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복행의 '뮤지컬 중독'
[서평] 조복행의 '뮤지컬 중독'
  • 박상윤 기자
  • 승인 2023.10.13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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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뮤지컬 중독'

[더프리뷰=서울] 박상윤 기자 = 같은 뮤지컬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는 관객들이 있다.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인데, 우리는 이들을 '회전문 관객' 또는 '연뮤덕' 등으로 부른다. 도대체 이들은 이미 본 작품을 왜 보고 또 보는 것일까? 이 흥미로운 문화현상을 분석한 공연예술학자 조복행의 신간 <뮤지컬 중독>(더프리뷰 9월 22일자 참조)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많은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런 관객을 반복소비자(repeat consumer), 반복관객(repeat attender), 리피터(repeater) 등으로 불러왔고, 일본에서는 리피타(リピーター)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문화상품의 경우, 똑같은 작품을 반복적으로 소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몇 번을 반복해서 보기가 쉽지 않고, 아무리 선호하는 축구팀의 경기 장면이라도 몇 번만 보면 지루해진다. 그런데 유독 뮤지컬에는 같은 작품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는 관객들이 있다.

저자는 뮤지컬 반복소비는 젊은 여성이 형성하는 일종의 하위문화(subculture)로, 공연예술의 일반적 특성과 뮤지컬의 특수성이 결합된 결과로 본다. 거기에 반복소비자의 심리적 특성과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가세했다는 것이다.

우선 공연예술은 다른 예술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난다는 점이다. 이를 '현전(presence)'이라 부른다. 현전은 미학적으로는 공연을 역동적, 관계적 예술로 만드는 요인이고, 경제적으로는 흥행을 어렵게 하는, 양면성을 가진 파르마콘과 같은 것이다.

현전은 곧 라이브 공연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발터 벤야민이 지적한 기술복제 예술에서 아우라의 소멸 테제와 맞닿는다. 벤야민은 영화와 같은 기술복제 예술을 높게 평가했지만, 그 대신 기술복제 예술에서는 원본성이 주는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를 공연에 대입하면, 공연은 기술복제 예술이 아니라 라이브이기 때문에 늘 아우라를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끊임없이 원본을 생산하는 예술이고, 소멸하지만 다시 새롭게 나타나는 생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연이라도 어제 본 것과 오늘 본 것은 다른 것이다. 저자는 이를 ‘ 차이의 소비’라고 표현한다.

공연예술, 특히 연극계 공연(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또 다른 특징은 매체성과 그 표현형식에 있다. 구술성과 시각성 등이 교차하고, 말과 연기, 제스처 등의 신체성이 다중적으로 얽히면서 관객을 다중감각적으로 자극하고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다중적 재현'이라고 부른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공연에도 첨단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고, 영상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디지털 퍼포먼스나 스트리밍이라고 불리는 형태들인데, 이들에게는 반복소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유행했던 스트리밍, 즉 영상화된 공연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공연예술과 다른 예술의 결정적인 차이는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갖가지 갈등과 사건이 생기고 에너지가 산출된다.

그렇지만 모든 공연예술에서 반복소비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사실 연극이나 무용, 클래식 음악과 같은 장르의 관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으며, 반복소비는 더더구나 발생하지 않는다. 저자는 유독 뮤지컬에서 반복소비가 발생하는 현상이 다매체적이고 다중감각적 성격 때문으로 본다. 자극은 반응을 유발하는데, 다매체적일수록 새롭고 다양한 자극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한 뮤지컬은 음악극이다. 저자는 음악극의 대중적 인기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또다른 음악극인 오페라와의 차이점을 부각한다.

뮤지컬은 새로움과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을 부단히 흡수하는 민주적 형식(democratic form)이다. 여기에 아이돌이나 스타를 기용하는 스타 시스템과 이에 반응하는 젊은 여성들 특유의 감수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연예술의 가치는 그 의미나 주제보다 관계성에 있는데, 뮤지컬은 관계성이 강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전통미학에서는 주제나 의미가 중요했다. 예를 들어 18세기 유럽에서는 역사화를 풍경화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는데, 이는 역사에 의미가 가득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왕자대전'(사진제공=광나는 사람들)
뮤지컬 '왕자대전' (사진제공=광나는 사람들)

공연에서는 배우와 관객간에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상호수행성'이 작동한다. 이 개념은 저자가 만든 용어로, 퍼포먼스 이론이나 언어학에서 말하는 수행성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과 배우간의 상호작용성, 관계성은 현대연극보다 전통연극에서 훨씬 강했다. 관객들은 연기가 시원치 않은 배우들에게는 썩은 생선이나 과일 등을 던졌지만, 탁월한 배우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현대에 들어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뮤지컬은 이러한 과거 전통이 보존된 대중연극에 속한다. 실제로 뮤지컬에서는 관객들의 반응과 유도(?)에 따라 배우의 연기와 동선, 노래들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시체관극’ 현상을 저자는 비판한다. 시체관극은 배우에게는 두 가지 대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몰입형 시체관극'으로 배우에게는 엄청난 격려가 된다. 반대로 이는 의례적이고 강요된 엄숙주의로, 오히려 배우와 관객간의 상호작용을 방해할 소지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뮤지컬 관람문화가 아닐까 싶다. 마치 뮤지컬 공연장이 클래식 음악 연주회장이 된듯한 느낌이 든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과거에 미래주의자들은 배우와 관객간의 상호작용을 높이기 위해 좌석에 아교를 붙이거나 좌석을 중복 판매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뮤지컬 공연장은 오히려 성스런 성당이나 사찰과 같은 종교적 공간이 된 게 아닐까.

반복소비는 팬덤의 일종이다. 반복소비자들은 처음에는 스타 선호에서 출발해 점차 장르 선호로 이동한다. 반복소비자들은 감수성과 대상에 대한 탐색적 성향이 강해서 무대와 배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문을 품고, 이를 집에서까지 반추한다. 천장에 뮤지컬이 떠다니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다음날 다른 질문으로 바뀐다.

뮤지컬은 민주적 형식이지만 부르주아적 장르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접근하기 어렵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나라는 제작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은근히 뮤지컬 산업의 현재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반복소비자들이 뮤지컬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그렇지만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드물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서양에서도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 아직 전문적인 연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반복소비를 전부 해명하고 있다거나, 저자의 분석이 모두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많은 반복소비자들의 성격을 5요인 모델이라는 하나의 성격유형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보다 전문적인 심리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반복소비라는 주제는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반복소비의 범위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 원인과 결과, 산업에 대한 영향 등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연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복소비자에 대한 통계가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본격적인 통계수집과 반복소비자들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설문조사와 인터뷰, 전문적인 미학적/심리적 분석 등을 통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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