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나비의 날개
[공연리뷰]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나비의 날개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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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오페라앙상블 ‘나비의 꿈’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1967년 7월 8일. 동베를린을 위시로 북괴 대남적화공작단원 194명이 적발되었다. 유학생이나 문화예술인들이었던 이들은 한국으로 강제 연행되어 체포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간첩활동을 했다는 자백을 추궁 당했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한국 중앙정보부의 불법적인 납치 행각을 규탄했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음악계의 거장들이 탄원서를 냈다.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사건은 최종심에서 단 한 명의 간첩도 인정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었다.

윤이상의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은 윤이상이 옥고를 치르던 600일의 기간 중에 작곡되었다. 자살을 기도한 윤이상에게 중앙정보부가 작곡 활동을 허락해주었고, 윤이상은 가장 깊은 어둠의 밑바닥에서 이 곡을 완성했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인 내가 사람이 된 꿈을 꾸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는 이렇게 태어났다. 이 오페라 악보는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아내 이수자에게 전달되었고, 1969년 뉘른베르크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백년 긴 세월도 한 마리 나비의 꿈과 같다는 <나비의 미망인>의 가사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이념을 과도하게 내세우고 예술인들을 희생시켜 정권 연장의 목적을 이루려는 정부의 계략 또한 나비의 꿈처럼 허무한 것이라고 그는 일갈하고 있다. 또 몸은 옥중에 있지만 마음은 아내와 함께 날아가고 싶다는 작곡자의 마음이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나비의 꿈>이 지난 9월 6-7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17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초연된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대표 레퍼토리다. 윤이상·이응로·천상병을 등장시켜 동백림 사건을 고발하고 옥중에서도 사그라들지 않은 그들의 예술혼을 조명한 작품이다.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작곡자 나실인의 음악은 빼어났다. 현대음악의 화성을 세련되게 펼치고 거대한 음모, 날개 꺾여 갇힌 예술인들의 비통함, 그러나 막을 수 없는 예술인들의 의지를 디테일하게 담아냈다. 고문실에서의 음악은 긴장감이 아슬아슬했고, 감옥에서 윤이상이 이응로와 천상병에게 ‘나비의 미망인’에 대해 노래할 때는 공허함과 희열이 공존했다. 5음 음계와 국악 장단, 12음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해 청중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작곡자의 역량이 놀라웠다. 이수자의 노래 ‘눈 감으면 지금도 들려요 그 첼로 소리’나 윤이상의 ‘한 평 독방에 갇혀’ 같은 노래들도 인상 깊었다.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대본 역시 초연 이래 공연을 거듭하면서 다듬어진 느낌이다. 세 사람의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통해 감옥 안에서조차 기쁨을 얻고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이응로와 천상병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이 있기는 하다.

장수동의 연출도 깔끔했다. 위압적인 고문실에서의 대화라든가, 어두운 감옥이지만 따뜻한 느낌이었던 아내와의 상봉, 속도감 있게 전개된 재판정 같은 장면들은 훌륭했다. 여러 번 무대를 서본 만큼 성악가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러나 윤이상의 죄목이 ‘강서고분 벽화 사신도’를 보러 월북했다는 것이고 또 그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역시 감옥에서 플루트와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영상’을 작곡한 것이니만큼 그 부분도 다루어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성악가들의 컨디션이었다. 아무리 음악과 대본, 연출이 좋아도 전달하는 이는 결국 연주자들이다. 요원2를 맡은 바리톤 임창한과 이수자 역의 소프라노 정시영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노래를 100퍼센트 소화해내지 못했다. 억지로 음을 끌어올리거나 음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초연부터 공연해 온 성악가들이라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국내 창작오페라가 지금 수준으로 올라선 배경에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지분이 크다. 좋은 작품을 발굴해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온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의지와 도전에 위대한 음악가 윤이상의 기도가 함께하리라 믿는다.

“나의 음악은 삶의 승리를 노래하고 슬픈 이들과 함께하며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마음과 우리 민족의 화해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 윤이상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장면(사진제공=서울오페라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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