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의 프로그램 노트 2, 베토벤 음악과 그의 잔향
임현정의 프로그램 노트 2, 베토벤 음악과 그의 잔향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03.03 2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의전당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 프로그램 북에서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박상윤 기자 = 최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리사이틀을 펼친 임현정, 개성있는 캐릭터를 지닌 그의 연주와 글은 그동안 오랜 시간들 속에서 잘 익은 바흐와 베토벤에 관한 깊은 담론을 담아냈다. 공연 프로그램 북에 게재된 그의 글을 통해 임현정을 다시 만난다.

베토벤의 노트, 편지 그리고 음악을 살펴보면 운명과의 투쟁, 그리고 운명에게 던지는 의문점이 많이 나온다. 초창기 때는 운명을 지배하는 영웅으로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20대 초반의 베토벤은 자신의 끓어오르는 창조적 힘을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 분출하였다. 1795년 무렵, 베토벤은 공책에 이렇게 썼다. “용기를 가져라! 내 허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내 천재성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이제 내 나이 스물다섯 살, 완성된 인간성을 드러내야 할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이 시절은 아마 베토벤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많은 귀족 여인들에게 피아노 수업을 하고 대중에게 떠오르는 비르투오소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펜만 들고 작곡만 하면 빚을 진 그 어떤 어려운 친구라도 당장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자랑할 만큼 자신감에 차 있던 시절이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당시 베토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으며 천재로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이로부터 몇 년 후, 그의 이 모든 희망은 한 여인으로부터의 버려짐과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음으로 인해 모조리 사라진다.

일찍이 어떤이가 베토벤에 대하여 “그는 괴테나 헨델이 아니며, 이들과 같은 대가는 다시 나타날 수 없기에 베토벤은 둘 중 누구도 될 수 없으리라”고 말한적이 있다. 베토벤은 그에게 이렇게 답변을 하였다. “각하,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제게 아무런 믿음도 없고 저를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들과는 전혀 상종하지 않습니다” (빈 주재 작센 왕국의 외교관이었던 그리징어의 기록)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베토벤은 당시 Op. 49번의 소나티네 두 곡처럼 무난하고 의례적인 몇 곡을 작곡한 다음, 결국 비극적인 f단조 소나타 Op.2-1을 자신의 소나타 제1번으로 출판하며 더 이상 즉흥가나 비르투오소 만이 아니라 작곡가로서 자신을 당당하게 선포하였다. 벌써부터 명백히 베토벤적인 특징을 지닌 이 작품은 이미 그를 앞섰던 선배들에게 필적하는 놀라운 음악적 포부를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이 시골을 벗어나 음악의 중심지로 알려졌던 빈에 도착한지 3년 후에 작곡된 작품이다. 젊은 작곡가의 독창성, 운명과의 싸움과 그에 대한 집착이 권력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로 표현되어있는데 그 투쟁은 우선 반항적이면서 해결되지 못한 의문으로 남는다.

이런 운명과의 전투는 베토벤의 소나타 사이클에서 마치 강박관념처럼 전체적으로 두드러져 있다.

첫 곡인 f단조 소나타는 강요적인 왼손에 네 개의 화음으로 문을 여는데 이 단테적인 리듬 모티프는 결국 교향곡 5번의 도입부 주제로 훗날 나타나며 벌써부터 베토벤의 음악에 어우르게 될 운명적이자 혁명적인 장중한 정신을 예고한다. 미뉴에트 악장은 고전적인 3/4박자의 미뉴에트보다는 상박(Anacrusis)에서 시작한 삼박자가 확실히 분명치 않아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풍기는 독창성 있는 춤곡 느낌을 준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장엄한 피아노 스케일로 쓰인 마지막 악장은 긴박감, 분노, 선포하는 듯한 화음으로 가득하며 ‘확고하면서-애원하는’ 분위기, 즉 극도의 대립으로 듣는 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 지시는 이 악장을 광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데 꿈결 같은 느낌을 주는 A플랫 장조의 중간 부분이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느린 악장에서는 영적인 경외감이 밀려들면서 마치 영혼을 달래주는 위로와도 같다는 느낌이다.

베토벤 생애의 마지막 소나타 c단조(Op.111)는 불가사의한 운명에 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이며, 베토벤을 평생 동안 몰아댔던 희극과 비극의 투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혜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운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협적이고 극적이며, 1악장에서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것은 운명에 대한 최종적인 도전이자 최대의 전투라 볼 수 있겠는데 20대의 첫 소나타에서는 그 도전은 운명을 지배하기 위한 전투, 반항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생애의 마지막 소나타에서 나타나는 이 최후의 도전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것이다. 이어지는 악장에서 베토벤은 결국 해결책을 제시하며, 승리자를 아득히 넘어서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던 일종의 신성(神性)과의 결합으로 들어선다. 그 자신의 변모는 여러 단계(아리에타의 변주곡)에 거쳐 트릴에서 절정에 도달하며, 천상적인 분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마침내 적멸(寂滅)의 경지에 도달한다.

글/피아니스트 임현정 HJ Lim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