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3]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몸과 춤, 발레리나 응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3]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몸과 춤, 발레리나 응오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2.12.25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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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발레리나 응오 터이 터 뉴으 (사진제공=응오 터이 터 뉴으)

[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나는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 연재 글을 통해 베트남이라는 ‘특정 장소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우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음식, 관광 명소, 어쩌면 개인의 식기 브랜드까지 공유하는 세상이니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지만,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추억과 인상은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그 어떤 이야기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대해 “그 곳 날씨는 어때요?”라고 물으면 “덥거나 더 덥거나 둘 중 하나예요” 라고 대답한다. 학교에서는 모자는 필수품으로 반드시 착용해야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으며, 사람들은 낮에는 주로 건물 안에서 지내고 저녁이 되면 10시가 넘도록 가족과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어논다. 그런 열기로 땀이 마를 시간이 없는 대륙에 나이든 무용수가 있었다. 한쪽 입으로 물어 피우는 담배 한 대가 그녀의 피곤함을 달래 줄 수 있을까?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며 뿜어나오는 뿌연 연기가 그녀의 주름 사이로 파고든다. 1973년생, 나이 들어가는 발레리나 응오 터이 터 뉴으(Ngo Thuy To Nhu)는 베트남에서 만난 나의 춤 친구이다.

응오 터이 터 뉴으의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아라베스크무용단)

그녀는 어릴 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Kyiv) 발레학교에서 발레를 배웠다. 비자 문제로 베트남에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무용단 오디션을 보러 가려 했으나 정부로부터 출국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늘이 되었다며 회한의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묶여버린 자신을 지금까지 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아라베스크 무용단 단장 탄 록(Tan Loc)이라 했다. 자신이 힘들 때 늘 옆에서 춤 동지가 되어 준 탄 록. 춤으로 빚어진 그 둘 간의 우정은 짙고 강하다는 것을 매번 대화를 통해 느꼈다. 그는 그녀를 위한 <발레리나 Ballerina>라는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젊은 시절, 낡은 창고에 마음 맞는 젊은 무용수들이 모여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공연을 올렸다고 했다. 그런 열정 가득한 젊은 시절이 있던 그녀는 무용수들이 모두 떠나간다 해도 둘은 무용단을 지키며 계속 춤을 출 거라고 말했다. 매해 무용단을 그만두는 젊은 무용수들을 뒷모습을 바라보며, 춤의 둥지를 지키는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누군가 말했다. 친구는 서로의 장점을 과대평가해주며, 아무리 작은 장점이라 할지라도 마치 세상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처럼 평가해주는 사이라고...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나는 동안 과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삶은 춤 그 자체였으며, 성실하게 춤추며 젊은 날 훈련 받은 몸의 기억들을 끊임없이 깨우며 자신의 춤을 돌보는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고 무기처럼 견고하게 우뚝 솟은 발등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단지 육체로부터 얻은 감동이 아닌, 그녀를 이끌고 온 춤의 시간, 그리고 정치적 수단으로 무장한 춤이 아닌, 춤 그 자체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롯이 움직임에 집중할 때 생기는 그 순수성, 춤 경험 시간의 총합이 고스란히 몸에 담겨 나올 때 생기는 밀도, 육체의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그 춤의 깊이를 그녀의 춤을 통해 찾았다. 나이든 무용수가 보여주는 숙성된 춤의 겸손. 삶의 회전문을 수 없이 통과하며 생기는 인내와 끈기로 무장되어야 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는 듯했다. 나이 들어가는 육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춤추는 모습이 더 빛나던 그녀의 춤은 육체를 밀어내고 움직임으로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젊은 무용수들의 게으름을 꾸짖는 뉴으, 한국에서 온 나를 몇 달 간 꼼꼼하게 살펴보는 엄격한 눈빛을 기억한다. 내가 진행하는 컨템퍼러리 댄스 수업시간마다 스튜디오 한쪽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무용수들이 배우는 수업의 내용은 무엇인지 살핀 후, 수업이 끝나면 항상 무용수들의 수강에 대한 리뷰를 부탁했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분명 춤과 무용수에 대한 애정이었다.

시대는 변하고 시간은 만들어 놓은 규칙에 흘러간다. 공들여 또렷하게 만들었던 젊은 무용수 몸의 기술은 서서히 나이 들어간다. 망설임 없이 움직일 수 있던 몸의 움직임, 다시 말해 춤, 타인의 시선에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던 그 젊은 날의 몸은 사라져 간다. 젊음이 지닌 자신만만한 포부와 거침없는 몸짓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몸의 선은 서서히 흐려지지만 인간의 정신이 담긴 깊은 은유의 몸짓, 운치 있게 늙어가는 몸의 춤은 어떤 것일까? 나는 스스로 묻는다.

응오 터이 터 뉴으 (사진제공=아라베스크무용단)

무용수의 몸은 유한의 시간으로 한정된다. 나이를 몸에 담아가면서 무한했던 춤의 꿈에서 정해진 유한한 시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간을 통과하며 여전히 정확한 발레 동작을 찾기 위한 연습으로 움직이는 뉴으, 자신의 몸과 나이와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발레가 살아있음을 드러낸다. 나는 그러한 그녀를 보며 여러 감정에 휩싸인다.

어느 날, 뉴으와 나는 여기가 아파, 저기가 아파 하며 서로 안부를 물었다. 한국 병원에서 처방 받은, 무릎 통증을 없애는 데 효과 좋은 약(진통제)을 몇 봉지 그녀의 손에 조심스럽게 건네주기도 했다. 어떤 것보다 서로 이런 몸(통증과 무게)에 공감하고 상대를 걱정하며 그녀와 나는 진지한 대화가 서로 필요했다. 우리 함께 ‘늙어가는 몸에 대한 춤’을 만들기로 약속하며 두 손을 서로 맞잡고 사진을 찍으며 계획했었는데....말은 사라졌지만 우정은 남았다. 우리의 인간적 신뢰는 춤으로 시작되었고 나이 들어가는 몸을 가진 무용수가 느끼는 위험한 틈 사이의 두려움, 밀려오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나약한 인간의 슬픔에 관한 공감이라고 말하면 괜찮을까? 나이 들어가는 몸을 지닌 춤은 게을러지는 순간 숨어 버리며, 욕심에 찬 몸은 춤을 죽인다. 춤을 담는 몸이 참으로 어렵다.

뜨거운 하루의 해가 지면 온 몸이 녹초가 되는 그 곳, 베트남의 삶 속에서 내가 만난 중년의 무용수 응오 터이 터 뉴으가 있었기에 난 서로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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