시작을 알렸다. 부산광역시 관계자 및 이스라엘대사관 초청 인사의 간단한 축사와 축제 조직위원회 신은주 운영위원장의 인사말이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이어 내빈 소개와 함께 제18회 부산국제무용제의 개막선언이 이어졌다. 개막식 사회자로 성은지 현대무용가와 통역자, 그리고 수어진행자의 매끄러운 진행까지도 눈길을 모았다. 곧바로 무대 막이 올랐다. 한국 김용걸 발레시어터의 창작발레 <라 스트라바간자>에 이어 프랑스 힙합 무용단이 <WAITING for JAMES B>를, 그리고 스페인 컨템포러리 플라멩코 팀인 콤파니아 안토니오 나하로가 개막의 열기에 불화살을 당겨 놓았다. 사흘간 수많은 단체의 매번 다른 레퍼토리로 무대를 장악하는 이국적 춤 풍경을 통해 이른바 프로페셔널한 댄서의 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 내공이 얼마나 객석의 공기를 단번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2022년 2월에 제18회 부산국제무용제 집행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임명된 신은주 예술감독은 사흘간이지만 사전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인 ‘AK 21 안무가 육성'과 BIDF 라운드 테이블까지 사전 진행하는 등 임명장을 받은 이후 쉼 없이 달려오며 내년 축제의 계획을 담담하게 그리고 자신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향후 꿈꾸는 중장기 계획들을 피력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경성대 무용학과 동문 단체인 춤패 배김새 대표, 창무회 단원, 신은주무용단 대표로서의 활동은 물론, '춤 공간 SHIN‘을 통한 국제교류와 아트마켓인 ’BIDAM‘을 통한 영남 지역 춤들의 세계무대 진출 등 국제교류를 나름 선도해 나가고 있다. 그만큼 50대 후반, 지역의 대표적 무용가로서 필자에게는 이른바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본격 등장한 것으로 비친다. 마지막 날, 우천 속에서 축제 공간을 실내 공연장으로 과감하게 변경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 그리고 향후 청년 아티스트들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안무가 육성캠프 계획까지 밝히며 공적 예산확보와 중장기 계획들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모습을 보며 필자는 내년에도 직접 축제 현장을 찾을 계획을 세워본다.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부산국제무용제 기간 중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정신혜)의 2022년 정기공연 <야류별곡>(6월 3-4일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공연도 진행되었다. 이번 <야류별곡>은 지역 브랜드 공연에 대한 일련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성과물이라 더욱 눈길을 모았는데 그동안 낙동강을 중심으로 아래 지역의 탈춤을 일컫는 ‘오광대놀이’나 ‘야류’ 에 대한 기존 인식과 개념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정신혜는 그동안 <턴 투워드 부산> <조선통신사-유마도를 그리다> <영남춤 진경화> 등을 통해 부산.경남 지역의 소재를 과감하게 창착춤 사위와 미장센, 다채로운 무대 연출로 왜 춤은 경상도인가? 라는 화두를 증명해 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 <동래야류> 제5과장의 형식과 춤사위는 고스란히 가져오되 각 과장마다 안무자의 연출적 작업으로 자신의 색을 더했다. 특히 ‘제2과장-양반과장’의 신명어린 덧배기 춤이나 말뚝이의 해학성, ‘제3과장-영노과장’의 5인무 변주와 복식은 새삼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온 몸으로 양반을 응징하는 경상도 남무의 전형적인 활기찬 몸짓이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피트를 활용한 다섯 영노의 등퇴장은 무릎을 치며 객석에 웃음꽃을 피워내기에 충분했다.

야류별곡 中 할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중 할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작품의 압권은 ’제4장-할미과장‘이다. 현실의 막장 드라마를 희화화한 바람난 영감과 할미의 갈등과 함께 상대역 젊은 각시의 등장에서 불륜에 대처하는 안무자의 해석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두어 차례 신 스틸러로 등장하는 ‘문둥아기 인형’은 일견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에서는 마음 짠해지는 동심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잔상을 남겼다. 무대 뒤편에 곡선으로 반달 모양을 이룬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연희부)•성악단(예술감독 유경조)의 공간배치와 연주는 시청각의 이중적 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난 할미의 유골함을 상징하듯 모든 무용수들이 사각 등을 하나 둘씩 위로 들며 달의 공간으로 처연하게 퇴장하는 모습은 울컥하게 했다. 이미 여러 무대를 통해 시노그라피 영역에서 충분히 검증된 정민선의 무대미술과 의상디자인을 담당한 프로정신이 <영남춤 진경화>에 이어 작품 완성도에 한 몫을 튼실하게 담당했다.

2022년 6월 초여름, 부산에서 마주한 50대 주역들- 신은주 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원장과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정신혜 예술감독이 선도하는 두 축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야외축제인 부산국제무용제와 실내 공간인 대극장(연악당)과 소극장 (예지당)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남춤 축제 및 지역춤 브랜드 레퍼토리를 구축해 나가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자 다짐도 해 본다.

어쩌면 이들의 노고와 열정을 기폭제로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이어진 ‘부산 춤 르네상스’가부흥,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선구자적 아티스트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줄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 사실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이들은 대학동문 무용단의 울타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20대 후반부터 독립 안무가로서의 행보를 힘들게 헤쳐 나오며 25년여 자신만의 뚝심으로 버틴 현장 밀착형 예술가로서 그간의 노고를 인정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외견상 부산 무용계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들의 주변에 부산 출신 출향 몇 무용가들이 다시 귀향하기 시작했고 젊은 무용가들 역시 저마다 부산지역에 춤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희망찬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부산국제무용제 참여 무용수 및 기획평론가 외 다수 (사진제공=장승헌)
부산국제무용제에 참가한 무용수들과 기획자, 평론가들 (사진제공=장승헌)

무조건적 부산 사랑꾼(?)을 표방한 3박4일의 부산 나들이는 지난 3년 여 팬데믹으로 지친 일상의 피로감을 잠시나마 풀어 주었다. ‘잃어버린 3년’의 무대와 야외축제 열기에 대한 기다림의 갈증과 한을 풀려는 듯 쏟아지는 축제와 다양한 장르의 공연 홍수 사태로 일정 잡기조차 난감하게 만드는 말 많고 탈 많은 대학로 춤 동네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행 기차에 몸을 맡긴다. 과연 ‘위기 속, 부산지역 무용계의 소는 누가 키울까?’라는 개그 프로그램 대사를 연상하게 된다. 이를테면 부산 무용계의 현실적 고민과 그 대안은 대체 무엇인가를 상상해 본다. 모쪼록 2022년 6월 현재 부산 무용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의 실천의지와 춤 현장 확장과 저변확대에 이르기까지, 다음 축제인 영남춤 축제는 물론 여러 무용가들의 개인 무대 및 야외 행사에도 향후 보다 촘촘한 마음을 담아 지켜 볼 요량이다. 부산의 무용- 예술가들의 춤 발걸음을 격하게 응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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