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골동품을 매만지는 노련한 장인의 섬세한 손길
[공연리뷰] 골동품을 매만지는 노련한 장인의 섬세한 손길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0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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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회
- 2023년 3월 7-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사진제공=빈체로)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근세기에 들어 대륙간 자유로운 이동, 저명 지휘자의 겸임을 통해 오케스트라 기량이 상향 평준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 오케스트라만의 고유의 색깔은 퇴색하고 있다. 서로 비슷한 사운드를 내다보니 개성이라는 주요 요소는 아무래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전통의 고유한 사운드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골동품처럼 귀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이다. 이들이 내한할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연주회장을 찾고 있지만, 특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경우, 주제페 시노폴리가 지휘했던 말러 <교향곡 제5번>, 그리고 파비오 루이지가 이끌었던 슈트라우스 <교향시> 연주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누가 지휘해도 떡갈나무 같은 짙고 두터운 색채의 풍성하고 따스한 현악 섹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명료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의 목관, 꽉찬 듯 풍성하고 넉넉한 울림의 금관, 게다가 절도있고 우아하기까지 한 팀파니 등 이들 고유의 사운드에 감탄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루돌프 켐페, 오트마르 주이트너,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근세기를 빛냈던 거장들의 오케스트라였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현재 독오(독일/오스트리아) 음악의 총아라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끌고 있으나 2012년부터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명훈과 이들의 동행도 초기 지휘까지 합치면 어언 20년에 이른다. 정명훈의 칠순을 맞아 그가 이처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연주하는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로서 수준 높은 브람스 음악을 들려준 정명훈은 특히 제4번과 제1번 교향곡에 있어서 그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첫날은 제1번과 제2번, 둘째날은 제3번과 제4번. 차례로 전곡을 들려주었다.

브람스 교향곡에 있어 남다른 철학과 어프로치를 견지해온 마에스트로이지만, 이번 이틀간의 연주에선 악단만의 고유한 음악성을 살리는 데 방점을 찍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그만의 개성을 드러낸 장면이 매력적이었으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여유있는 모습이 엿보였다. 오케스트라 역시 자신들의 음악을 구현하기 위해 작품마다 솔리스트를 교체하였다. 이에 따라 기능적으로 다소 다른 양상이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이것이 도리어 관객의 입장에서 흥미롭기도 하였다.

가장 치열하고 맹렬할 것 같았던 제1번 교향곡 연주는 이틀 간 대장정의 오프닝 성격이었는지 기분 좋은 긴장 속에서 다소 느리고 느긋한 연주였다. 소박한 빛깔의 목금관의 돌림노래 같았던 제2악장은 콘서트마스터의 환상적인 솔로 연주로 절정을 이뤘고 정겹기까지 했다.

정명훈의 진가는 제4악장에서 발휘되었다. 연주 개시 전 휴지부에서 지휘봉을 들고서 오케스트라에 잔뜩 기운을 불어넣는 장면부터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고요한 현악의 피치카토도 긴장의 연속이었고 유유자적한 골동품 사운드에 맞게 최소한의 개입만을 하다가도 종막에서 특유의 강력한 어택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어 강렬한 마무리로 이끌었다.

이런 어프로치는 ‘전원 교향곡’으로 불리는 제2번 연주에서도 이어졌다. 정명훈 특유의 지중해의 햇살 같은 밝은 연주를 예상했으나 고풍스럽고 고아했다. 악단 특유의 탄탄한 저역 사운드로 정돈되고 잘 짜인 안정감을 준 제2악장 연주가 훌륭했다. 조심스럽게 살포시 꽃봉오리를 피우듯 하다 꼭 필요한 액선트만 부여하며 박진감을 연출한 제3악장과 알싸한 마무리의 제4악장도 좋았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기능적인 이완이 눈에 띄었다. 앙코르로 다음날 연주할 제3번의 제3악장을 연주했는데 제2번에서 보여준 기능적인 문제가 있어서 둘째날의 연주를 능가하긴 어려웠다.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사진제공=빈체로)

둘째 날은 정명훈이 가장 사랑한다는 제3번 교향곡으로 시작했다. 첫날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루바토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장대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아름다운 음색의 목관 앙상블의 흥겨운 노래가 일품이었다. 현과 관의 밸런스와 조화가 환상적이기도 했다.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앙상블의 밀도가 전날과 달랐고 낭만성으로 넘실거리는 감성이 짙었다. 느린 템포로 짙은 감성과 고요한 침묵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제3악장은 정명훈 예술의 정수를 보여줬다. 급박하게 출발하여 몰아치는 템포로 시동을 걸다 갑자기 동력을 끄고 갑작스럽게 여백의 미를 보여준 대목이나, 갑자기 마지막 불을 뿜는 오케스트라의 격정은 브람스다운 다채로운 미학이었다.

서울시향 재임 시절 그의 제4번 연주에선 극적이면서 진한 격정으로 남다른 경지를 보여주었고,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엑스톤(EXTON)에 남긴 연주 역시 서양의 지휘자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고유의 정서가 결합된 명연이다. 그만큼 그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그런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다만 연주가 전반적으로 고르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안타깝기도 하였다. 후련한 <헝가리 무곡 제1번>을 앙코르로 이틀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이번처럼 오랜 시간 국내에 체류하면서 많은 연주를 소화한 경우도 참으로 드문 것 같다. 첫날 메인 프로그램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본인은 가족과 같다고 한 정명훈의 말처럼, 오랜 시간 쌓아온 깊은 신뢰에서 나온, 서로의 예술을 존중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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