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예술계 자치규약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
“한국 공연예술계 자치규약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
  • 김보은 (배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회원)
  • 승인 2019.02.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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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보은씨의 로라 피셔 워크숍 참가후기

[더프리뷰=서울] 김보은(배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회원) =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과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가칭 The Korea Theatre Standards, KTS)을 만들기 위해 로라 피셔(Laura T. Fisher) 초청 국제 워크숍을 이달 8-11일 서울에서 개최했다. 8-9일엔 앞으로 KTS를 만드는 실무를 담당할 사람들과 로라 피셔가 함께 토론하는 집중 워크숍을 진행했고, 11일에는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The Chicago Theatre Standards. 약칭 CTS)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개 워크숍을 개최했다.

사진제공=김은비
사진제공=김은비

CTS 제정을 주도하고 NIOH(Not In Our House)를 공동 설립했으며 시카고를 주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해온 배우 로라 피셔를 초빙, 시카고에서 CTS를 만들게 된 계기 및 과정을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Not In Our House(우리 극장에서는 안돼)“

 #NotInOurHouse는 미국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인 2015년에 시작되었다. 프로파일 극장의 배우이자 공동대표인 대럴 콕스(Darrell W.Cox)는 오래전부터 연기지도를 핑계로 온갖 성희롱을 자행했고 ‘진실된 연기’를 빙자하며 이미 짜인 무술안무, 성적인 장면 안무 등을 무시한 채 공연중 상대 배우들을 극도의 위험에 빠트리기로 이미 유명했다. 모두 그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막지 않았다.

2010년 콕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킬러 조(Killer Joe)>라는 공연에서 일어난 실감나는 폭력과 강간 장면에 평단과 관객은 열광했다. 하지만 몇 달 후 피해 여배우들의 용기로 ‘폭력장면’은 실제 ‘폭력’이었으며 ‘강간장면’ 또한 무대 위 실제 ‘강간’이었음이 폭로되었다.

사진제공=김은비
사진제공=김은비

로리 마이어스가 시카고 연극계 전체를 향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해시태그로 #NotInOurHouse를 남겼다. 그러자 수 시간 내에 수백 명이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수치스러워하며 격분했고 행동을 요구했다.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The Chicago Theatre Standards)

CTS는 시카고에 있는 극단 대표, 예술가, 행정가들이 2년간 각자의 시간, 경험,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보태어 만든 자료이다. CTS 초안을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12번의 라운드 테이블 토론을 거쳤다. 그 후 1년간 20개 극장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로 CTS가 만들어졌다. 극장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비용이 들지 않는 쉬운 방법으로 예방 및 대처하는 방안들이 소개되어 있다.
CTS는 자발적 참여와 무료배포가 특징이다. 외부의 압력을 받는 대상이 아니다. 단체들이 CTS를 채택한다는 것은 CTS의 목적에 맞게 절차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CTS를 채택한 단체와 일하는 참여자들은 CTS를 읽고 과정을 따름으로써 지지를 표현한다. CTS의 목적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이와 관계된 모든 사람은 사태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 받는다. CTS는 notinourhouse.org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CTS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비조합원 극장 : 비조합원 극단은 아주 적은 규정과 지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극장 : ‘일터’라는 고용기회균등위원회의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해 고용기회균등위원회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곳.
-대규모 조합원 극장 : CTS는 배우조합규칙서(AEA rulebook)로 다룰 수 없는 사항들(안전하지 못한 상황, 산업분야의 성적 학대 논의 등)에 예방절차를 제공한다.
-학교 극장 : 대학, 사설 연기교육기관, 고등학교 연극반 등.
-부모 : 예술가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들.


어디서부터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인가

CTS는 공연과 관련된 성적 괴롭힘에 대해 예방절차 및 사후처리 절차를 제공한다. 우리는 모든 참여자들 사이에서 연습 중이나 공연 중에도 성적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예술적 자유를 빙자한 성적 학대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폭력, 섹스, 친밀한 접촉, 학대 등의 몸짓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분명한 기준이 만들어지고 관련된 모든 참여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을 넘었을 때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실수나 오해가 바로 성적 학대라고 할 수는 없고 애매한 경계를 가진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동의, 안무, 문서화를 통해 회색지대를 없애고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약속된 안무를 어겼을 경우 무대감독이 개입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선을 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상대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하고 그것을 사과하고 시정하고 조율하며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행동이 계속되면 성적 학대이다.


진짜 나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단계에 따라 교육-예방-소통-문서-고발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가해자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된다. 시카고처럼 20년은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시스템적 문제에는 시스템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CTS는 문제가 일어날 때까지 서랍에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권력구조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만의 준칙 만들기

각 커뮤니티가 이 자료를 스스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대본을 읽는 것처럼 이 자료를 가지고 앉아서 읽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본을 읽고 토론하는 것처럼 토론했으면 좋겠다.

사진제공=김은비
사진제공=김은비

11일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가칭)을 만들기 위한 공개 워크숍에 다양한 직군의 예술인들이 참가, CTS에 대해 알아보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Q. CTS를 적용할 때 창작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논리를 내세운 반대의견이 있었는가?

A. 우선 CTS 자체가 자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반발은 없었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CTS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창작의 자유라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누구의 창작의 자유인가요? CTS는 결국 자신들에게 속한 사람들을 잘 보호하고자 하는 극장과 극단을 위한 것이다. 이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만약에 어떤 곳에 5명의 가해자가 있다고 한다면 가해와 전혀 상관없는 25명의 사람들이 CTS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Q. 자료집에 예술가 부모라는 항목이 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예술가의 부모라는 부분이 삽입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미국에서 많은 아이들이 “나 배우할래” 하는 경우가 있다. 극장 환경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부모들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 문제가 발생했던 프로파일 극장에서는 연기수업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냐면 “당연히 그러는 건 줄 알았어요.” 혹은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라고 한다. 부모들이 CTS를 읽고나면 연기수업을 듣고 집에 온 아이들이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라고 말할 때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돼!” 라고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현장에서 CTS에 대해 토론한 후 새로 알게 되고 느낀 부분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우: 문제를 일으키고 피해를 주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사람도 포함한다는 내용이 새롭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회피하지 않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좋았다.

PD: 이것을 문서화했다는 것이 새롭다. 상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점들을 문서화했다는 것이 새롭고. 이때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들이라 새로웠다. 공연계를 자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1일 KTS(가칭)를 만들기 위한 공개 워크숍에 다양한 직군의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CTS에 대해 토론하고 앞으로 한국에서 만들 스탠다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예술인들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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